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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85호 크레인 농성 309일만에 내려온 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본관 현관 앞에서 배우 김여진씨를 만나 포옹하자 김여진씨가 울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85호 크레인 농성 309일만에 내려온 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본관 현관 앞에서 배우 김여진씨를 만나 포옹하자 김여진씨가 울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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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35m 크레인 위에서 네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은 계속되었고 그 소식은 방송매체보다 SNS를 통해 더 직접적이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희망버스' '절망버스'의 말도 안 되는 논쟁이 인터넷을 달굴 때 '그렇게 간다고 그 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 나의 시선은 그쯤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309일, 마침내 그가 살아서 땅을 밟았다. 거대한 자본의 욕심을 이겨내고 환하게 웃으며 세상에 안겼다. 희망버스가 이겼고 SNS가 이겼고, 1%에 저항하는 99%가 이겼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였던 그들이 졌고, 기업하기(만) 좋은 풍토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졌다.

이 투쟁의 승리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혹자는 '노동운동의 전설을 썼다'고 하고, 또 혹자는 전 세계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자본 저항의 첫 승리를 일구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동의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309일 고공농성 투쟁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 87년 6월 노동자 대투쟁에 이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다. 장고한 투쟁의 기간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이라는 계급 운동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계급·계층을 초월한 99%의 힘을 모아 승리로 일궈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롭게 조명되고 평가받아야 한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였던 그들이 졌다

크레인에서 내려온지 4일만에 구속영장기각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된 김진숙 지도위원과 사수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레인에서 내려온지 4일만에 구속영장기각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된 김진숙 지도위원과 사수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철순(sol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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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직 승리를 이야기하고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도 든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99%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낸 투쟁은 승리가 분명하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낸 것은 분명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바위는 여전히 바위로서 견고하고, 그 바위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힘없는 사람들의 삶은 처절하다.

인력 감축안이 시행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윤아무개씨가 목을 맨 채 발견된 것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기 이틀 전 일이었다. 지난달 4일 차량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죽어간 고아무개씨, 지난달 10일 희망퇴직 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집에서 목을 맨 김아무개씨... 19명의 죽음은 한결같이 쌍용자동차 인력감축과 직간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살과 사회적 타살의 모호한 경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죽음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면 김진숙 지도위원과 99% 사람들이 일궈낸 승리는 다시 한 번 힘 모으고 가야 할 환승역일 뿐 종착역은 아니다.

최근 정부는 아파트 경비원 같은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해 내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던 최저임금 100%를 3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최저임금 100%를 강제할 경우 대량 해고가 우려되기 때문에 내년에는 최저임금의 90%, 2015년에야 100%가 될 수 있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고작 100만원 남짓한 최저임금을 두고 시한에 임박해서야 대량해고 때문에 최저임금 100% 지급을 3년 유예한다니... '고양이 쥐 생각한다' 속담, 딱 그 모양새가 아닌가? 비겁하고 치졸하다. 그럴 것 같으면 최저 임금제가 왜 필요하고 노동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2009년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100만 비정규직 해고설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가로막고 나서던 정부. 이명박 정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싼값에 이 사람들 쓰세요' 같은 저가 마케팅 같은 고용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안건을 말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안건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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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고용대박이란다.

"지난 8월 고용 '서프라이즈'를 넘어서 마(魔)의 50만 명대에 진입했습니다. 신세대의 말을 빌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고용대박'이라고 하겠습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했다는 이 발언을 대하면서 도대체 '고용대란'과 '고용대박'도 분간할 판단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장관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 30대 취업하지 못한 자식들을 대신해 황혼의 나이에 단순 서비스업에 뛰어든 노인들이 많아지는 현상을 보고 고용대박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청년 실업은 단지, 힘들 일을 싫어하는 젊은이의 게으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인가?

나중에 박재완 장관은 말실수였다고 사과했지만, 되돌아 보면 이명박 정권의 고용 정책은 임기 내내 값싼 노동력,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력을 공급하는 데 중심이 맞추어져 있었다.

저가 마케팅 같은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

중소기업에 20만 명이 넘는 인력이 부족하다며, 눈높이를 낮추면 충분히 취업이 가능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2009년 11월 16일 라디오 연설은 사실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의 '고용대박' 발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취직하지 않는 것은 '너희 탓'이라는 대통령의 연설.

힘들고 어려운 노동 강도는 그만두고서라도 대기업과 몇 배의 차이가 나는 임금 격차. 성과급에 보너스는 넘보지 않더라도 월급 받아 학자금 대출 갚고 생활비 정도도 충당할 수 없는 저임금 구조를 그대로 두고, 언제 잘릴지,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불안한 일자리 20만개가 널려 있는데 왜 대기업만 쳐다보고 공무원 취직만 준비하냐고 다그치듯 말하는 대통령. 임기 내내 입버릇처럼 말했던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실제는 '값싼 노동력 창출'의 미사여구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묻고 싶다.

노동은 더 이상 생활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국가의 노동 정책은 더 이상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먹고 살 길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자본은 더 이상 일자리와 부를 나눠주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대형 자본은 노동자를 값싼 임금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시장을 왜곡하면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는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서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자본은 거대해졌다. 그 중심에 국가가 있다. 기업이 잘 되어야 국민들이 잘 산다고 믿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 경제와 노동 정책. 철저히 무능하거나 맹신이라고 말할 만치 편향되어 있다. 그래서 한계다. 노동자와 서민은 밥줄의 한계고 정부는 정책 생산과 집행의 한계에 와있다.

그렇게 때문에 자본은 더 횡포하다. 시쳇말로 노동자, 서민들 목숨이 파리 목숨 같다.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아'라는 말을 비정규직 노동자를 관리하는 관리자는 입에 달고 산다. 그 한마디에 휴가는커녕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노동 현실이었다.

인력 감축과 정규직 축소, 비정규직 정규직 대체를 자본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정규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줄을 서고 카드의 돌려막기에 지친 실업자는 아들과 함께 오르지 말아야 할 옥상 난간을 오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저항하는 노동자들, 서민들에게 공권력의 채찍을 들었다. 손배소를 이야기하고 파업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냐고 다그쳤다. 노동자의 파리 목숨 같은 해고에 대해서 해고의 사회적 비용은 일언반구 없이 파업의 사회적 비용만 운운하는 것, 그 자체가 노동 정책의 편향 증거 아닌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동료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관계자들 앞에서 소감을 밝힌 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동료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관계자들 앞에서 소감을 밝힌 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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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횡포와 국가의 편향은 저항을 낳는다. 홍익대 청소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에 김여진이라는 연기자와 날라리 외부 세력이 힘이 되었다. 서민들의 판잣집 철거 용역 강패들의 횡포를 김미화라는 연기자가 폭로하고 나섰다. 아이들의 밥그릇을 놓고 자기의 정치 행보를 저울질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을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갈아 치웠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300일이 넘는 고공농성도 이러한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막가파식 자본에 대항하고 국가의 편향된 정책에 저항하는 투쟁은 오늘도 여전히 곳곳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막장으로 몰린 사람들. 1%의 탐욕에 99%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일자리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희망을 빼앗겼다. 1% 탐욕을 제어해야 할 정부의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김진숙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투쟁은 언제까지 정당할 것이다. 전 세계 99%가 그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7월 24일 희망버스 시국회의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 말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끝없는 죽음. 지금도 일 터전과 생활 터전에서 쫒겨나는 사람들. 동전의 양면 같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와 도시 서민. 농민과 영세 자영업자. 등 맞대지 말고 가슴을 맞대며 헤쳐나가야 할 일이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태그:#김진숙 ,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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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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