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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

문득 떠올라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나 문자보다 편지로 연락을 하고픈 계절 가을이 익어간다. 출근길 잠시 지상으로 올라온 전철의 창 밖으로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물들고 있는 은행나무들을 볼 적마다 가을을 실감하기도 하고 이러다 훌쩍 떠나버릴까봐 초조해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일에 치이다 미쳐 가을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추운 겨울과 마주쳐 버렸던 허무한 날들이 떠올라서인가보다.

일명 '애정남'이라고 해서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가 요즘 인기다. 팍팍하고 바쁜 서울살이로 멀리 떠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요새 가을 여행지로 어디가 좋을지 애매~해서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나도 한 번 애정남이 되어 도심속 좋은 가을 여행지를 딱! 정해 드립니다잉~. 가을은 정말 짧죠. '언제 가을 여행 한 번 떠나야지' 생각만 하고 있으면 훌쩍 달아나버리는 게 가을입니다. 중요한 건 그냥 가는 거예요. 이런저런 준비하지 말고 작은 가방 둘러메고 가까운 곳으로 훌쩍 떠나 보세요.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담벼락과 담쟁이 잎이 가을엔 더욱 잘 어울린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담벼락과 담쟁이 잎이 가을엔 더욱 잘 어울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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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넓은 곳에서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가을도 감상할 수 있는 정독 도서관
 마당 넓은 곳에서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가을도 감상할 수 있는 정독 도서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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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가을도 느끼고... 정독 도서관에 가는 거예요~

인사동이 코앞인 수도권 전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내려 바로 오른쪽의 골목길로 들어선다. 동네의 옛 정취를 짐작하게 하는 '승주 의상실'를 지나자 꼭대기에 아담한 종이 달려 있는 것이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안동 교회'가 작은 벤치와 함께 여행자를 맞이해 준다. 건너편엔 오래된 한옥 고택이 마주하고 있고, 집 담벼락에서 살고 있는 담쟁이 잎이 가을색으로 예쁘게 물들어 있다.

'아트선재센터'나 '정독도서관' 방면 골목길로 들어서니 양편에 작은 공방과 갤러리들이 다양한 예술작품들로 눈요기를 하게 해준다. 예쁜 카페들도 있지만 도서관앞 골목답게 '라면 땡기는 날' 같은 작은 분식집들이 모여있어 입맛을 땡기게 한다. 오래된 학교 자리였던 정독 도서관은 넓은 마당의 봄, 가을 정취가 남다른 곳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노랑색과 주황색으로 물든 도서관의 가을 풍경속에서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들고온 책을 '정독'하기가 힘들다.    
    
삼청동 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가을의 모습들
 삼청동 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가을의 모습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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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런 감나무를 보고 싶다면... 삼청동 골목으로 가는 겁니다~  

책과 단풍으로 배부르게 정독 도서관을 나오면 소격동 골목을 따라 이제 본격적으로 삼청동을 향해 가는 길이다. 이정표에도 나오는 '삼청동길'은 사실 '삼청동 거리'가 더 맞을 듯 싶다. 크고 작은 카페, 맛집과 독특하고 예쁘게 꾸민 갤러리, 옷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골목, 노랗게 물들은 채로 길가에 도열해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들, 삼청동 동사무소 앞에 주렁주렁 주황색 열매를 맺은 두 그루의 감나무··· 세련되고 정겹기도한 도시의 다양한 풍경이 산책하기 좋은 길보다는 걷기 좋은 거리에 어울리는 곳이다.

가을이라 더욱 진한 커피향이 나는 가게들 앞을 두리번 거리며 지나가다 요즘 보기 힘든 클래식 자전거를 탄 사람과 마주치기도 한다. 모자와 코트를 멋지게 두른 영화배우 '양조위'를 닮은 중년의 아저씨는 '서촌'에서 왔다고 한다. "아! 통인시장이 있는 동네죠?" 알은 체를 했더니 무척 반가워 하신다. 하는 일이며 자전거 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통인 시장 부근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클래식 자전거가 여러대 있으니 구경오라며 명함까지 받았다.
   
탐스럽게 영근 감을 맛나게 먹고 있는 참새들이 '감이 참 달다'는 듯 소리높여 지저귄다.
 탐스럽게 영근 감을 맛나게 먹고 있는 참새들이 '감이 참 달다'는 듯 소리높여 지저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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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구경할데 많은 삼청동 거리에서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곳은 가게들 뒤쪽의 동네 골목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좁은 골목을 따라 동네 안쪽으로 살짝 들어왔을 뿐인데 갑자기 사위는 고요해지고 터벅터벅 내 발소리가 생경하고 새삼스럽게 들린다. 이맘때 삼청동 골목의 매력은 바로 예쁘고 탐스러운 열매가 달린 감나무들. 아파트에 점령당한 서울에선 보기 힘든 감들이 집 담장위로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사진도 찍으며 감나무를 한참 올려다 보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새들이 날아온다. 맛있게 익은 감을 먹으러 온 새들로 까치, 참새들과 시커먼 까마귀까지 찾아와 감을 쪼아 먹느라 분주하다. 새들이 감을 먹는 진귀한 장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대~박"이란 요즘 유행하는 표현이 절로 터져 나온다. "감이 참 달다"는 듯 참새들이 소리높여 지저귄다.     

노란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인 삼청동 거리를 무심코 걷다보면 지뢰를 밟은 듯 '딱'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에서 뭔가가 퍽 터진다. 조금 후 뿜어져 나오는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진한 냄새, 바로 은행알이 터지면서 나는 냄새다. 자연은 무슨 조화로 하필 이런 냄새를 은행알에게 부여했는지 몰라도 이 거리를 이맘때 걸을땐 은행잎 사이에 놓여있는 작은 '지뢰'들을 조심할 일이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낙엽 밟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낙엽 밟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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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공원은 서울성곽길과 북악산의 들머리 이기도 하다.
 삼청공원은 서울성곽길과 북악산의 들머리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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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약수물 마시며 푹신한 낙엽 밟으며... 가을 산책하는 거예요~

삼청동 거리의 끝에는 동네 주민들의 안식처 삼청공원이 기다리고 있다. 월드컵공원이나 올림픽 공원같은 큰 곳은 아니지만 북악산 자락에 있어서인지 어느 공원보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산책하기 좋은 숲속같은 공원이다. 물이 맑고 숲이 맑아 덩달아 사람의 마음까지 맑아진다고 해서 삼청(三淸)이라고 불려진 곳 답다. 서걱서걱 과자소리가 나는 낙엽을 밟으며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락 내리락 길을 걸으며 공원을 한바퀴 돌다가 마주친 약수터는 더욱 반갑다.

빨간 바가지에 약수물을 떠서 시원하게 마시는데 뒤에서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벤치에 어느 작가의 동상이 다리를 꼬고 자연스럽게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마치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께 옆에 잠깐 앉았다 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낙엽 밟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공원 한쪽에선 초등학생들의 가을 사생대회가 한창이다. '심사위원들이 척 보면 다아니 부모님은 아이들의 작품에 손대지 말아달라'는 대회 관계자의 방송이 풋~ 실소를 자아낸다.

이 공원은 위치도 좋은지 '서울성곽길'과 '북악산 하늘길'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이정표를 따라 나무 데크길을 조금 오르자 정말 성곽길이 나타나고 눈아래 도시의 전망 탁 트인다. 산행이 아닌 산책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북악산 자락의 아름다운 경치와 따스한 가을햇살을 만나게 되다니,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된다.

수도권 전철 3호선 안국역에 내려 - 정독도서관 - 삼청동 거리와 골목 - 삼청공원까지의 가을 낭만 산책길
 수도권 전철 3호선 안국역에 내려 - 정독도서관 - 삼청동 거리와 골목 - 삼청공원까지의 가을 낭만 산책길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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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0월 30날 다녀왔습니다. 삼청동엔 11월 첫째주에 은행나무와 단풍의 절정이 될 것 같아요.



태그:#삼청동,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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