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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살해 혐의로 사형수 건물에 수감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사연을 다룬 <인디펜던트>.
 남편 살해 혐의로 사형수 건물에 수감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사연을 다룬 <인디펜던트>.
ⓒ <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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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미군과 나토군의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평화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다. 미군과 나토군의 오폭, 탈레반 반군의 공격 등으로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 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아이 9명 죽은 건 주요 뉴스가 아닌가요?"> 참조).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여성을 옥죄는 가부장주의적 사회 체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20일(현지 시각), 남편 살해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세 여성의 사연을 통해 이 문제를 짚었다. 세 여성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여성 감옥에 수감돼 있다.

굴 군차(57)의 결혼 생활은 남편의 폭력과 학대로 얼룩져 있었다. 굴 군차의 남편은 습관적으로 아내를 두들겨 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굴 군차의 남편은 일곱 살배기 딸을 강간한 후, 늙은 남자에게 시집보냈다. 또한 세 살배기 딸을 2600파운드(약 468만 원)에 내다 판 후, 또 다른 어린 딸마저 팔려 했다.

견디다 못한 굴 군차는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굴 군차의 남편은 지역사회에 도움을 청한 것을 문제 삼아 굴 군차와 아이들을 때렸다.

"우리 집에 행복 같은 건 없었다. 있는 건 오로지 폭력이었다. 내 인생에 넌더리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굴 군차가 폭발했다. 남편에게 또 얻어맞던 중, 가마에서 뜨거운 빵을 끄집어낼 때 쓰는 쇠막대기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다.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다. 그렇지만 난 남편이 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 검사들이 날 데려가 감옥에 가뒀다."

굴 군차는 남편 살해 사실을 인정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굴 군차는 1심과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와 달리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기각하고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매 맞던 중 남편 살해한 여성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

아이샤 칼릴(52)과 사예드 베굼(40)도 남편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굴 군차와 달리 자신들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샤 칼릴은 거짓 자백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아이샤 칼릴은 남편이 죽은 후 시동생이 자신에게 결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아이샤 칼릴은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화가 난 시동생이 '아이샤 칼릴이 남편을 살해했다'며 고발했다고 주장했다.

아이샤 칼릴은 1심과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기각하고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예드 베굼은 18년간 교사로 일했다. 사예드 베굼을 남편 살해 혐의로 고발한 것은 두 번째 남편이었다. 두 번째 남편이 자신과 다툰 후, '사예드 베굼이 첫 번째 남편을 살해하는 것을 도왔다'며 고발했다는 것이다.

1심에서 사예드 베굼에게 징역 20년형이 선고됐다. 사예드 베굼은 1심 판결 전에 재판부가 '1900파운드(약 342만 원)를 뇌물로 주면 징역 5년형을 선고하겠다'고 자신에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예드 베굼은 그만한 돈이 없었고, 결국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인디펜던트>는 사예드 베굼이 눈물을 겨우 참으며 이 뇌물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사예드 베굼은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인디펜던트>는 세 여성의 사연을 보도하며 아프가니스탄 사법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뇌물 요구, 거짓 자백 강요 의혹뿐만 아니라 남편의 폭력과 학대의 희생자인 여성의 처지를 사법부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인디펜던트>는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굴 군차의 사연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법 당국도 약간의 자비를 베풀었겠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도했다. 또한 "세 여성 모두 '변호사로부터 오래전에 버림받았다'고 말한다"며 "(이는)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거나 이들을 사면하도록 청원할 사람도 없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인디펜던트>는 판결을 질질 끌며 이 세 여성을 계속 사형수 건물에 가둬두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굴 군차는 2심에서도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무려 7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샤 칼릴도 2004년에 사형수로 갇힌 이래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몇 년을 대기해야 했다. 사예드 베굼 역시 2007년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샴술라 아흐마드자이는 이처럼 재판을 질질 끌며 여성을 몇 년간 가둬두는 것이 사실상의 '이중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샴술라 아흐마드자이는 "재판부가 헌법을 따르지 않고 법대로 시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자살 폭탄 테러 미수범은 사면하면서 우리는 방치하나"

굴 군차, 아이샤 칼릴, 사예드 베굼은 현재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불공평하고 썩어빠진 사법 제도"에 항의하는 단식이다. 아이샤 칼릴은 8월 31일 단식에 돌입했다. 재판 진행 현황을 알려주지 않으면 굶어죽겠다는 각오다.

"(이대로 있느니) 죽는 게 더 낫다. 내 상황은 아주, 아주 나쁘다. (……) 난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도, 아이들도 잃었다. 날 지지해주는 사람이 전혀 없다."

세 여성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 대해 '역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살 폭탄 테러 미수범들은 사면해주면서 자신들은 이렇게 사형수 건물에서 썩어가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프가니스탄 법무부 대변인인 파리드 아흐마드 나지비는 이 여성들의 단식투쟁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이들의 소송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사형 집행을)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대변인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지난해에 살인죄로 기소된 사람을 비롯한 115명의 여성 수감자를 사면하고, 여성 수감자 130명의 형량을 줄여줬다고 밝혔다.

정부 내의 여성 관련 업무 담당자는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석방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해줄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 여성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공허하게 들린다.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사예드 베굼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나에 관한 내용을 읽고 결단을 내리기를 희망한다. 많은 사람이 나를 돕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그:#아프가니스탄, #여성, #가부장제,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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