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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생들과 군포에 있는 수리산 산행을 하던 중 여동생이 인터넷에서 본 우스갯소리를 해줬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우스갯소리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떤 70세 여성이 동창회에 다녀와서 한숨을 푹 쉬고 있었어. 남편이 '왜 그래? 또 친구 중에 물방울 다이아몬드 반지 끼고 온 친구 있었어?'라고 물었다지 뭐야? 그러자 그 여성이 하는 말이 뭐였는 줄 알아? '오늘 참석한 친구 중에 남편이 살아 있는 여자는 나밖에 없구려'라는 거야!"

 

평소 같으면 이런 이야기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자극적인 소릴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을 텐데…. 여동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말 속에 뼈'가 들어 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조크' 같지만 좀 더 깊이 새겨보면, 분명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령 남정네들에게 들려주는 무언의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다.

 

우스갯소리가 끝나자 여동생은 "오빠도 언니한테 잘해요"란다. 내일모레면 고희를 바라보는 오빠를 둔 누이동생의 '충정' 어린 충고라 생각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왠지 꺼림칙했다. 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남편의 능력이 쇠퇴하고, 힘 빠지고 나면 아내에게 짐이 돼 귀찮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막상 듣고 나니 고령의 남성으로서 너무나 수치스럽고 자존심 상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기로서니 어떻게 '평생 가족과 가정을 위해 희생한 남편'들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우스갯소리로 깎아내리는 세상이 됐단 말인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문화는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 여겨 감히 여성들이 남정네들과 인격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그 시절엔 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월등히 많다 보니, 유교문화에 뿌리를 둔 '가부장제'를 살아온 기득권층이 남성을 하늘에 비유해 여성을 하대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현대는 우리나라 성비율이 역전돼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아지면서 '여권 신장과 남녀평등' 사회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자 가부장제의 근거가 됐던 호주제가 폐지됐다. 호주제 폐지를 바라보며 여성들이 과거 남정네들로부터 받은 하대에 대한 '앙갚음'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운 생각도 했다.

 

야! 친구야 너 요새 '공장' 잘 돌리니?

 

 

얼마 전 6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이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 때 한 학급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때 만난 동창들은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평생 '동창생'으로 지낸다. 그러다 보니 동창생들은 남녀의 밀담을 넘어 이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거리낌 없이 터놓고 하곤 한다.

 

어느 날 우리 모임 때면 늘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한 여성 동창이 나더러 "야! 너 요새 공장 잘 돌리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뭐라고? 아니, 내가 학원을 운영하는데 공장은 무슨 공장?"이라 답하니 그 친구는 혼자 배실배실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보러 "에라이! 이 숙맥아!"라며 "얜 아직 공장 돌리는 것도 모른단다"라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내게 던진 질문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질문의 의미는 '아직 아내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사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 이 여편네야! 난 아직까지 끄떡없이 공장 잘 돌리며 산다, 어쩔래!"라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바닥을 뒹굴며 한바탕 신 나게 웃었다.

 

원만한 부부 사이 위해선 적당한 운동과 취미생활 있어야

 

옛날 같았으면,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은 벌써 '북망산천'에서 떠돌고 있어야 할 연배다. 그런데 세상이 살기 좋아져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 수명이 지난해 말 기준 80세를 넘어섰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볼 때, '국민 수명 연장'을 무조건 반길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지난 16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사회통합위원회의 공동조사 결과 '우리나라 여성 10명 중 7명이 늙은 남편을 돌보는 부담이 커져 부부 간 갈등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있단다. 이번 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우리 부부 사이를 돌아보게 됐다.

 

올해 내 나이는 '6학년 8반'이다. 나는 아내와 자그마치 9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 앞서 말한 여론조사의 결과에 더욱이 신경이 쓰인다. 일종의 경종의 메시지랄까. 기분이 좀 그렇다.

 

하지만 여론조사의 결과가 어찌 됐든 간에 나는 아직 그 여론조사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내게 '혹시 진시황에게 불로초라도 선물 받아먹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아내에게 무시당하지도, 작아지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남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처럼 내놓고 자랑할 직장은 아니더라도 아직은 하루 17시간 근무(학원 운영)하는 일터가 있다. 또한 일 년 사시사철 새벽 5시 15분이면 알람 소리에 '전광석화'처럼 깨어나 자전거를 타고 새벽바람을 가르며 헬스클럽에 달려간다. 2시간 반 동안 흠뻑 땀 흘려 운동하고, 경쾌한 기분으로 귀가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그리고 매주 2회(수·일요일) 시간만 나면 산행을 떠나 보통 6~9시간의 힘든 산행을 한다.

 

이런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아니,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어떻게 버티며 생활을 하느냐'며 신기해 하지만, 모든 것은 실행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하는 생활 속에서 나는 인생의 활력소를 찾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 대해선 아내도 마찬가지다. 내가 새벽 운동 다녀오고 나면, 아내도 오전에 운동하고 오후 시간 대부분은 교회나 동사무소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부부는 저녁이나 돼야 따뜻한 밥상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서부전선에 이상 없이' 부부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결혼 40여 년 동안 잡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잘살고 있다.

 

요즘 시대엔 남자라고 군림하려 해선 곤란해

 

내 자랑 같지만, 해마다 이맘때 우리 집은 보통 배추 30-40포기 정도의 김장을 한다. 김장할 때, 아내가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시장이나 배추밭에 가 배추를 산다. 또 배추 절이기, 무채 썰기, 속 버무리기도, 간 맞추기 등 김장할 때는 아내를 최대한 도와준다.

 

우리나라 속담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 역시 40여 년을 함께 살다 보니 이젠 아내의 눈빛만 봐도 속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누가 시키기 전에 항상 내가 솔선수범을 보이니 웬만해선 사위 셋이 있어도 칭찬 한 번 하지 않으셨던 장모님도 이번 김장 때는 '우리 큰 사위 같은 사람 드물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런 소리가 반갑다. 왜냐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위한 일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같은 일을 해도 나 스스로 알아서 찾아 그 일을 하면 그 기쁨은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돌아온다. 또 도움받는 아내 역시 기분이 좋아지니 이쯤 되면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인 셈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바보처럼 놓친단 말인가. 이렇게 남편이 솔선수범하며 살면 아무리 아내가 농담으로라도 '하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언제나 수평관계, 건강한 부부생활을 유지하며 멋있게는 아니어도 장단 하나만큼은 잘 맞춰 사는 편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되려면 부부간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철저하게 간섭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상호 간의 신뢰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애처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혹시 아내와 외출이라도 할 때면 아내와 보통 5m 정도 거리를 두고 걷는 남자다. 아마 그동안의 운동과 등산 때문에 걸음이 빨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면 아내는 늘 잔소리처럼 '어쩜 저렇게 여자를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을 내가 어디가 맘에 든다고 콩깍지가 씌어 결혼했을까'라며 불평을 토로할 때도 있다. 이런 소리를 듣게 되면 난 언급을 회피한다. 태생적으로 걸음이 빠른데다가 '느림의 미학'에 익숙하지 못한 것인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오히려 내 생각 같아서는 반대로 아내가 조금 빨리 걸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했다간 모처럼 외출을 망칠 것이 분명하니 그냥 참는다. 나는 이렇게 꾹 참고 제 갈 길을 가는 '6학년 8반' 보통남자일 뿐이다. 건강한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길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보통남자'들의 할 수 있는 일이다.

 


태그:#인수봉, #북한산, #암벽, #도전,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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