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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먹고 싶다."

애니메이션 <슈렉>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애니메이션을 보면 장화 신은 고양이가 나옵니다. 그 장화 신은 고양이의 필살기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 간절하면서도 귀여운 눈망울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내.

뭐 평소 같으면 그냥 사 먹으라고 말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볼 때마다 아내의 머리 위로 마치 말풍선처럼 떠오르는 '임신 3개월'! 이 단어를 생각하니 그렇게 말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오빠가 만들어 줄게."
"떡볶이 만들 줄 알아?"
"그럼! 나 옛날에 혼자 살 때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그렇습니다. 몇 년 전 분명 떡볶이를 혼자 해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중국! 다행히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사는 칭다오라 떡볶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내 입맛에 맞는 한국식 떡볶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아내와 내년 3월 말이나 4월 초에 태어날 색색떡(태명)을 위해 제가 직접 떡볶이를 만들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떡볶이를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저는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이후 집에 있던 아내와 전화를 하는 순간

"저녁으로 김밥이랑 떡볶이 먹었어."

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말과 동시에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뒤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떡볶이 먹었어? 나도 떡볶이 먹고 싶은데..."

임신을 한 후에 생각보다 입덧도 심하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얘기도 별로 없던 아내였습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얘기에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찾아다니는 남편들을 보며 아주 약간의(?)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투정이 거의 없던 아내. 그런 아내에게 친한 언니가

'임신의 하이라이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망고 막대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지.'

라는 조언까지 해주었지만 아내는 지금껏 특별히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떡볶이가 먹고 싶었나 봅니다. 좋습니다.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자는 동안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 예전 제 경험대로 떡볶이를 만들자니 물 넣고 떡 넣고 고추장을 풀었던 식이라 아내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정말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떡볶이 만드는 법'

많은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아 시작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검색어를 다시 칩니다.

'떡볶이 간단하게 만드는 법'

'멸치로 육수를 내고'! 아! 똑같습니다. 간단하게 만드는 법이나 그냥 만드는 법이나 똑같은데 어째서 검색어가 다르단 말입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떡볶이라는 요리 자체가 간단합니다. 일단 시도를 해보기로 합니다.

멸치. 아, 이 놈의 멸치.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멸치 볶음을 먹다가 멸치 눈깔이 너무 슬퍼보여서 못 먹겠다고 해서 아내의 알 수 없는 직사광선 눈빛을 쐰 저입니다. 그런 제가 멸치를 이용해 육수를 만들어야 하다니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냉장고에 멸치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도 물론 큰 작용을 했습니다.

일단 멸치는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제대로 된 떡볶이를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에 그 다음 단계는 충실히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파를 먼저 볶는다 그리고 물을 부었다.
▲ 파 볶기 파를 먼저 볶는다 그리고 물을 부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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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를 프라이팬에 볶으세요.'

엥? 파를 왜 프라이팬에 볶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두르기 시작합니다. 이런 너무 많이 부어 버렸습니다. 뭐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파를 넣었습니다. 아무래도 파가 타는 것 같았습니다. 물을 넣기로 합니다. 물을 조금 넣었습니다.

'타타탁'
"앗! 뜨거워!"

아내가 자고 있는지라 조용히 만들려고 하는데 프라이팬에 물을 넣는 순간 파편들이 미친 듯이 제게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큰 소리가 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명입니다! 다행히 아내는 깨지 않았습니다. 프라이팬으로 다시 가기가 무서웠습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물을 조금 더 넣어보기로 합니다. 엉덩이를 쭉 빼고 팔을 쭉 뻗어 프라이 팬에 물을 넣었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다시 기름이 튀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빨리 육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멸치는 포기한 지 오래이고, 다시마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진정한 떡볶이를 만들겠다는 욕심보다는 이제 아내가 깨기 전에 빨리 떡볶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러려면 고추장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어디 있을까? 아내가 양념을 모아 두는 곳을 보아도 고추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 냉장고! 냉장고를 엽니다. 고추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 그런데 이 고추장은 고추장이기는 하나 초고추장입니다.

고민을 합니다. 이걸 넣어야 하나? 넣지 않기로 합니다. 멸치도 다시마도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떡볶이인데 진정한 매운 맛만큼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뒤져도 고추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눈에 띄는 황토색의 한 통! 저것은 분명 된장을 담아 놓는 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나 싶은 생각에 그 통을 꺼내 열어봅니다. 역시 모양과 색깔을 보니 된장이 분명합니다.

고추장이라고 생각했던 된장!
▲ 된장 고추장이라고 생각했던 된장!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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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냄새를 맡아보니 고추장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닙니까? 아 이것이 된장통 속에 숨어 있던 고추장이구나! 이런 것을 찾아내다니! 스스로가 기특해집니다. 그 때 뒤에서 아내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제 등 뒤에서 슥 고개를 내밀더니 하는 소리.

"뭐해? 그거 된장인데?"
"어. 그, 그래? 냄새가 고추장이라서 고추장인 줄 알았는데."

아내는 사실 제가 다 만들 때까지 그냥 잘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러다 걱정이 되어서 나왔나 봅니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동안에도 완성된 것은 아직 덜 끓고 있는 물에 탔을 것이라 심히 의심되는 파! 이것이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지휘를 시작합니다.

떡볶이를 물에 불리고, 어묵을 자르는 등 열심히 아내의 지휘에 따라 열심히 떡볶이를 만듭니다. 무언가 진짜 떡볶이의 모양새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프라이팬에 떡볶이가 달라붙지 않게 주걱으로 떡볶이를 밀고 있을 때 아내의 한 마디가 들려옵니다.

"나 된장 떡볶이 먹을 뻔했네."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어쩐지 미안합니다. 그렇게 떡볶이를 먹고 싶어했는데 된장 떡볶이를 먹이다니. 그보다 더 미안한 일은 아내가 같이 요리를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심하게 입덧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요리를 만들 때 냄새를 맡으면 어쩐지 잘 못 먹는 아내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하고 싶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쨌든 떡볶이는 완성!

원래 아내의 입을 위해 만들었던 떡볶이는 아내의 입보다 제 입으로 최소 두 배는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마구 먹다가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묻습니다.

나름 열심히 만든 떡볶이
▲ 완성된 떡볶이 나름 열심히 만든 떡볶이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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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었어? 더 먹지? 냄새 맡아서 그래?"
"아니, 많이 먹었어. 진짜 맛있어. 자기가 해 준 게 제일 맛있다."

아내의 눈에 애정과 행복이 섞여 있습니다. 떡볶이는 엉망으로 했지만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고 한 제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나 봅니다. 그제야 깨닫습니다.

임신을 한 아내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못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는 최대한 아끼고 사랑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마눌님! 앞으로도 열심히 사랑하겠습니다!

다 먹은 후 제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가 몰래 찍어 놓았군요. 저도 기사를 쓰면서 발견한 사진입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요?
▲ 설거지 다 먹은 후 제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가 몰래 찍어 놓았군요. 저도 기사를 쓰면서 발견한 사진입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요?
ⓒ 이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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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아내가 임신한 지 3개월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같이 정보도 나누고 도움도 받고 싶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출산할 때까지 쭉 계속되겠죠?^^



태그:#떡볶이,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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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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