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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시대, 우울한 사람들과 음악으로 치유하고 싶어 콘서트를 준비했다고 하는 그에게서 참 착한 사람 내음이 풍겼다.
▲ 우울한 콘서트 여는 가수 박창근 우울한 시대, 우울한 사람들과 음악으로 치유하고 싶어 콘서트를 준비했다고 하는 그에게서 참 착한 사람 내음이 풍겼다.
ⓒ 박창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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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우울해진다. 한 해가 가고 있다는 아쉬움, 낙엽조차 떨어진 나무를 보며 삶의 허무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햇빛은 우리의 뇌에 기분 좋은 신경 물질을 만들어준다고 하니 햇볕이 적은 계절 탓이기도 하리라. 아니면 흥청거리는 연말분위기에 여불떼기(경상도말로 옆 짝, 애인 등을 뜻함)가 없어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시대가 낳은 우울이든 혼자 남겨진 우울이든 이러한 일시적인 우울증으로 허무해진 사람들을 위한 이색 콘서트, '우울한 콘서트'가 열린다.
우울한 시대의 허무를 치유하는 음악치유사는 대구를 삶의 근거지로 두고 전국을 다니며, 깨끗한 색깔의 음악을 들려주는 가수 박창근이다. 아날로그 유나이티드기획단이 기획한 우울한 콘서트는 12월 16일과 17일 이틀간 총 3회에 걸쳐 대구 대명동 계명전문대 맞은 편 씨어터우전소극장에서 열린다. 콘서트 시간은 16일 오후 7시 30분, 17일 오후 4시와 7시 30분이다.

가수 박창근은 "공허와 우울 속에서 자기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민중가수니 인권가수니 하는 수식어 이전에 인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고, 숙제하듯 음악으로 풀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에 의한 '시대적 우울'이 극에 달한 2011년 연말, 우울한 사람들과 우울한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노래하다 보면 어느덧 카타르시스의 우물에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수 박창근은 1993년부터 대구지역 대학가를 중심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했으며, 1997년 솔로 데뷔 음반 발표 후 보컬그룹 '가객'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2집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을 발표했다. 지난 8월, 6년 만에 정규 음반 3집 <무지개 내린 날개 위의 순간>을 냈다. 지난 8월 27일에는 3집 음반 발매 기념으로 서울 홍대 가톨릭 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조용하지만 활발하게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가수다.

연말의 분주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우울한 사람들끼리 우울함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가수 박창근씨를 만나 그의 근황과 생각들,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8월 발매된 3집 음반 '무지개 내린 날개 위의 순간'
그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노래들로 채워져있다.
▲ 3집 음반 지난 8월 발매된 3집 음반 '무지개 내린 날개 위의 순간' 그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노래들로 채워져있다.
ⓒ 미러볼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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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떻게 지내나?
"늘 똑같다. 공연 다니고 3집 음반 <무지개 내린 날개위의 순간>도 발매했다. 서울 홍대 쪽에서 음반발매 기념 콘서트도 가졌다. 이번 콘서트는 3집 발매 이후 대구에서 공연을 못해 부랴부랴 준비했다. 장황하게 보여주기보다는, 나의 생소리를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다. 시대가 우울하다보니 그냥 우울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면서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고 싶다.

원래 12월부터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자주 하려고 했는데, 1월쯤에나 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홍대 클럽이 워낙 많이 변해 내 성향에 맞는 클럽을 찾는데 힘들었다. 초청공연만 다녀서 존재감이 조금은 약해진 것 같은데, 이제는 팬들을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려고 한다. 초청공연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 2집 발매 이후 3집 발매까지 6년 걸렸다. 꽤 긴 시간이다.
"게으른 게 병인 것 같다. (웃음) 2집 발매 당시 반응이 좋아서 뭔가 된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활동하지 않은 것 같지만 전국적으로 초청 공연을 많이 다녔다. 중앙방송을 안타서 그런 듯하다. (웃음)"

- 기획사 등에 소속돼 활동할 의향이 있나?
"기회가 된다면 하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가수를 쓰겠나'라는 생각이 든다. 실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대중적으로 경력이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사 같은 곳은 대중적으로 좀 더 미래지향적인 가수를 택하지 않을까. 몇 년 전부터 열심히 하는 가수를 모아서 기획사를 만들어 볼 생각도 해봤다. (웃음) 사실 어떤 기획사에서 의뢰도 받았지만 내 성향하고는 차이가 있는 노래였다. 내가 가진 영역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에 그만 뒀다."

- 작사 작곡을 본인이 직접 하고 있다. 멋진 일이다. 어디에서 감흥을 얻고 작업하나?
"숙제 같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음악을 일처럼 느꼈다면 도태됐을 것이다. 음악이 나오면 작업을 하는 것이고, 나오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가 그만둘 것이다. 그것이 팬들에게 사기를 안 치는 거다. 노래하기 이전에 창작자이고 싶다.

작품은 순간순간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다. 아플 때 떠오르면 아픈 몸을 이끌고 곡을 써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 사람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한다. 주로 그것을 곡으로 옮긴다. 어릴 적부터 현상적인 것보다는 근원적인 것에 심취했다. 몸이 괴롭고 힘들 때 인간의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럴 때 창작이 잘 된다.

공연할 때 '노래하는 박창근입니다'라고 소개한다. '내가 해야 할 얘기를 내가 노래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작업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가끔 곡을 준다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거나, 다른 곡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선택하지 않는다."

- 3집에 무엇을 담고 싶었나? <나랑 잘래?>라는 노래가 있다. 박창근씨 답지 않게 제목이 다소 선정적이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인 의식주와 성욕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지 궁금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온 노래가 <나랑 잘래?>다. '서로가 영혼의 교감을 한다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며칠을 함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곡으로 나왔다. 만들어놓고 보니 '사람마다 가지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상실감이 늘 한 구석에 존재한다. 그게 뭔지 항상 궁금하기 마련이다. 이번 3집에 수록된 곡들이 '나 정말 아프다'하면 '너도 아프냐?'라는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 상실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공감을 함께 하고 싶었다.

 공허와 우울 속에서 자기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것이 노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담겨질 때 내 희망이 전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곧 희망이라고.
▲ 공허와 우울이 주는 색다른 희망 공허와 우울 속에서 자기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것이 노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담겨질 때 내 희망이 전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곧 희망이라고.
ⓒ 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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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집 음반이 한국대중음악상 평론가가 주목하는 올해의 음반에 선정되는 등 반응이 좋았다. 3집은 퀄리티가 있다고 생각하나?
"늘 그랬지만 이번 음반도 하나의 시도였다. 2집 음반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내가 관여했다. 3집은 약간의 절충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투박하지만 2집이 훨씬 '박창근 답다'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3집의 성과도 컸다. 한 평론가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온전히 박창근의 음악이다'라는 평가를 했다. 나름대로 얻은 성과이고, 음악적으로도 진정성을 알게 해준 음반이다. 주변에서 나를 두고 보들보들해졌다고 하는데 음반을 만들 때 그런 것 같다. 막바지에 선곡을 다시 하는 등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만족한다."

- 처음에는 민중가수로 출발했다. 지금은 달라진 듯한데 그 변화는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변화하는 시간들이 개인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스스로 상처를 내며 뭔가를 찾으려 했고, 그래서 노래를 만드는 행위를 선택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화의 모습이 힘들었다. 궁극적으로 깨우치고 싶은 무언가 있었다. 아직은 모르겠다. '왜 자꾸 삶의 숙제를 풀려고 하느냐'는 비판도 들었다. 살면서 욕망을 떨쳐야 하는데, 그런 삶에 대한 고민들을 어릴 적부터 해왔다.

한 가지에 흠뻑 빠지기도 하고, 자기 논리를 주입시키기도 하고, 주변을 괴롭히기도 했다. 나는 심취하면 완전 심취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독단적이기도 하다. 지금은 편안하게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도 그런 고민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3집 앨범은 정말 보들보들하고 편안하다는 평을 받았다. 나는 아직 괴로운데 그렇게 봐주니 나쁘진 않다. 난 편안하지 않지만 고통 속에서 나온 작품들이 편안하게 팬들에게 다가가서 좋다."

- 채식주의자 가수로 알려져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시절, 사회운동을 하게 된 것과 똑같은 과정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될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동네에서 개를 잡았는데, 그 과정을 보고 억지로 먹었을 때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당시 어른들이 개를 잡고, 그 개를 즉석에서 요리를 해서 먹으라고 했을 때 먹지 않았다. 그러자 '그것도 못 먹으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가겠냐'고 윽박지르시더라. 결국, 그것을 먹었다. 당시에는 어려서 거부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나는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제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차원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 굳이 꼭 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생명으로 봤을 때 누가 누구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이 싫었다.

그럴 때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과 베스킨라빈스31 창업자의 외아들이면서도 상속의 자리를 버리고 유제품과 육식의 문제점을 고발하며 채식만을 고집하는 환경운동가 존 라빈스 등의 책을 읽었다. 많은 감명을 받았고 나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풀만 먹지는 않는다.

'vegetarian'이라는 단어를 잘 풀이할 수 있는 뭔가 없을까 고민 중이다. 완전 채식주의자라고 단정 짓기는 사실 어렵다.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생명과 생명끼리, 인간과 인간끼리, 좀 더 바르고 건강하고 함께 유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먹히는 개념이 아니라 내가 '인간'이라면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라면 다른 생명과의 공존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마음 편하게 사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4대강사업의 허구성을 현장을 다니며 입증하는 박창근교수님과 콘서트를 했었다. 그때 박창근교수님의 인기가 높아져야 4대강사업이 중단된다고 관객들에게 말했던 가수 박창근은 당시 박교수님이 예언했던 대로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다며 4대강사업과 관련해서 진실을 알릴 수 있다면 ’박창근 대 박창근‘을 다시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 박창근 대 박창근 콘서트 중에서 4대강사업의 허구성을 현장을 다니며 입증하는 박창근교수님과 콘서트를 했었다. 그때 박창근교수님의 인기가 높아져야 4대강사업이 중단된다고 관객들에게 말했던 가수 박창근은 당시 박교수님이 예언했던 대로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다며 4대강사업과 관련해서 진실을 알릴 수 있다면 ’박창근 대 박창근‘을 다시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 박창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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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 반대공연 '박창근 대 박창근'을 한 걸로 안다. 4대강 사업 반대 예술행동 등에 참여했는데 부실공사 논란이 큰 4대강 사업에 대해 일반시민 박창근으로서 4대강 사업의 견해를 말해 달라.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박창근 교수와 함께 현장을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했다. 그때 '박창근 교수의 인기가 높아져야 4대강 사업이 중단된다'고 관객들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교수님 말씀 들으면서 '정말 큰 문제점이 있는 사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4대강 사업 중단과 함께 다시 복원해야 하냐'는 질문도 했는데 박 교수는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최근 4대강 사업 관련 뉴스를 보면, 당시 박 교수가 예언했던 대로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는 듯하다. 상당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진실을 알릴 수 있다면, '박창근 대 박창근'을 콘서트 형식으로 다시 할 의향이 있다.

- 박창근씨에게는 채식주의자, 감성을 일구는 농사꾼, 거리가수, 민중가수, 인권가수 등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그 중 가장 불리고 싶은 별명이 있다면?
"본질이 중요한데 어떤 말들 속에 본인을 가두는 것 같아 사실 그런 수식어들을 듣기 힘들다. 이것 또한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그냥 '창작하는 사람 박창근'으로 불리길 원한다."

- 대구를 떠나고 싶은 적이 있었나?
"음악적인 감성과 마음은 늘 대구를 떠나있다. 하지만 음악을 떠나서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로 인해 위안을 삼고 또 오래 살았고 마음의 안식처인 곳이 대구다. '대구가 활동 근거지인 가수 박창근'이 아니라 '삶의 근거지가 대구인 가수 박창근'이다. 올해 대구에서 정식으로 초청받은 곳은 없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활동을 위해서는 게으르지 않게 어디든 힘들어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다."

- 정말 자신이 하고 싶고 추구하는 음악은?
"배운 척, 잘난 척이 안 보이는 음악, 하지만 음악을 아는 사람은 그 음악의 진정성을 알고 공감하는 음악. 거칠지만 마음에서 툭하고 나오는 음악인데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 어떤 세상을 꿈꾸나? 앞으로의 계획은?
"'허무를 알아야 긍정을 안다'고 한다. '지구 생성에서 소멸되는 과정에 인간이 편승하는 건데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그렇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용기가 났다. 공허와 우울은 나의 희망이다. 세상을 꿈꾸기 보다는 이런 희망 속에 서있다. 앞으로 계획이라면,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노래를 제대로 하고 싶다. 24시간 음악만 생각한다. 돈이 있다면 내 극장을 갖고 싶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할 수 있으니까."

[인터뷰] 아날로그 유나이티드기획단 주현준 대표

이번 박창근콘서트를 기획한 주현준씨는 차세대 신진기획 예술인 겸 연주자 간혹 창작자로 불리며 박창근씨와 상당한 작업들을 해왔다. 그는 이번 콘서트가 박창근이라는 가수의 감성으로 12월 연말에 화려한 분위기보다는 한 해가 간다는 공허함, 허무함을 내놓음으로써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창근이 인생의 여행자, 시간의 여행자가 되어 무대를 노래로 채워갈 것이다.
▲ 「아날로그 유나이티드기획단」주현준씨 이번 박창근콘서트를 기획한 주현준씨는 차세대 신진기획 예술인 겸 연주자 간혹 창작자로 불리며 박창근씨와 상당한 작업들을 해왔다. 그는 이번 콘서트가 박창근이라는 가수의 감성으로 12월 연말에 화려한 분위기보다는 한 해가 간다는 공허함, 허무함을 내놓음으로써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창근이 인생의 여행자, 시간의 여행자가 되어 무대를 노래로 채워갈 것이다.
ⓒ 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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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같이 활동하면서 가수 박창근을 살려주는 기획은 별로 없었다. 박창근을 가두고 깎아내리는 기획이었다. 박창근을 나타내 서포트해주고 그의 성향을 나타내주는 기획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고 그게 기획의도다. 박창근은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 삶과 자기 생각을 노래하는 가수다. 그런 박창근을 박창근 답게 하는 것이 컨셉이다.

어쿠스틱한 무대가 될 것이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기승전결 없이 박창근이라는 가수의 감성으로 12월 연말에 화려한 분위기보다는 한 해가 간다는 공허함, 허무함을 내놓음으로써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공연으로 꾸밀 것이다. 박창근이 인생의 여행자, 시간의 여행자가 되어 무대를 노래로 채워갈 것이다.

기존 공연에서는 잘 부르지 않았지만 내면의 감성을 이야기하고 본인이 상당히 좋아하는 노래를 중심으로 부를 것이다. 게스트로 '도시여행자'를 쓴 김대홍씨가 나오는데 관객 또한 모두 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다. 관객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노래를 풀어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대구민예총 웹진 '온장'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박창근 , #'무지개 내린 날개 위의 순간',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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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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