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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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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본 추리소설을 읽었다. 추리소설 마니아라고 자처하지만, 추리소설도 하도 많이 읽으니 진저리가 났다. 추리소설 속에서는 살인이 끝없이 이어지는데다 갈수록 범행수법이 잔혹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살인'에, '살인사건'에, '살해방법'에 중독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하나만 죽어도 충격이지만, 그게 계속 이어지면 사람 하나쯤 죽는 건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죽는 사람 숫자가 늘어난다. 둘에서 셋, 넷 이렇게 늘어나지만 그것만으로 충격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내용을 원하게 된다. 그런 독자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작가들은 더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범행수법이 잔혹해지고, 범행동기 또한 거침없이 변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원한에서 비롯된 복수가 가장 보편적인 살해 동기였는데, 이제 그건 아주 고전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보다 신선한(?) 충격을 아주 확실하게 가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이코 패스에 의한 연쇄살인사건들. 죄의식을 손톱 끝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가 등장해서 오로지 성적인 욕망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인간들이 존재하니, 그런 인간이 등장하는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이 독자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고. 그런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로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이코 패스가 대세인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거듭 읽고 있자니 넌더리가 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설이니까, 픽션이니까,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읽는 것이지 실제로 그런 사건이 내앞에서 벌어져 피비린내를 직접 맡게 되면 아마도 속엣 것을 죄다 게워내고 진저리를 칠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한동안 추리소설을 멀리 했다. 하긴 그런 이유 때문에 절대로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이 내 관심을 끄는 건, 추리소설만큼 인간의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건, 자신의 욕망을 가장 극단적으로 실행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결국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 그것이 무엇이든 - 실현하기 위해 살인조차 서슴지 않는 잔혹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게 추리소설일 것이다.

거기에 보태어 기승전결이 확실해서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명쾌(?)한 결론을 내려준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말로 찜찜한 여운을 남기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동안 일본추리소설을 많이 읽다가 기분전환 삼아 여행기를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출간되었기에 읽었다. <제로의 초점>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추리소설의 아버지, 라고도 불리며 현재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는 추리소설 작가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내가 읽은 것은 <점과 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점 하나 찍은 것처럼 아주 미미한 살인사건의 단서를 결국 선으로 이어서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그 이면에는 사건을 쫓는 형사의 끈질김이 숨겨져 있다. 그건 결국 작가가 그만큼 치밀하게 사건을 구상했다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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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 작품을 쓴 것은 지금부터 거의 50년 전이니,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어떤 면은 허술하기 짝이 없기도 하지만, 그 시대만 하더라도 상당한 파격이었을 것이다. 그건 이번에 내가 읽은 <제로의 초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작가는 1958년에 1958년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그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옛날 영화가 퇴락한 여운을 남기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재미나 감동이 꼭 그런 여운을 따라가는 건 아니다.

스물여섯 살인 여자가 열 살 연상인 남자와 선을 보고 결혼한다. 남자는 북쪽 지방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고, 나름대로 회사에서 신망을 얻고 있었다. 남자는 결혼과 동시에 도쿄로 발령을 받아 신혼살림을 도쿄에서 차릴 예정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신혼부부는 역에서 이별한다. 남자는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일주일 일정으로 북쪽 지방으로 떠난 것이다.

결혼한 아내가 마음에 든 남자는 만족감을 한껏 드러내면서 젊은 아내와 기차역에서 이별했지만, 약속한 기간이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다니던 회사 직원과 함께 남편을 찾아 나서지만, 감쪽같이 사라진 남편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여자는 자신이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고, 아내 또한 과거보다는 남편과 함께 할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 묻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결혼이란 대체 무엇일까? 상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 채 섣불리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아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추리소설이라면 아주 당연하게 이런 상황에서 살인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그 사건이 남편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이어져 있는 것일까? 아내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건 속으로 깊숙이 끌려 들어가게 된다.

<제로의 초점>은 요즘 세상에 발표되는 추리소설에 비하면 내용이나 사건 전개, 구성이 단순하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사건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사건을 복잡하게 나열하려고 애쓰지만, 세상의 온갖 추리소설에 단련(?)된 독자라면 작가의 설레발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작품은 읽는 재미가 있다.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남편의 궤적을 추적하는 젊은 아내의 고뇌가 애잔하게 깔려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또한 이 작품의 배경이 된 1958년 일본은 해방 전후의 우리나라 상황과 맞물리면서 그 시대를 돌이켜 보게 한다.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나열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이상북스(2011)


태그:#추리소설,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남편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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