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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의 가을...
▲ 억새꽃... 금정산의 가을...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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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산에 오른 건 산보 정도의 걷기였다. 4개월 만의 등산, 금정산 동문에서 북문까지 산성길 따라 걷기로 했다. 어디든지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주던 애마 아토스와 작별한 뒤 처음 해보는 산행이다. 집 앞 길 건너 사거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아타고 또 타고 하면서 부산 온천장역 앞에서 내렸고 산성버스에 올라 꼬불꼬불 곡예하듯 출렁이며 금정산 동문 앞에서 내렸다.

모처럼 걷는 산길이건만 오랫동안 산행하지 않은 까닭에 몸이 어딘지 모르게 둔한 데다가 걸음도 무거워 걷기가 힘들었다. 연장도 쓰지 않으면 녹슬고 무디어지듯이, 걷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쓰기도 며칠 쉬고 나면 쓰기가 힘들어 한참을 끙끙대고 책읽기도 하루 이틀 쉬고 나서 읽으면 집중하기까지 산만함을 경험한다. 어디 그뿐이랴. 요리도 한참동안 하지 않으면 미각을 잃어버리고 하기조차 싫어지듯이 걷기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쉬고 났더니 좀처럼 걷기에 탄력이 붙지 않았다.

동문에서 산성길 따라 걷다...가을이다...
▲ 금정산... 동문에서 산성길 따라 걷다...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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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무딘 걸음으로 걷다보니 몸이 어느 순간 가벼워지고 한참 만에 절로 가볍게 걷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게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주 걷고 산을 올라야 한다. 예순이 넘은 크룩스 할머니는 등산을 시작하고 꾸준한 훈련을 하여 66살에 북미에서 가장 높은 4797m의 휘트니 산 정상을 올랐고 81세에서 90세까지 10년 동안 무려 97개의 봉우리를 올랐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쇠퇴하고 힘을 받지 않는 뼈는 약해지게 된다. 오히려 둔해졌다는 것은 당신의 몸이 민첩한 관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마음에 작정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결국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늦더위를 하느라 날씨는 잔뜩 흐리고 공기는 후끈후끈했지만 산으로 들어 숲길 따라 능선길 따라 깊이 걸을수록 바람은 상쾌하고 점점 더 상쾌해졌다. 산성길엔 바람이 깃발처럼 펄럭이고 하늘은 잔뜩 흐려 금방 비라도 뿌릴 듯 하였다. 어느덧 가을로 물들어가는 산길엔 가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반겼다. 얼마쯤 걸었을까. 산성길 옆으로 펼쳐진 완만한 비탈엔 어느새 억새꽃이 피어 흐드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흐린 하늘 개이고 가을 햇살 뽀송 맑은 날이라면 은빛 빛무리 만드는 물결로 멀리 멀리 파도칠 억새였다.

피어 흐드러진 억새물결...
▲ 금정산... 피어 흐드러진 억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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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깊어만 가고...억새꽃 만발...
▲ 금정산... 가을로 깊어만 가고...억새꽃 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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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깊어가는 금정산. 동문에서 북문까지 산성길 따라 걷는 길이다. 억새바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산성길에서 내려섰다. 잠시 오솔길로 내려서서 억새꽃 피어 광활한 억새바다 사이로 걷고 싶었다. 서걱이는 억새들, 거칠거칠 불어대는 바람에, 바람에 스치는 억새들은 엷은 한숨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금정산 억새바다엔 바람과 억새가 스산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속살거렸다. 바람은 억새를 흔들고 억새는 바람에 예민하게 파르르 몸을 떨며 서로 부대꼈다.

바람과 억새 그것들이 화음을 이뤄내는 소리는 내 가슴 속에 넓이와 깊이를 잴 수 없는 허공 하나 를뻥 뚫어놓았고, 뻥 뚫린 허공 안으로 스산한 바람 불어 서걱거렸다. 내 안에 만들어진 허공엔 때때로 알 수 없는 뜨거운 그 무엇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밭 사이 걷는 길. 바람과 억새꽃의 사랑의 언어, 슬프고 목이 메이게 몸을 부비는 소리를 슬피 들으며 걸었다.

금정산에서 만난 엉겅퀴꽃....
▲ 가을... 금정산에서 만난 엉겅퀴꽃....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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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물들다...
▲ 금정산... 가을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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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성길 쪽으로 꺾어 올라가는 길 저만치 4망루가 보였다. 억새물결은 광활하고 바람 부는 흐린 날 산성길은 바람이 거칠어 제법 싸늘했다. 4망루에 도착. 내처 산성길 따라 걷다가 호젓한 숲 속에 자리를 깔고 누워 한 시간쯤 자연의 도닥거림 속에서 쉬었다 일어났다. 북문에 도착. 날은 더 흐려져 금정산 정상 고당봉은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북문에서 범어사로 하산하는 길엔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처럼 하늘은 더욱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문에서 북문까지, 금정산의 가을 속으로 걸었던 하루. 가을인가보다. 가슴 안에 더 크고 시린 허공 하나 부여안고 돌아왔다. 함민복은 '가을'을 짧게 노래했다.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라고.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마음자리에 생긴 허공, 그 안에 '당신' 생각을 켜놓는다. 이제 가을은 더욱 깊어만 가리라.

호젓한 숲길 걷는 사람들...
▲ 가을 속으로... 호젓한 숲길 걷는 사람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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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수첩
1. 일시: 2011년 9월 17일(토) 흐림
2. 산행기점: 금정산 동문
3. 산행시간: 5시간 20분
4. 진행: 동문입구(10:40)-동문(10:45)-약수터(11:45)-4망루(12:40)-의상봉앞 점심식사(12:50-오후 2:05)-원효봉(2:25)-북문(2:45)-금정산 계곡(3:30)-범어사 주차장(4:00)

※ 교통: 물금-구버스터미널: 21번 버스
      구버스터미널(남부시장)-온천장역: 12번 버스
      온천장역-금정산 동문: 203번 버스
      범어사-범어사역: 90번 버스


태그:#금정산, #가을, #억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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