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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포경이 금지되기까지 한국 포경업의 중심지였다.
▲ 장생포항 1987년 포경이 금지되기까지 한국 포경업의 중심지였다.
ⓒ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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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의 근대 포경은 러시아 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894년 러시아 귀족 디디모프 께이제를링(Duiduimov Keizerling)이 장생포에 태평양포경회사를 설립하면서 고래잡이가 본격화되었다. 그는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Aleksandrovich Nikolai) 2세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극동 해양에 고래가 많다는 말을 듣고는 포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한국 정부와 협약을 맺어 장생포 등의 해안 부지를 임대하여 포경과 관련된 건물과 저장소 등을 신축했다. 자료에 따르면 구한 말 장생포에서 포획· 해체된 고래가 월 20여 마리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의 포경 규모를 대략이나마 짐작해 볼 수가 있다.(김승, <한말·일제하 울산군 장생포의 포경업과 사회상> 참조)

이보다 앞선 19세기 중반,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제국주의 열강의 포경선박이 동해상까지 진출해 엄청난 양의 고래를 포획해 갔다. 독도가 발견된 것도 미국과 프랑스 등의 포경선에 의해서였을 정도니 그들의 포경 행위가 얼마나 극성을 부렸는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19세기 후반 동해 포경업을 독점했던 러시아는 1904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모든 포경장을 일본에 빼앗긴다. 일본인들은 곧바로 한국 해안에서 본격적인 고래 포획에 착수한다. 1903년~1907년 일본의 3대 포경회사가 잡은 고래는 1600마리가 넘는다. 1917년~1934년 한국 해안에서 포획된 고래는 약 3500마리 정도이다.

소박한 어촌 시절의 장생포
▲ 장생포항 옛 모습(그림) 소박한 어촌 시절의 장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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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장생포는 한국 포경업의 중심지로 올라서게 된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체 고래의 절반 정도가 장생포에서 처리되었다. 일본인들은 참고래, 혹등고래, 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등을 닥치는 대로 포획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계 귀신고래의 씨가 말라 버린다. 귀신고래는 일제 강점기 당시 해마다 포획수가 급감했는데도 일인들은 포획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1945년 8·15해방 후부터 1987년 전면적인 포경금지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장생포에서는 매년 21척의 포경선이 하루 5~6마리의 고래를 포획했다. 지금은 혼획되거나 자연사하는 고래가 연간 80마리 정도인데 이들의 고기는 울산이나 부산 인근의 고래식당으로 팔려 나간다.

인간과 고래는 영원히 적대할 것인가

허먼 멜빌은<모비딕> 제105장 '무적함대'에서 이슈메일을 통해, "고래는 소멸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전직 포경선원인 그는 능률적인 과학 포경이 시작되기 이전 시점인 19세기 중반에 이미 고래의 절멸 가능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는 고래가 인간의 광범위한 추적과 무자비한 포획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 사색해 본다.

1987년 포경 금지 조치 전 장생포항에 포획 인양된 고래.
▲ 고래 해체 준비 1987년 포경 금지 조치 전 장생포항에 포획 인양된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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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결국에는 고래가 바다에서 절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후의 고래는 최후의 인간처럼 자신의 마지막 파이프를 피운 다음, 마지막 담배 연기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인지? 멜빌은 얼마 전만 해도 런던 인구보다 많았던 버팔로의 들소의 뿔이나 발굽이 그 지역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고 하면서 이 놀라운 절멸의 원인은 바로 '인간의 창'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멜빌이 최종적으로 내리는 진단은 놀랍게도 선량하고 낙관적이다. 그는 개체로서의 고래는 죽지만 종으로서의 고래는 불멸할 것이라는 확신을 토로한다. 그는 대륙이 바다 위로 솟아나기 전부터 고래는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고 말한다. 노아의 홍수 때도 고래는 노아의 방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예찬한다. 그는 세계가 네덜란드처럼 홍수에 잠겨 쥐들이 전멸한다고 해도, '영겁을 사는 고래'는 여전히 살아남아서 적도 해류의 높은 물마루 위로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물보라를 뿜어댈 것이라고 자신한다.

'영겁을 사는 고래'라면 그것은 동물이 아닌 불사신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고래의 화해는 가능한 것인가? 멜빌은 독자에게 향유고래에서 나오는 향기로운 용연향이 지독히 부패한 물질 속에서 발견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는 순결은 부패에서 피어나는 법이라고 마치 예언자인 양 말한다.

담론의 마지막에 벌어지는 인간과 고래의 파국적 대결에서도 모비 딕은 에이해브를 죽이기에 앞서 다시 한 번 그의 의족을 빼앗는 방법으로 최종 경고를 보낸다. 물론 첫 번째 경고는 생 다리를 빼앗았을 때 이미 보냈었다. 하지만 오만의 광기를 식힐 줄 모르는 인간은 모비 딕의 경고를 수용하기는커녕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이에 모비 딕은 에이해브를 물어뜯은 후 피쿼드 호에 정면으로 돌진하여 선박 자체를 괴멸시킨다. 배에 있던 인간 모두가 바다에서 죽고 만다.

아니, 모두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피쿼드 호는 북아메리카의 피쿼드 족처럼 섬멸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단 한 사람이 생존한다. 멜빌이 '유대의 추방자' 이슈메일을 살린 것은 단지 그에게 이야기의 전달 임무를 끝까지 맡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고래가 인간에게 준 약속,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러자 관으로 만든 구명부표가 그 자체의 교묘한 탄력으로 배에서 떨어져 나온 뒤, 그 커다란 부력 때문에 광장한 힘으로 솟구쳐 올라와 수면에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른 다음, 다시 바다에 떨어져 내 옆으로 떠내려 왔다. 나는 그 관에 의지하여 거의 하루 동안 부드럽게 뭔가를 불러주는 듯한 망망대해를 떠돌았다. 이제는 상어들도 입에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나를 해치려 하지 않고 내 옆을 그냥 미끄러져 갔다. 사나운 물수리도 주둥이에 칼집을 씌운 듯 조용히 날고 있었다. 둘째 날 배 한 척이 다가와서 나를 건져 주었다."(허먼 멜빌, <모비딕> 중에서)  

이슈메일은 선량한 야만인 친구 퀴퀘그를 위해 짜 놓은 관 덕분에 살아남는다. 고래는 인간을 냉혹하게 징벌하면서도 마지막으로 이렇게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을 잊지 않은 것일까? 그렇기에 사나운 상어와 물수리들도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주둥이에 칼집을 씌운 듯' 이슈메일을 공격하지 않은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래가 준 마지막 선의에 오랫동안 답변을 늦추어 왔다. 뒤늦은 대로 1987년 세계적으로 내려진 상업 포경 금지령이 한 세기 반 전 고래가 준 선의에 대한 답변의 출발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 있다.
▲ 고래연구소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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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빌이 그린 흰 고래 모비 딕은 영겁의 불사신이었다. 우리가 만약 모비 딕을 자연 또는 우주, 우리 식으로 말해 '천지'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면, 소설 <모비딕>은 천지가 인간을 적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노자는 일찍이 <도덕경> 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선포했다. 노자의 말은, 천지는 '어질지도 않고', '어질지 않지도 않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천지는 인간에게 근연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지가 인간을 적대한다고 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물어야 하겠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금세 죽을지언정 종으로서의 인간은 과연 언제까지 이 천지에서 버틸 수 있을까? 그 언제인가는 지구에도 최후가 닥치는 것은 필연이다. 명백히 별의 하나인 태양에도 수명이 있기 때문이다. 태양은 수명을 다하기 전 핵반응을 일으키며 한없이 뜨거워질 터이다.

태양에 속수무책으로 종속된 지구도 뜨거워질 터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더위를 피해 고래처럼 바다로 가서 사는 생물체로 진화할 그 날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인간과 고래는 바다에서 조우할 것인가?(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지 <문학바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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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래, #도덕경, #모비딕, #장생포, #천지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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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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