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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쌀쌀한 이른 아침 공기를 가르며 교회로 향했다. 오늘은 우리교회 등산선교회에서 금정산 파리봉에서 상계봉까지 산행을 하기로 약속된 날이다. 등산선교회는 건전하고 건강한 등산문화를 만들어가며 친교의 장이 되고 전도의 장이 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지하1층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었다. 모두 모여 인원파악을 하고 이름표를 목에 걸고 조별로 숫자를 확인한 뒤 교회 앞에서 최종 집결하고서 목적지로 향했다. 모인 사람들은 30명 가까이 되었다. 교회에서 출발해서 건널목을 건너 숲 쪽으로 가는 길옆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개천을 끼고 걸어가다가 징검다리를 건너 숲길로 접어들었다. 화명정수장 있는 쪽으로 해서 가는 길이다.

 

나는 아직 성도들의 얼굴도 잘 모르고 있다. 함께 동참하기로 한 남편이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 처음엔 나도 망설였지만 다른 성도들과 좀 더 빨리 가까워지고 싶어서 용기를 내서 나온 것이다.

 

숲은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어 낙엽이 소복소복 쌓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을 산길은 길이 뚜렷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낙엽 깔린 고요한 숲길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조용조용 걷던 때와는 다르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길은 자연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적고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산만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며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나름대로 좋았다.

 

금정산 진입로도 많고 많지만 이쪽 화명동에서 가는 길은 처음이다. 완만한 경사로가 이어지다가 점점 경사는 높아졌다. 아침엔 꽤 추웠지만 햇살이 퍼지고 또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땀이 솟았다. 두툼하게 입고 온 옷을 하나 둘씩 벗어 가방에 넣었다.

 

한참 걷다가 쉬어가는 장소에선 가방 속에 넣어온 간식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어 나눠 먹는 즐거움도 컸다. 파리봉까지 가는 길은 경사도가 높고 제법 길게 이어져서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가다 쉬고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그 사이에 대화도 무르익어갔다. 잠시 쉴 때마다 땀이 식으면서 추웠다.

 

등산길은 아무리 높고 높은 산을 오르고 또 오른 사람이라도 산에 오르는 것은 언제나 처음처럼 힘들다. 언제나 한 걸음씩부터 시작해야 하고 목적지까지 다다라야 하는 길이다. 내려와서 다음에 갈 땐 또 처음부터다. 그러니 언제나 처음처럼 힘들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던 사람도 케이투를 오른 사람도 힘들고,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등을 열두 번도 더 올랐던 사람도 다시 오르는 산은 한 걸음씩부터 걷는다. 누구나 힘들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디딘 발이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간다. 한 걸음씩 내디딤 없이 노력과 수고 없이 땀 없이 단방에 성취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믿는 자에게 있어 등산은 소망으로 인내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감이다. '등산은 인내의 예술'이라 했다. 산은 걸으면서 행하면서 기다리는 것을 가르친다. 등산을 통해 우리는 인내를 배운다. 등산을 통해 기다림을 배우고 겸손을 배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것도, 시작이 반이라는 것도 배운다.

 

무슨 일이든지 시도하고 시작하면 한 걸음씩 나아가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리 눈앞에 높이 보이는 정상이 있다할지라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또한 가르친다. 시도하고 도전하고 나아갈 때, 걸음 옮길 때 어느새 한 걸음이 열 걸음이 되고 열 걸음이 백 걸음이 되고 천리만리를 가게 됨을 배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다.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길이 열리고 홍해가 갈라진다. 한 걸음의 의미와 그 놀라운 기적을 일깨워준다. 작지만 나아가는 것, 시행하는 것,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라도 믿음으로 걸음 옮길 때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고 김준곤 목사는 '예수칼럼에서 "하루 한 시간씩 일생을 집중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대학자가 될 수 있다. 하루 한 사람 전도하면 최대의 전도자가 된다. 소처럼 걸어보라. 신앙은 인내이다"라고 썼다.

 

등산은 동행이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처럼 우리의 동행과 교제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신다. 동행 속에서 친교와 나눔이 있다. 또한 인생은 순례요 우리는 순례자임을 가르친다.

 

등산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 하나님의 그 놀라운 신비의 손, 그 은택을 느끼고 누리게 한다. 자연 속에서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 그 신비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삼라만상,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호흡하며 느끼며 누리며 안식하라한다. 그 넉넉한 품에서 마음껏 즐기며 노래하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쉬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초대장이다. 만물 가운데 조화롭게 하신 하나님. 인간도 역시 피조물임을,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대자연 속에서 사랑하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또한 일깨우신다.

 

파리봉까지 오르는 경사 높은 길에서 모두 힘들어 했지만 마침내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당도한 파리봉(615m)정상에 도착했다. 파리봉 표시석 앞 전망대에 서서 금정산 일대를 두루 조망하며 상쾌한 바람을 쐬었다. 파리봉에서 바라보면 금정산 고당봉과 이어진 능선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별개의 산처럼 느껴진다. 파리봉은 금정산성 줄기의 끝부분인 셈이다.

 

금정산 파리봉(615m)은 금정구 금성동과 북구 화명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우리말에 '파리'는 유리, 수정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정상 봉우리의 기암괴석이 수정처럼 아침 햇살을 받으면 영롱한 유리알처럼 빛난다 하여 수정이라 했다는 것이다. 파리봉 앞에 있는 전망대에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파리봉에 잠시 머물다가 상계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1망루에서 도란도란 모여앉아 각자가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놓고 조별로 둥글게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먹거리도 다양했다. 김밥을 가져온 사람, 유부초밥, 주먹밥 등 밥 종류도 다양하고 반찬 종류도 가지각색, 조별로 앉아 밥을 먹지만 젓가락 들고 이쪽저쪽을 넘보며 맛난 것 한 젓가락씩 갖고 오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점심을 먹고 뜨거운 커피도 마시고 이제 상계봉으로 향했다.

 

상계봉(638.2m)은 금정산 남쪽에 솟은 바위 봉우리이다. 북구와 금정구의 경계선에 있는 산으로 상계봉이란 이름은 산정에 있는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닭의 볏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으며 이 봉우리가 부근에서 가장 높아 새벽이 먼저 밝아온다는 뜻으로 상계봉이라 했다고 전한다. 파리봉에서 상계봉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고 길도 완만한 능선길이라 어렵지 않다.

 

상계봉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 제1망루 있는 곳에서 남문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하산 길은 그야말로 산책길이나 마찬가지다. 길은 완만하고 편안한 길로 이어졌다. 남문에서도 한참 내려와 산성마을에서 버스를 탔다.

 

이번 등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 같다. 산길 걸으며 친교도 나누고 오름길과 내림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도 전하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 각자 자기 집을 찾아 제각기 다른 정류소에서 내렸다. 나는 화명동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양산으로 향했다. 즐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 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워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들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 '산을 오르며')


태그:#금정산, #등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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