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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아침, 통장님께서 전해주고 간 '취학통지서'입니다.
 12일 아침, 통장님께서 전해주고 간 '취학통지서'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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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 어느 학교로 가야 해요?
엄마 : 아파트 옆 학교로 가란다.
큰아들 : 시골학교 간다면서요.
아빠 : 그러게 그 학교에 전화해 봐야겠다.

12일 아침입니다. 둘째는 이불 속에서 아직 나오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와 큰애, 그리고 막내, 셋이서 밥을 먹습니다. 전날 저녁 제 실력을 한껏 뽐내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맛있게(?) 찌개를 먹는 두 녀석을 보니 흐뭇합니다.

아내는 옆자리에서 찌개 맛이 기막히다며 과대포장을 합니다. 계속 음식을 만들라는 은근한 압박입니다. 그때 쿵쿵쿵, 소리도 웅장합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이 시간에 누가 찾아왔을까요? 엉덩이를 박차고 일어나 황급히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녀석은 밥 먹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찬바람이 '훅'하고 따뜻한 실내로 밀려듭니다. 문을 밀치자 아파트 통장님이 다짜고짜 종이를 들이밉니다.

대충 훑어보니 초등학교 입학하라는 통지서입니다. 서명하라며 내민 종이에 제 이름을 적는데 기분이 묘해집니다. 큰애가 벌써 학교에 갈 때가 됐습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 밥 먹는 일에 집중하던 큰애가 무슨 일이냐며 가볍게 묻습니다. 초등학교 들어오라는 통지서라 말했더니 어느 학교로 가야 하느냐며 되묻습니다.

실은 아내가 몇 달 전부터 시골학교로 큰애를 보내려고 공을 들이고 있었거든요. 굳이 큰애를 시골학교로 보내려는 이유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적극적인 추천과 아내의 특이한 교육철학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큰애가 숲에서 정말 잘 놀거든요. 아들 녀석 덕분에 숲속 온갖 벌레와 특이한 모양의 돌들이 아파트를 가득 채웠습니다. 며칠 전엔 자신이 찾은 놀라운 악기라며 반들반들 둥근 돌덩이 두 개를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더군요.

물론 아내는 다시 한 번 기겁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큰아들은 그 버릇을 끝내 버리지 못하나 봅니다. 이런 아들 모습을 어린이집 선생님이 본 겁니다. 숲에서 제일 잘 노는 아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선생님이 아내에게 넌지시 말했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보다 시골학교 다니며 숲속에서 놀던 행동을 잘 다듬어 보라고 말이죠. 아내 귀가 쫑긋 섰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 아내는 마땅한 시골학교를 찾아 이곳저곳 정보를 모았습니다.

치열한 경쟁 뚫고 큰애는 시골학교에 갈 수 있을까?

숲에서 재밌게 놉니다. 이상한 물건(?)만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으면...
 숲에서 재밌게 놉니다. 이상한 물건(?)만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으면...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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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여수에 있는 한 시골학교에 같이 가보자고 합니다. 아내 말에 궁금증이 생겨 마지못해 끌려가는 척 차를 몰아 그곳에 들렀습니다. 아담하고 조용한 학교더군요. 교장선생님과 면담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시골학교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합니다. 인기가 많은 덕분에 경쟁이 치열합니다. 12월 어느 날 입학을 희망하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비슷한 모임을 갖는답니다. 아내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기다리는 소식은 없고 애타는 시간만 흐르고 있는데 아파트 근처 초등학교로 입학하라는 통지서를 받은 겁니다. 제가 더 조바심이 나서 시골학교에선 연락이 없느냐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깜깜 무소식이라며 전화해 봐야겠답니다. 아내가 굳이 큰애를 시골학교로 보내려 마음먹은 데는 비밀이 있는 듯합니다. 숲에서 잘 노는 아이를 계속 자연과 가까이 있게 하고 싶은 생각이 가장 크겠지요.

또 다른 이유는 어려운 형편에 부담스러운 사교육비 때문일 겁니다. 아파트 옆 학교로 아이를 보내면 학교를 마치고 또래 아이들처럼 학원에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왕따'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내야 합니다.

집에서 아무리 엄마, 아빠가 직접 아이를 가르친다고 해도 그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을 자세히 보니, 학원은 아이들 머릿속에 지식을 더 집어넣어 주는 일도 하지만 또래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만들어주나 봅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함께 다니면서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왕따' 안 되려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다녀야 하는 일이지요. 결국, 아내는 궁여지책 끝에 시골학교로 아이를 보내려고 마음먹은 듯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자연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고픈 엄마의 기묘한 마음이 멀리 떨어진 시골학교로 아이를 보내려는 생각을 만든 겁니다. 그 마음이 안쓰럽고 미안합니다. 그나저나 시골학교에서는 소식이 없으니 답답합니다.

자연과 경제적 이유로 택한 '시골학교'... 소식이 없어 답답

큰애가 둘째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 이 상태로 쭉∼ 가는거야.
 큰애가 둘째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 이 상태로 쭉∼ 가는거야.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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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소식이 없으면 아내는 시골학교로 아이 보내는 일을 포기하고 아파트 옆 초등학교로 큰애를 보내겠죠?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며칠 전 큰애가 가정교사를 하겠다며 나섰습니다. 둘째 한글 공부를 시키겠답니다.

큰애가 동화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둘째가 달려옵니다. 다른 책을 펼쳐들고 형에게 읽어 달라고 조릅니다. 귀찮은 일이지요. 마지못해 읽어주던 큰애가 드디어 머리를 굴린 겁니다.

이참에 둘째에게 글을 가르쳐 직접 동화책을 읽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물고기를 잡아줄 일이 아니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면 되니까요. 그 생각을 깨달은 큰애가 며칠 전부터 꼬맹이 책상과 의자를 나란히 두고 둘째에게 자상하게 글을 가르칩니다.

제법 자기들과 익숙한 단어를 끄집어내 설명을 곁들이는데 재미있습니다. 옆에서 한참을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스스로 글도 배우고 살아가는 다양한 능력을 익히나 봅니다.

둘째는 제가 가르치면 금세 싫증을 내는데 큰애가 재밌게 가르치니 집중해서 글공부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얄팍한 생각이 듭니다. 큰애가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사교육비 걱정은 줄어들겠지요?

큰애가 만화책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자세가 잡혔나요?
 큰애가 만화책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자세가 잡혔나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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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는 스스로 모든 일을 익히고, 둘째는 형을 통해 배우면 큰 시름을 덜 수 있을 듯합니다. 너무 큰 기대일까요? 어쨌거나 모든 일을 스스로 해봐야 속이 시원한 큰 아들입니다.

큰애는 내년부터 시골이든 아파트 옆이든 초등학교에 갑니다. 이제 큰애가 돌멩이며 온갖 숲 속 친구들을 가방에 넣어오는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 녀석이 등에 멘 큰 가방엔 세상을 살아갈 도구들이 가득 차게 될 겁니다.

그 가방을 메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길 바랄 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뿐이란 걸 새삼 깨닫습니다. 겨울 지나 새봄 오면 초등학교로 달려갈 아들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취학통지서,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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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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