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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내 가슴 속 조선학교>와 <학교 가는 언덕길>출간 기념 '시를 노래하는 밤'에 배우 권해효가 출연했다.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내 가슴 속 조선학교>와 <학교 가는 언덕길>출간 기념 '시를 노래하는 밤'에 배우 권해효가 출연했다.
ⓒ 아시아프레스 고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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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학교에서 사라진 것들이 조선학교에는 다 살아있었습니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선생 사이가 신뢰로 끈끈하고 이지메(집단 괴롭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지요. 선생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참 신기했습니다. 원래 일본의 시인들은 이렇게 사회적인 내용으로 시를 쓰거나 발언을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뜨거운 마음이 이렇게 책을 통해 나오니 매우 기쁘고 큰 힘이 됩니다."

무대 위에 올라 한국의 관객들 앞에서 일본어로 지어진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가와즈 기요에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녀를 비롯한 55명의 일본인 시인들은 지난 2010년부터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시킨 일본 정부에게 항의하기 위해 일본 각지를 돌며 조선학교 지지를 호소하는 시 낭송회를 열고 있다. 그들은 조선학교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해방 후 65년 간 일본에서 분단과 차별의 역사를 견디며 동포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조선학교를 조명하는 책이 출간된다. 지난 27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는 출판사 <올벼>의 조선학교 연작인 <내 가슴 속 조선학교>와 <학교 가는 언덕길> 출간 기념 '시를 노래하는 밤'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내 가슴 속 조선학교>의 저자인 배우 권해효와 <학교 가는 언덕길>의 저자 중 하나인 재일동포 시인 허옥녀, 일본인 시인 가와즈 기요에,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대표인 다나카 히로미와 일본인 9명, 성애순, 임경아 등 조선학교 출신 예술인들이 출연했다.

<학교 가는 언덕길>, 일본과 재일동포 시인들 조선학교서 만나다

<학교 가는 언덕길>
 <학교 가는 언덕길>
ⓒ 올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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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언덕길>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조선학교의 역사, 조선학교가 재일동포 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담아 직관적으로 그려낸 시선집이다.

지난 2010년 3월, 일본 정부는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양심적인 시인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이 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며 집회를 열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인 시인 가와즈 기요에가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정책은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며 비교육적인 처사라는 취지로 시선집 <조선학교무상화제외반대 엔솔로지>를 기획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선학교무상화제외반대 엔솔로지>에는 일본인 시인 55명과 재일동포 시인 24명이 참여했다.

<학교 가는 언덕길>은 이 <조선학교무상화제외반대 엔솔로지> 중 38편을 골라 번역한 책이다. 책에는 시인들의 문학적, 사회적 고민을 담은 시와 사진작가 안해룡이 작업한, 지난 65년 동안의 조선학교 변천을 담고 있는 자료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 제작 등 조선학교 지지 운동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조선학교 방문이 늘어나면서 그간 막연히 조선학교에 덧씌워져 있던 폐쇄적인 이미지가 조금씩 걷어지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수확 중 하나다. <학교 가는 언덕길>을 만든 재일동포 시인이면서 오사카 조선중급학교에서 3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은 허옥녀씨는 "일본 사람들에게 조선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일본 글로 시를 지었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본인들이 학교를 찾아와 아이들을 보면 일본 학교에서 사라진 소중한 가치들이 여기에 남아있다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선학교 그림에세이 <내 가슴 속 조선학교>

<내 가슴 속 조선학교>
 <내 가슴 속 조선학교>
ⓒ 올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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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속 조선학교>는 현재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특유의 자유롭고 활발한 의식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일본 토호쿠 대지진 피해를 입은 재일동포 지원과 조선학교 지원에 발 벗고 나섰던 배우 권해효의 글과 1500여 명의 조선학교 학생들이 그린 그림 152점을 엮었다.

현재 재일 조선학교 구성원의 60% 가량은 한국 국적자이다. 10% 정도는 일본 국적, 그리고 나머지 30%는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 조선 국적은 한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아닌, 일제에게 병합되기 이전 조선 제국의 국적이다. 즉, 나라 없는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30%나 되는 셈이다.

배우 권해효는 책 속에서 자신이 만난 조선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소개하면서 지금 왜 일본 안에서 한국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나라 없는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조선학교 아이들과 우리가 함께 내일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생각을 풀어나간다.

<학교 가는 언덕길>과 <내 가슴 속 조선학교>의 판매 수익의 절반은 일본 지진피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모임인 '몽당연필'에 기부된다. <올벼> 최강문 편집주간은 "국내 최고의 캘리그래퍼 이상현씨도 무료로 책 제목을 만들어 주었고 저자인 권해효와 일본 시인들, 재일동포 시인들도 인세를 기부했다"며 "책을 통해서 조선학교의 상황이나 어려움 미래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인 시인 가와즈 기요예와 재일동포 시인 허옥녀
 일본인 시인 가와즈 기요예와 재일동포 시인 허옥녀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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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보며, 우린 뭐하고 있었나 싶었다"
[인터뷰] <내 가슴 속 조선학교> 저자, 배우 권해효

<내 마음 속 조선학교> 저자 권해효
 <내 마음 속 조선학교> 저자 권해효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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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슴 속 조선학교>를 읽어보면 감수성이 풍부한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감탄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옵니다. 직접 만나 본 학생들은 어떤 느낌인가요?
"아이들을 키워 본 분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이 대부분 비슷해요. 그런데 조선학교 아이들은 훨씬 더 자유로운 느낌이 있어요. 일본 분들께 물어봐도 이상할정도로 활발하다고 해요. 활발함과 유머감각 같은 것들이 한국 아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부모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 일상 속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그림 같은 걸 보시면 알겠지만 색깔이나 구도를 잡는 감각이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떻게 하면 남보다 빨리 잘 그리는지를 학원 다니면서 배우고 초등학교만 끝나면 미술은 던져 버리는 한국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그림들을 그려요."

- 일본 지진피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모임인 '몽당연필' 공동대표를 맡게 된 계기와 조선학교 지원 활동에 열심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몰랐다면 모를까 조선학교를 알게 되었는데 모른 척 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부끄러움으로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저에게 정말 큰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일본에서도 많이 받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부른 겁니다'라고 답합니다.

조선학교를 생각하고 본다는 것은 감상적이거나 동정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적인 일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당면한 모든 문제들, 복지사회로 가기 전에 극복해야 할 분단, 현대사의 굴곡들을 마주보게 하는 일이에요. 6·15 공동선언 10년 만에 우리 사회에서 통일과 역사청산 문제는 철지난 유행가처럼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선학교에는 언젠가 돌아올 조국을 위해 국적도 없이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사실상 가장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이죠. 요즘 복지국가 논의가 유행하는데 한반도 평화가 없다면 복지국가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현실적인 고민들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열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오는 12월 14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1000주면 20년이 넘는데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마찬가지로 조선학교를 보면 65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태그:#내 마음속 조선학교, #학교 가는 언덕길, #권해효, #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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