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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하다얙 마애디 역 앞의 양떼. 카이로에는 목동도 많다. 목동들은 양들을 주택가로 몰고 다니며 쓰레기를 먹인다. 에이드를 앞두고 곧 잡힐 양들이 모여 있다.
 메트로 하다얙 마애디 역 앞의 양떼. 카이로에는 목동도 많다. 목동들은 양들을 주택가로 몰고 다니며 쓰레기를 먹인다. 에이드를 앞두고 곧 잡힐 양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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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력의 마지막 달인 '디엘하가'의 1일은 무슬림들의 명절인 에이드(이드 알-아드하, 희생제)이다. 에이드는 <꾸란>에 나오는 이브라임과 이스마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알라가 이브라임의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고 이에 이스마엘도 동의한다. 그래서 이브라임이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고 죽이려는 순간, 알라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고 미리 준비해 둔 양을 주며 그것으로 대신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와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알라에게 절대 충성했던 이브라임과 이스마엘을 기리기 위해 무슬림들은 양과 소를 잡아 이웃과 나누며 이 명절을 즐긴다.

에이드 시작 약 열흘 전부터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에이드는 최대 고기 소비 기간이기도 하여 특히 정육점, 생닭집 등에 더욱 사람이 많다. 정부에서도 국민들의 고기 소비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에이드 시작 한 달 전부터 여러 가지 준비를 해왔다. 그중 한 가지로 이집트 정부는 에이드 기간에 서민들에게 저가로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뉴질랜드, 수단, 브라질 등에서 고기를 수입하여 시중의 절반 가격인 약 35파운드에 공급한다고 발표하였다. 물가가 크게 올라 대형 마트에서 소고기 1Kg의 가격이 약 75~80파운드인 것을 감안할 때 명절 물가를 잡기 위한 파격적인 대책이다.

이집트에는 길거리에서 임시로 천막을 쳐놓고 고기를 파는 정육점인 '사다르'가 많이 있는데, 정부는 마트를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특별히 이 '사다르'를 통해 저가 수입 고기를 방출할 계획이다.

천막 정육점인 '사다르'. 마트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이번에 수입된 고기도 이 '사다르'를 통해 유통되었다.
 천막 정육점인 '사다르'. 마트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이번에 수입된 고기도 이 '사다르'를 통해 유통되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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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맞아 잡은 고기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

에이드인 지난 6일(이하 현지 시각) 새벽, 하루의 첫 아잔(무슬림에게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리고 난 다음 이들의 의식은 시작되었다. 건물의 옥상이나 마당, 혹은 정육점 등에서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소와 양을 잡는다. 이슬람식으로 동물을 잡아 바로 피를 다 빼내는 방식을 '할랄'이라고 하는데 이 방식에 따라 동물을 잡았다. 하루에 여러 집이 동물을 잡다보니 동물을 잡는 사람들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며 그날 하루만도 십여 집을 돌았다.

이렇게 잡은 동물은 그 고기를 나누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또 가족과 나누어 먹는다. 라마단 기간에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동물의 고기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데 쓰이고 동물의 피는 악귀를 쫓는 데 사용된다. 피를 손바닥에 묻혀 집 벽이나 차 유리창 등에 찍는데, 이렇게 피 묻은 손자국을 보면 귀신이 그곳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배수 시설이 없는 카이로 시내는 에이드 하루 동안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된다. 주로 주택가나 시장을 중심으로 고기를 잡기는 하지만, 지하로 물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동물의 피나 동물을 잡는 데 사용된 물 등이 건물 바깥으로 나와 도로 위에 그대로 있게 되는 것이다. 피비린내도 진동한다. 동물은 주로 에이드 당일에 잡지만 그 전날이나 그 다음날에 잡는 경우도 있어 에이드 기간 동안에는 피를 보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정도이다. 길거리에는 고기를 떼어낸 동물 뼈가 쌓이고 수레에 동물의 가죽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에이드 아침 풍경. 가판대에 소머리가 놓여 있고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에이드 아침 풍경. 가판대에 소머리가 놓여 있고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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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에게서도 명절 용돈 받아

이집트 사람들은 이렇게 잡은 고기를 먹고 모스크에 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친척집을 방문하고 극장에 가거나 쇼핑몰에 가면서 명절을 즐긴다. 모스크 앞에서 만난 아홉 살짜리 아멜(9세, 학생)은 "에이드 기간에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고, 모스크에서 기도하고 돌아올 때 아주머니들이 맛있는 봉봉 사탕을 주어서 좋다"며 천진하게 웃었다. 하지만 조카와 같이 모스크에 온 아야 무함마드(57세, 직장인)는 "에이드 기간이 일할 때보다 더 힘들다. 가족들과 친척들을 위한 음식 준비를 해야 하고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 년에 한두 번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쉬린 오마라(20세, 학생) 가족들은 카이로에 있는 큰집에 모여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함마드 오마라(65세)는 "사람들이 다 지방으로 내려가 길이 막히지 않아 편하고 좋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저녁을 함께 먹고 다가올 선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로브나 아쉬라프(19세, 학생)는 명절에 '에디야'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에디야'는 명절에 받는 특별 용돈인데 한국으로 따지면 세뱃돈의 개념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옷이나 과자 등을 사주지만 학생들에게는 용돈을 주로 주는데, 집안 어른들께만 받는 것이 아니라 약혼자에게도 선물처럼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약혼은 결혼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정식 이성 교제로서 허가를 받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약혼을 많이 하는데 로브나는 "약혼자가 없어서 '에디야'를 아빠한테만 받았다. 약혼자에게도 '에디야'를 받은 친척 언니가 사실 좀 부럽다"며 웃었다.

로브나 아쉬라프 가족의 식탁 모습.
 로브나 아쉬라프 가족의 식탁 모습.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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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첫날만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에이드 다음 날인 7일, 이집트 최대 쇼핑몰인 시티스타는 사람들로 넘쳤다. 세일을 하는 곳이 라마단 때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가족들의 모습은 세계 어디나 비슷했다. '자라' 매장에서 만난 한 가족은 "딱 하나만 사라"는 아빠와 "둘 다 예쁘니 제발 하나만 더 사달라"는 딸이 실랑이를 벌였고, 손에 풍선을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린 한 아이는 다시 장난감 가게로 들어가려고 떼를 쓰며 복도에 드러누웠다.

시티스타 외부 출입구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와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이 엉켜 정체를 빚었고, 출입이 제지된 여러 무리의 청년들이 입구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어 도로는 더욱 혼잡했다.

시티스타보다 조금 작은 규모인 대형매장 까르푸 몰도 사람이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장만큼 넓은 2층 옥외 주차장이 꽉 차고 손님들을 태우려는 택시들도 길게 늘어섰다. 시티스타와 달리 대중교통이 거의 전무한 곳이어서 택시들이 짐이 많은 손님들을 상대로 호기롭게 흥정을 벌이는 것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법정 공휴일은 4일이지만 주말을 끼고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는 이번 에이드 기간이 중반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오지 않아 아직까지는 카이로가 조용하고 한산하다. 대형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도 있고 집에서 조촐하게 음식을 나누며 명절을 보내는 가족도 있다. 대(大)명절에 모든 가족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명절의 첫날만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집트 사람들의 모습에서 명절이 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에이드가 끝나고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 다시 반복되겠지만 명절 기간 동안 얻은 활력으로 새롭게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이집트가 되길 기대해본다.

라마단이나 에이드 같은 명절에는 이러한 놀이기구들이 주택가에 등장한다.
 라마단이나 에이드 같은 명절에는 이러한 놀이기구들이 주택가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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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최대 쇼핑몰 시티스타.
 이집트 최대 쇼핑몰 시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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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에이드, #이드 알 아드하, #이집트, #카이로,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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