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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가니>의 한 장면.
 영화<도가니>의 한 장면.
ⓒ 삼거리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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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가 소설로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그 책의 작가 공지영을 좋아해서 보게 됐다. 그런데 내용이 내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여성 장애인 성폭력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작가에 대한 고마움도 들었지만 그 책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까 봐 안타까웠다.

그런데 최근 영화 <도가니>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쉽지 않던 법 개정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도가니>로 나타난 현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 정작 그 빙산이 왜 만들어졌는가, 어떻게 하면 그 빙산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근본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도가니>에 나타난 것보다 더 심한 여성 장애인 성폭력도 많다. 그 대부분은 가족과 동네 같은 공동체 집단에서 발생한다. 그런 가족과 동네에 의한 여성 장애인 성폭력 문제는 외면하고, 단지 광주에 있는 그 학교 하나만 가지고, 심지어 수십 년 전에 인권침해된 사건사고까지 들추어 마치 그 학교만 문 닫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사람들은 <도가니>를 보고 '세상에 저런 일이'하며 놀라며 여성 장애인 차별과 폭력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여성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해 왔다. 여성 지적 장애인을 일가족이나 혹은 동네 주민이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증언을 해달라고 하면 비장애 이웃들은 남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예의라는 듯이 모두들 불편한 침묵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판 과정에서도 '저 사람은 절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라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여성 지적 장애인들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서는 마치 머리에 꽃을 꽂고 배회하던 들병을 하룻밤 품고 자는 것은 하나의 묵인된 사회적 관습이라는 이문열 소설처럼 '그럴 수도 있지!'하고 애써 회피하려 한다. 반면 일반 여성의 성폭력 같은 경우에는 '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도가니>에서 나타난 것은 진실 전부가 아니다. 그저 교육계에서 일어난 한 단편일 뿐이다. 지금도 우리들의 이웃에서는 도가니보다 더 심한 여성 장애인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사례를 수집해 책을 만들고 워크숍을 행하고 정책 개선을 유도하는 가두 캠페인도 벌였다. 하지만 사회적인 이슈화는 되지 못했다.

<도가니>를 만든 감독이 속편을 제작하면 어떨까. 가족들이, 이웃들이 우리의 딸들을 성폭행하는 치부를 햇빛 속에 드러내 주어 여성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화학교의 교육자 몇 사람과 학생들에 국한된 상황으로 끝내기에는 우리들 마음의 바다에 떠있는 빙산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빙산의 일각이 아닌 빙산이 햇빛을 받으면 저절로 녹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여성장애인성폭력,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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