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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는 사진과 함께 보는 구술사입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미친 등록금에 미친 알바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호하고, 이질적이고, 하나로 치환할 수 없는 목소리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생체 실험 딱 한 번... 그래도 전 괜찮은 편입니다"

저는 생계가 절박하지 않아서 생체실험 딱 한 번 했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몸을 팔아서라도 생계를 이어 가야 하니까요.
 저는 생계가 절박하지 않아서 생체실험 딱 한 번 했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몸을 팔아서라도 생계를 이어 가야 하니까요.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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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그리 잘 사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 기 죽고 사는 것 못 보신다며 등록금과 용돈 모두 주셨습니다. 군대 제대 한 후 복학해서 올 한 해 학생장을 했으니 올해 등록금을 제 스스로 해결했다 치더라도 4학기를 아버지가 내주신 거지요. 용돈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더 주신 편입니다.

그런데 전 그게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수업 끝나고 친구들이 밥 사먹고 들어가자고 할 때, 전 그냥 집에 가서 밥 먹으려 참고 간 적도 많았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아끼고 싶어서있지요. 군대 갔다 온 남자라는 게, 참으로 부담스러운 존재입니다. 비록 부모한테 돈은 타 쓰지만, 기회만 되면 스스로 돈을 벌려 하지요. 공부를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눈앞의 자존심이 제일로 무서운 거지요. 이게 우리 세대입니다.

그래서 작년 여름엔 삼계탕집 설거지 알바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두 달 꼬박 했더니 200만 원 되데요. 그래 100만 원은 등록금에 보태 쓰시라고 엄마 드렸고, 100만 원은 제가 쓸 컴퓨터 샀습니다. 올 여름에는 국토대장정 다녀 오느라 알바를 못 했습니다. 알바해서 자존심을 세우느냐, 평생 한 번밖에 오지 않을 사나이의 경험이냐 가운데 후자를 택했습니다. 돈은 다른 방식으로 벌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생체 실험 알바를 했습니다. 금요일에 입소하여 저녁 밥 먹고, 10시에 취침, 다음 날 아침 6시 기상 하고 난 뒤 약을 먹었습니다. 치매 치료약이라더군요. 그 후 두 시간 동안 10분에 한 번씩 피 검사를 하더군요. 이런 과정을 다음주에 또 똑같이 합니다. 그리고 20만 원 줍니다. 벌이가 좋잖아요. 물론 찜찜하지요. 그런데 시중에서 이미 판매가 되는 약이라 해서 그냥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발기부전 치료약 실험을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그냥 안 했습니다. 괜히 불안해서요. 사고가 나거나 죽으면 5억 원인가 준다고 하더군요. 별 일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제가 생쥐가 되는 거 같아 하기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생계가 절박하지 않아서 거절했는데, 그곳에 오는 다른 대학생 친구들 보면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몸을 팔아서라도 생계를 이어 가야 하니까요.

"너무 힘들어 세상의 끈 놓고 싶은 적도...."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밀려 올 땐 세상 끈을 놓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밀려 올 땐 세상 끈을 놓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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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저희 식구들 모두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저 낳기 전에 아빠 엄마 두 분이 연탄 배달 하셨답니다. 이를 악 물고 하셨답니다. 그 후 잘 풀려서 연탄 공장을 인수했고, 아빠는 건사한 회사 이사로 들어가셨습니다. 부자 반열에 들어선 거지요.

그런데 아빠는 사회 생활을 별로 잘 못하시고, 엄마가 잘 하세요. 그래서 엄마 명의로 작은 공장을 하나 인수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고용힌 공장인데, 어떻게 됐는지, 작년에 망해 버렸습니다. 집에 가면 온통 빨간 딱지였어요. 아빠 월급도 압류당하고, 막막하데요. 망하기 전에는 58평 아파트 살았는데, 그 후엔 18평으로 옮겼습니다. 오빠는 남자고 하니까 방 하나 쓰고, 저는 이 덩치로 엄마 아빠랑 같이 잤어요. 뭐 그리 슬프진 않았습니다.

오빠는 휴학하고, 저는 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작년인데, 어떤 까페에서 서빙을 했습니다. 처음엔 일이 서투르다고 시급 3000원 주더니 나중 가서 4000원까지 올려주셨습니다. 방과 후 하루 7시간씩 했는데, 야간 수당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고발 같은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물론 엄마한테는 알바 한다는 말 안했지요. 못 하게 하시니까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테니 공부나 하라고 하시는데,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엄마만 자식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가장 곤란할 때는 엄마가 넌 왜 장학금을 못 받느냐고 하실 때였습니다. 알바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었는데, 차마 그 이야기는 못했지요. 등록금 대출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빚 문제, 압류 그런 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서요.

전 돈이 없는데, 대출도 못 받고... 삶이 너무 힘들어서 술 먹을 때가 많았습니다. 소주 12병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밀려 올 땐 세상의 끈을 놓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이게 운명이라면 그냥 받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힘 내서 삽니다. 밝고 힘차게요. 삶이라는 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럼 됐죠, 뭐.

"성적 하나로 평가... 대학도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등록금이나 장학 수혜율이 너무 낮다거나 하는 불만은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요.
 등록금이나 장학 수혜율이 너무 낮다거나 하는 불만은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요.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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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부터 기숙사비, 용돈까지 모두 부모님이 주십니다. 고1 여동생이 있지만, 아버지가 좋은 직장에 계셔서 경제적으로 곤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바를 하지 않습니다.

알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 노력으로 돈을 벌고는 있습니다. 제가 축구를 무지 좋아하는데, 글쓰기도 좋아하고, 기자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그래서 포항스틸러스 명예 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선수단 동정이나 게임 주변 상황 등을 취재해서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기타 여러 매체에 글을 올리는 겁니다. 그러면 그쪽에서 한꺼번에 계산해 원고료를 주지요. 지난 여름에 그 동안 쓴 거 계산해서 30만 원 받았습니다. 돈도 벌고, 글도 쓰고, 축구도 보고,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 취재도 하고, 저로서는 일석사조입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술을 좋아하거나 하는 편이 아니라서 부모가 주신 돈보다 특별히 더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용돈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래를 스스로 준비하는 거 같아서 뿌듯하기는 합니다. 대학 생활을 건전하게 하는 거 같아서 기분도 좋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니까 그렇겠지만, 공부를 안 해서 학점이 안 좋아도 별로 신경 안씁니다. 학교 등록금이 비싸다거나 장학 수혜율이 너무 낮다거나 하는 불만은 가져보지 못 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요. 그냥 유구무언이지요. 그래서 딱히 대학 생활이나 등록금에 대해 별 불만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걸 시험 결과로만 평가하는 것은 불만입니다. 분명히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못 본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세상은 항상 그 결과 하나만으로 평가합니다. 사회에서 시험이라는 걸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그 과정을 인정해주는 어떤 시스템을 찾아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면 그런 문제는 없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학도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공부와 평가, 그런 것에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이번 겨울방학 때는 알바를 할 생각입니다. 주변 친구들 보니까, 알바가 미래에 대한 투자도 되겠다 싶습니다. 사회를 좀 더 직접적으로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아서요.


태그:#미친 등록금, #알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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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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