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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국 바쓰(Baths)에 오면 꼭 들르려고 벼르던 곳이 있었다. 1680년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카페, 샐리 런즈(Sally Lunn's). 가장 흔한 업종 중의 하나인 카페를 한 자리에서 같은 이름을 가지고 3백 년 동안을 살아남은 카페다. 나는 아직도 변함없이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 카페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바쓰의 샐리 런즈로 가는 길을 찾았다. 우리는 우연히 런던에서 만난 젊은 한국인 초등학교 선생님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교대를 졸업한 이 젊은이는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홀가분하게 영국을 여행하고 있었다. 함께 바쓰 시내를 조금 걸어가다보니 샐리 런즈는 오래지 않아 자연스럽게 눈 앞에 나타났다.

샐리 런즈 번으로 유명한 바쓰의 명소이다.
▲ 샐리 런즈 가게 샐리 런즈 번으로 유명한 바쓰의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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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입구의 벽면에는 붉은색 간판에 '샐리 런즈(Sally Lunn's)'라고 크게 적혀 있고 '1680'이라는 창업연도가 자랑스럽게 적혀 있었다. 이 오래된 카페의 입구에는 이 간판만 자랑스럽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게 간판 아래의 벽면에는 이 건물이 1482년에 지어져서 바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임을 또한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었다. 건물이 지어진 연도만 해도 5백년이 훨씬 넘었으니 이 가게 건물 자체가 훌륭한 유적지인 것이다.

1482년에 건립된 건물임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 샐리 런즈 표지판. 1482년에 건립된 건물임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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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정문 입구 위에는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샐리 런즈 번(Sally Lunn's Bun)의 원조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가게는 자랑스런 이야기도 품고 있다. 바쓰를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은 바로 바쓰 번(Bath Bun)을 맛보는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 이쯤 되면 이 카페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직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게 틀림없다.

이 카페는 프랑스에서 이곳 영국 바쓰로 망명해 온 샐리 런즈가 1680년에 문을 연 티 하우스다. 이 가게가 이 건물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 건물은 2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건물이었다. 기본적으로 차를 마시는 티 하우스이기 때문에 특별한 메뉴는 없지만 이 카페는 명물로 회자되는 빵,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 모양의 바쓰 번이 있었다.

일반 카페와 달리 샐리 런즈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비법으로 바쓰 번이라는 빵을 만들고 있다. 바쓰 번은 토스트에 구운 일종의 샌드위치 스낵으로 보통 차와 함께 마시게 된다.  샐리 런즈가 가게 문을 연 이후 점점 바쓰 번으로 명성을 자랑하게 되자 이 가게 앞에는 바쓰 번을 먹기 위해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가게는 모두 3층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게에서 자리를 잡아주기 전까지 잠시 대기줄을 서서 기다렸다. 다른 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으면 내 성격상 심하게 짜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릴 만큼 이 카페의 빵과 밀크 티가 유명하다는 생각에 오히려 줄을 서는 대열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바쓰를 대표하는 대표 먹거리 식당 안에 들어와 있었다. 샐리 런즈는 오후 6시 이후에는 빵을 팔지 않기에 나는 이 가게 안으로 오후 6시 이전에 입성한 사실에도 만족하고 있었다.

제인 오스틴 소설 속의 배경이다.
▲ 제인 오스팀 룸 제인 오스틴 소설 속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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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시 후 종업원이 안내해 준 대로 움직였다. 5백년 된 건물의 목제 계단은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가게는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의 역사와 전통에 더욱 가치를 두는 영국의 역사 속에 있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보존된 건물 안에서 움직이며 2층의 한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안내 받은 방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방'이었다. 우리가 앉은 방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의 배경이 된 카페의 방이었다. 방 내부는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18세기 말 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우리는 18세기의 바쓰라는 시간 속에서 멈춰 있었다. 차 애호가로 유명했던 제인 오스틴도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좁은 식당 내부에는 많은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차를 즐긴다.
▲ 샐리 런즈 내부. 좁은 식당 내부에는 많은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차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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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좌석은 서양의 식당치고는 좁고 옆 자리와 많이 붙어 있다. 5백년 전 건물을 구조 변경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석에는 한가롭게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바쓰의 주민들도 있고 이 카페의 명성을 듣고 멀리서 날아온 동양인들도 많다. 내가 실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바쓰 주민으로 보이는 영국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준다. 나를 보고 웃는 얼굴에는 바쓰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가게 아가씨가 우리 앞으로 메뉴판을 가져다주는데 약간 난감하다. 메뉴판에는 크림 티(Cream Tea), 샐리 런즈 번(Sally Lunn's Bun), 런치 스페셜, 수프 등의 메뉴가 가득 적혀 있는데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하루 내내 주문할 수 있다고 적힌 크림 티 메뉴 안에는 이 가게에서 만든 크림 티 외에도 그 이름 유명한 샐리 런즈 번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바쓰 크림 티(Bath Cream Tea)와 샐리 런 크림 티(Sally Lunn Cream Tea)를 먼저 주문하고, 스코틀랜드식 훈제 연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어떤 맛인지 맛보기 위해 야채 스프 한 개도 추가했다.

티 하우스인 샐리 런즈는 가장 먼저 밀크 티가 나온다.
▲ 크림 티 티 하우스인 샐리 런즈는 가장 먼저 밀크 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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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는 기본적으로 차를 파는 티 하우스이기에 홍차가 가장 먼저 나왔다. 그리고 홍차 와 함께 섞어 마실 우유도 뚜껑 없는 작은 포트에 함께 나왔다. 영국에서는 오후의 간식이나 식사로 홍차와 함께 잼과 크림을 바른 스콘 빵을 먹는데 이를 '크림 티(Cream Tea)'라고 부르고 있었다. 명성대로 홍차에 우유를 섞어 마시는 밀크 티는 부드럽고 맛도 명품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이 입 안에 퍼지고 있었다.

계피 버터가 달콤하다.
▲ 바쓰 번 계피 버터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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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문한 것은 '바쓰 크림 티(Bath Cream Tea)'. 반쯤 구운 바쓰 번(Bath Bun)에 진한 갈색의 맛깔스러운 계피 버터가 잔뜩 발라져 있었다. 버터의 진한 색감은 마치 초콜릿을 잔뜩 발라놓은 것 같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나는 한껏 부풀어 오른 번 위에 크림을 잔뜩 바른 후 한 잔의 크림 티와 함께 맛을 보았다.

방금 구워서 나온 번(Bun)은 따뜻했다. 속에 아무 내용물도 들어가 있지 않은 번의 맛은 예상 외로 담백했다. 조금씩 천천히 밀크 티를 함께 마셨다. 역시 바쓰 번은 밀크 티와 함께 마실 때 그 진가를 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바쓰 번을 한 입 베어 물고 밀크 티를 천천히 마셨다.

바삭하게 구워진 번의 맛이 일품이다.
▲ 샐리 런 크림 티 바삭하게 구워진 번의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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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문한 것은 '샐리 런 크림 티(Sally Lunn Cream Tea)'. 버터가 발라진 샐리 런 번(Sally Lunn Bun)은 바삭하게 반쯤 구워져 있었다. 이 크림 티에는 이 가게 특산의 크림이 2개나 딸려 나왔다. 크림과 스트로베리 잼은 마치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안 된다는 듯이 크림 통에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샐리 런즈 특산의 번을 아내, 딸과 함께 번갈아 가며 나눠 먹었다. 번은 굳이 따지자면 꽤 담백하고 맛있는 빵이다. 어떤 이는 샐리 런즈의 번이 이 세상 밖의 맛이라고까지 하였지만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3백년 역사가 담긴 바쓰의 빵이기에 느낌이 남다르다. 나는 가게의 역사와 함께 변함없이 지켜져 오는 영국 전통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샐리 런즈의 번에 크림 티 한 잔을 계속 곁들이자 지쳤던 다리는 노곤하게 풀려가고 있었다.

샐리 런즈의 번은 샌드위치 빵으로도 훌륭하다.
▲ 훈제 연어 샌드위치. 샐리 런즈의 번은 샌드위치 빵으로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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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식 훈제 연어 샌드위치 안에는 크림 치즈 외에도 레몬과 피클이 들어 있다. 바쓰의 번으로 만들어진 샌드위치에는 샐러드와 감자 칩이 함께 나와서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었다. 예상 외로 샐리 런즈의 번은 샌드위치로 사용될 때 더 맛과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샐리 런즈에서 4가지 메뉴를 4명이 주문하는 데에 총 25파운드가 들었다. 다른 식당이나 티 하우스보다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번과 크림 티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바쓰에서 가장 유명한 한 가게의 역사성에 매혹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출발한 차 문화를 영국은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꽃 피운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나와 나의 가족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문화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영국 내에서도 개성 강한 바쓰의 티 푸드, 번과 함께 차를 즐기고 있었다. 차를 생활의 일부로 정착시킨 바쓰의 주민들과 함께 나는 밀크 티를 마시고 있었다. 내 손에 남아 있던 샐리 런즈 번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여행자에게 향하는 미소가 아주 밝다.
▲ 샐리 런즈 아가씨 여행자에게 향하는 미소가 아주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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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런즈를 나서는 나에게 가게 아가씨가 웃음을 보내며 인사를 한다. 웃는 사람들의 얼굴은 언제나 보기가 좋다. 바쓰는 참 인상이 좋은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8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 #바쓰, #샐리 런즈, #샐리 런즈 번, #밀크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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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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