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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열하는 김훈 중위 모친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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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중위 사망사건'에 대해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국문과영문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장준하 사건'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장준하 사건 담당조사관은 참 야무지고 명료하게 장준하 사건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심쩍은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 조사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말은 생명이 되어 내 폐부를 강렬히 뚫고 들어왔고 나는 금방 그 조사관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조사관이 바로 고상만씨다. 그는 내게 2003년 그가 쓴 <니가 뭔데 -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를 선물했다. 그 책에서 상당 부분을 고상만씨는 김훈 중위의 죽음이 왜 타살인지 논리정연하게 제시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5일, 8년 만에 고상만은 김훈 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진전 상황을 대폭 보강한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발간했다.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책으로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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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다 읽었다. 사실 2004년 이래 나는 고상만씨로부터 김훈 중위 사망사건과 장준하 사건에 관하여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지난 해 그가 근무하던 친일재산조사위원회(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15798)
와 내가 일하던 진실화해위원회(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9063)가 문을 닫고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길거리로 쫓겨났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40~50대 가장인 우리는 한동안 '구직자' 신분으로 이틀이 멀다 하고 자주 만나 행주산성도 가고 북한산도 오르내리며 김훈 중위와 장준하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수없이 나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주로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 편이었다.

내가 본 고상만은 형사 콜롬보보다 뛰어난 추리력, 관찰력, 집요함을 갖고 있으며, 장준하처럼 불붙는 정의감과 역사의식의 소유자로 함석헌과 맞먹는 문필력을 갖고 있다. 이런 3가지 능력과 감각을 갖춘 고상만이 발로 뛰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쓴 역작이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이다.

전쟁 중인 미군보다 많이 죽는 평상시 한국 군인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사건발생 2시간 만에 김훈 중위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하고,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혈안이 되었던 국방부에 분노가 치밀었다. 또 지금 전쟁 중인 나라보다 더 많은 군인들이 죽고 있는 우리 군대의 생명과 인권경시 풍조에 치가 떨렸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한해 평균 600여 명의 젊은이가 군에서 죽었고, 2000년대도 해마다 300여 명의 젊은이가 군에서 죽음을 맞고 있다. 저자 고상만이 지적했듯이 1990년 7개월 동안 걸프전에서 죽은 미군이 269명에 지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전시가 아닌 우리나라 군대에서 한해 300여 명의 군인이 죽는다는 것은 결코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고 김훈 중위
▲ 고 김훈 중위 고 김훈 중위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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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김훈 중위 유가족과 인권운동가인 저자가 막대한 인력과 천문학적 예산을 가진 국방부에 대항해 조목조목 의혹을 제기하며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요구했지만 국방부는 앞뒤가 안 맞는 '해명'과 거짓말로 태연하게 이들을 농락한다. 책을 읽고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잃은 한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놓고 이렇게 비인도적이고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일관하는 국방부의 몰상식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국가가 자국민의 인권을 경시하고 무시하면서, '신성한 병역의 의무' 만을 부르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국가에서는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인권사각지대로 끌고 가서 '개죽음'을 당하게 만드는 행위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현 정권 실세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하며, 군대에서 사망한 군인들에게 국가가 적법하게 예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기록은 기억보다 소중하다

이 책 '추천의 글'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이 책은 대한민국 군대 인권사....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이라고 적었다. 그렇다. 1998년 2월 24일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25세의 젊은 김훈 중위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를 치열하게 묻고, 따지고, 밝히며, 역사에 기록하는 일은 또 다른 제2, 제3의 억울한 김훈과 한 많은 유가족들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다.

1999년 1월 13일 당시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에게 국방부 특조단장이 한 "언론과 국회, 인권단체를 내 편으로 만들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김척 장군 부부만 남아 평생 진상규명에 매달리도록 할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철저히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기고 잊지 말아야한다. 그래서 기록은 소중한 것이다.

저자 고상만이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사회가 간과해 왔던 군의문사에 대해 최초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 대한민국이 징병제 국가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도 인정해 주지 않는 나라라는 점에서, 또 앞으로 군대에 갈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의 군내에서의 인권문제는 그래서 결코 가벼이 넘어갈 주제가 아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군대를 인권사각지대로 계속해서 방치해 둘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를 상대로 한 1심 재판에서 패소한 후 법원에서 김훈 중위 어머니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오열하는 김훈 중위 어머니
▲ 오열하는 김훈 중위 어머니 오열하는 김훈 중위 어머니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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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한민국 맞아요. 나는 국민입니다. 여기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맞나요?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나요? 우리가 정말 국민인가요?"

우리가 김훈중위사건을 그대로 묻어두고 남의 일인양 냉담하게 방치할 경우 김훈 중위 어머니가 법원에서 한 절규는 이 땅의 다른 어머니들의 절규로 끊임없이 반복되어서 우리에게 돌아 올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분노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고상만은 김훈 중위사건 조사 중 국방부 모 대령과의 잊을 수 없는 전화 통화내용을 소개했다. 그 국방부 대령은 저자에게 말했다.

"그깟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훼손해요? 전쟁이 나면 장군도 팡팡 나가 떨어져 죽는 마당에…. 거 쓸데없는 일 그만 하세요."

그는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단다. 자기 아들이 죽어도 그가 그렇게 말했을까? 고상만은 그의 말이 고위 영관급 장교가 한 말이라고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천박함이 넘쳐 흘렀고 그것이 김훈 중위 사망을 보는 국방부의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히 적는다.

고상만은 또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각 언론이 연일 도배하다시피 기사를 쏟아내던 1998년 12월 어느 날 아주 점잖은 중년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전방부대 소속 모 군종신부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고상만에게 자신의 부대에서도 여러 건의 사망사건이 있었다며 서두를 꺼낸다. 그러면서 참 점잖게 "고생이 많다", "좋은 일 한다" 등등 신부다운 격려의 말을 한다.

그런 다음 나온 이 군종신부라는 사람의 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일은 가려서 해야지요. 부모들이 애 새끼들을 나약하게 키워 툭하면 자살하게 해 놓고는 뭘 잘했다고 부대까지 찾아와서 항의를 하는 것인지 한심스럽소. 지들이 자식새끼들을 잘못 키워 자살하도록 해 놓고는 부대까지 찾아와서 항의를 하니 참 한심합니다."

고상만은 그가 한 말은 차마 다 옮겨 적을 수 없는 수준의 폭언이었고, 듣다보니 화가 나서, "당신, 신부 사칭해서 전화하는 거지? 당신 같은 사람이 신부일 리가 없어. 한 번만 더 전화해서 헛소리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상만은 지금도 그가 신부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리고 아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인간이 제발 신부가 아니길 바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또 김훈 중위 사건을 둘러싸고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보통 상식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물음인 것이다, 그런데 그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국방부 관계자 답은 어이가 없다. 극히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 사건의 자문위원이었던 고상만은 "애초 유족은 몰라도 자문위원으로 추천된 우리들은 자유롭게(총기사건 전문가인 노여수 박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국방부 특별조사단(특조단)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특조단 관계자는, "억울하면 언론에 대고 말해"라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또 유족과 저자를 포함한 자문위원들에게 사건현장검증을 약속한 특조단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는 장면은 더욱 기가 막힌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후 우리는 특조단측 수사관으로부터 참으로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총알이 나간 방향 등에 대해서만 조사하고 애초 약속했던 화약흔과 지문 채취 조사는 계획에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특조단장의 철썩 같은 약속을 언급하며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현장의 군수사관은 '우리는 그런 지시를 받은바 없다.'며 간단히 무시했다.... 판문점에서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바로 특조단장을 찾아갔다. '특조단이 이렇게 인권단체를 기만할 수 있습니까? 왜 약속을 어긴 것입니까?'하며 항의하는 나에게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알 수 없는 미소만을 얼핏 얼핏 얼굴에 보이며 앉아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하는 표정이었다."

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장군
▲ 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장군 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장군
ⓒ 김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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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반항하는 '자살'도 있나?

특조단에 대한 저자의 또 다른 질문이다.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특조단이 주장하는 판문점 벙커 내에는 격투와 반항 흔적을 밝히며 저자는 이렇게 독자에게 묻는다.

"부산스럽지 않은 가운데 엄숙하게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통상 자살의 정황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자리에서 누군가와 격렬하게 다투거나 반항한 흔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죽음을 자살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여러 가지 정황 증거를 제시하며, "국방부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김훈 중위는 자살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 책을 정독한 나 역시 그러한 저자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동의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국방부관계자, 법조인, 인권과 생명이 존중받는 민주사회를 꿈꾸는 평범한 시민들 역시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한 젊은이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군대에서 사망했다. 자살이라는 것을 국가가 밝히지 못하면 타살로 순국처리를 해주고 망자와 그 유가족에게 적절한 예우를 해주는 것이 민주국가의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후배이자 친구이며 정신적 스승인 저자 고상만을 응원하며, 1999년 12월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던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장군의 말을 대신하여 이 글을 마친다.

"지난 세월동안 모든 것을 바쳐 진실을 찾아 헤매면서 군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끼며 대한민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예비역 3성 장군으로서 국가안보에 평생을 바친 우리 가족조차 이럴진대, 군에 보낸 자식이 의문사 당한 일반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며 그 동안 쓰러지려는 나를 추슬러 왔다. 타살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내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폐와 조작에 의해 진실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이번 소송은 진실의 승리를 위한 작은 디딤돌을 놓은 것에 불과하다."

덧붙이는 글 |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고상만 지음. 215쪽, 책으로여는세상, 11,500원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한 인권운동가가 13년 동안 추적한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숨겨진 진실

고상만 지음, 책으로여는세상(2011)


태그:#김훈, #김척, #고상만, #김성수, #군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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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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