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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명성기구
 국제투명성기구
ⓒ 김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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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15대 경제대국이란 칭호에 걸맞지 않게 청렴도는 한참 뒤져 있다. 지난 2010년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TI)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에서 한국을 10점 만점에 5.4점으로 178개국 중 39위로 평가한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절대부패에서 갓 벗어난 상태임을 나타낸다. 이는 5.6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던 2008년 이후 상승세가 꺾이고 0.1점 낮아진 2009년에 이어 또 다시 0.1점 떨어진 점수다. 12월에 발표될 올해 지수에서도 전망이 어둡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 부패인식지수는 하락세가 완연함을 알 수 있다.

한국 고위 공직자의 병역미필, 위장전입, 탈세, 뇌물 등 비리는 각종 청문회마다 빠지지 않는 메뉴다. 기술면에서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는 기업이지만 건강한 자본주의의 뿌리를 통째로 뒤흔드는 담합에 관한 뉴스는 하루도 그칠 날이 없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매일매일을 적정가 보다도 더욱 비싸게 저질의 상품을 구입 할 수밖에 없다(관련기사 : 한국 교복, 영국 교복보다 비싼 이유 있었네). 최근에는 심지어 건빵과 햄버거를 군부대에 납품하면서 가격 담합한 식품업체들과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준 방위사업청 직원과 현역군인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부패가 덜한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은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만 봐도 알 수 있다.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선정된 5개국은 뉴질랜드,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캐나다였다. 반면 가장 부패한 나라 5개국은 투르크메니스탄, 이라크,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였다. 공정한 국가나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부패는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다.

김거성 회장은 1970년대 학생운동으로 박정희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어 약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1980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또 다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후 인권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하다가 반부패운동을 위해 1999년 한국투명성기구의 전신인 반부패국민연대를 제안,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2007년부터는 이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와 김상근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이어 회장을 맡았다. 지난 9월 16일 김거성 한국투명성기구 회장을 만났다. 다음은 김거성 회장과 우리사회 부패의 현주소와 그 해결방안에 대해 나눈 일문일답이다.

김거성 한국투명성기구 회장
 김거성 한국투명성기구 회장
ⓒ 김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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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반부패 기술을 전수해주었던 부탄 왕국보다도 지난해 부패인식지수가 나쁘게 나왔다. 스승이 제자에게 패배한 양상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나?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 CPI)는 부패 사건들로 단기간 내에 등락하는 지수가 아니다. 이는 2년 정도의 반부패 투명성과 관련한 서베이(조사)들을 기초자료(raw data)로 취합하여 지수로 만든 국제기준의 자료다. 그래서 부패인식지수는 그 나라의 반부패상황에 대한 일시적 인상이라기보다는 지속적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그 의미가 있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2008년 이후 계속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부패관련 기초자료를 보면 올해 12월 발표할 부패인식지수에서도 우리나라 점수는 더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가 상승추세를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부탄의 경우 우리나라로부터 반부패 기술을 전수받은 후발주자였지만 그동안 정부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반부패 노력을 열심히 기울여서 부패인식지수를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 동안 반부패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 큰 교훈으로 삼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면 향후 더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명박 정권 출범 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가 계속 하락세를 보이는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반부패를 일종의 규제처럼 인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독립적 반부패 기관이었던 국가청렴위원회를 폐지하고 다른 기관들과 통폐합시켜 버렸다. 또한 반부패도 대통령 취임사에서 언급하는 주요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대국민 반부패 약속인 투명사회협약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중단시켜 버렸다. 그런데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는 없는 것은 반부패나 투명성 분야도 마찬가지다. 반부패 주제에 대한 이명박 정권 집권초기의 무관심, 아니 경계심이 이런 부끄러운 결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경제계 또한 그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시민사회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 부패, 비리, 담합, 뇌물수여 등의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불평이 나온 지도 오래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개선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반부패 청렴국가를 만들어야 문명국의 문턱에 들 수 있다고 보는데 한국사회 부패근절을 위한 길은 무엇이라고 보나?
"솜방망이 처벌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부패에 관해서는 처벌보다는 예방이 더 중요하다. 부패예방을 위해서는 첫째로 사회문화와 국민의식의 변화, 둘째로 법률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전제에서 셋째의 과제인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한 적발과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방안보다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종합적인 앞의 세 가지 방안이 함께 공유되고 발전되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청렴성의 향상을 이룩하기는 어렵다."

투명사회상 시상식
 투명사회상 시상식
ⓒ 김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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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다. 부패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동기가 있었는가?
"1970년대부터 학생운동과 재야단체 사회운동을 했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을 실현하는데 부패문제가 중요한 걸림돌의 하나라는 생각에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반부패를 활동영역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1999년 시민사회단체들에게 반부패국민연대 구성을 제안했던 것이다. 동시에 국제투명성기구를 이해하게 되었고 반부패 국제네트워크에 투신하게 되었다."

-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선 투명성을 높여서 부패가 들어설 여지를 제거한다. 일례로 각 국민사이에 서로가 서로의 세금 낸 액수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함으로써 상호견제를 통해 부패를 예방하고 투명성을 높여간다. 노르웨이에서는 세금은 곧 사회 복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탈세문제는 곧 사적영역이라기보다는 공적영역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에서도 국회의원들에 대한 입법캠페인을 통해서 세금내역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가?

"북유럽 특히 핀란드의 경우에 공공기록에 대한 개인의 정보접근권은 헌법에 의한 기본권으로 명시되어있다. 즉, 국가안보와 같은 극소수의 예민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공공문서와 기록에 대한 접근권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개인의 납세정보는 공적정보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심지어 그 가족들에 대한 신상정보까지도 대부분 공개한다. 이해충돌을 방지하고 또 공공적 감시를 활성화시키려는 것 아니겠는가?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그러한 정보들을 프라이버시라는 미명으로 지나치게 비밀로 부치며, 또 일반적인 정보공개도 매우 소극적이다. 그렇지만 공공성을 중시하는 세계적 추세는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선진적으로 정보공개조례를 제정, 운영하는 움직임도 있다. 따라서 국회에서도 정보공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정비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일부가 다수를 감시하는 반부패 노력은 성공하기 힘들다. 그 반대로 대다수 선량한 사회구성원들이 일부 부패한 사람이나 기관을 통제하거나 감시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첫째로 공공의 이익을 개인정보보호의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전제에서 둘째로 국민의 정보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북유럽 방식이다. 그리고 그 결과 북유럽은 지금 세계에서 부패와 관련하여 가장 청정한 지역이다.

부정, 부패, 비리라는 식물은 어둠 속에서만 자란다. 이에 비해 책임성과 청렴성이라는 식물은 햇빛 속에서만 자란다. 진정으로 반부패 투명사회를 지향한다면 정보공개법의 전향적 개정은 물론 향후 헌법을 손질할 때에는 공공정보 접근권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삽입해야 할 것이다."

- 신자유주의가 팽배하고 모두가 이윤만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반부패운동을 전개하는 것 자체가 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본다. 반부패운동을 수행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먼저 신자유주의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면, 1997년 한국이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IMF는 한국정부에 '규제철폐'를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 추진했다. 그런데 2008년 2차경제위기가 왔을 때 국제사회가 제시한 처방은 '효과적 규제'로 변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듯이 규제철폐는 지고의 선이 아니다. '정신' 없는 시장은 결국 경제 질서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될 뿐이다. 이러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제도나 기관뿐 아니라 인간에게 가치를 두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인간이라는 가치에서 출발하는 정책과 제도, 나아가 생산과 유통, 소비구조 등으로 재편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극복에서 가장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 속에서 반부패운동가란 스스로 완벽하고 남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 아닐까 오해하는 일종의 장벽이 있다. 그 장벽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래서 일반인을 향한 단체의 외연이나 회원확장도 쉽지 않다. 반부패운동은 부족하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확장되고 제도나 사회를 바꾸어 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많은 보통사람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한 것이 반부패운동이다."

반부패 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
 반부패 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
ⓒ 김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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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나 유럽의 반부패 관련 시민사회단체도 경제적 어려움 면에서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가 아니면 나은 편인가?
"개발도상국의 반부패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유럽이나 북미의 관련 기관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의 반부패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훨씬 풍부한 재원을 갖고 있다. 그나마 북미와 유럽의 단체들은 여러 재단 등으로부터 지원이 가능하다. 부의 사회적 환원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그런 지원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더구나 기업들 상당수가  반부패를 내세우는 시민사회단체를 적대적 조직으로 보는 것 같다.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점으로 말미암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극복이 왜 중요한지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지만 재정적인 난관의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단이나 기업, 정부 등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지원과 참여만이 독립성과 지속가능성이란 관점에서 유일한 해답이다." 

- 한국의 부패문제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가?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또 그 이유는?
"단기적으로 최근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가 하락추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부패문제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이유로는 한국인의 저력 때문이다. 우리는 단기간에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었다. 이것은 곧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반영한다. 다만 수동적으로 오늘 보다 내일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반부패 투명사회를 실현시켜내는 주인공으로 각 영역에서 국민모두의 적극적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 우리나라의 촌지나 떡값을 '문화'로 보아야지 부패나 뇌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는데 이러한 반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 법원이 최근 채택한 법관행동강령에는 "부적절하다고 보일 수 있는 일조차 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 선조들도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처럼 오해받을 만한 일은 아예 하지 말라는 행동강령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관점에서도 촌지나 떡값은 고유전통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탐관오리들이 좋아하던 뇌물일 뿐이다. 서양에도 뇌물이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문화는 없다.

잘못된 관행을 전통이나 문화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은 막아내야 한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도 아니다. 과거에 우리 행정에 '급행료'도 일종의 관행이었지만 이제 상당히 줄어들지 않았는가? 급행료건 촌지건 떡값이건 그저 뇌물일 뿐이다. 그것이 글로벌 기준이다. 이를 무시하고 세계 속의 한국이나 세계수준의 한국의 위상을 기대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거성 회장 좌측, 국제투명성기구 이사회
 김거성 회장 좌측, 국제투명성기구 이사회
ⓒ 김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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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부패나 비리 문제는 무엇이라고 진단하는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잘못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한 권력의 오남용은 '정책포획(policy capture)'으로 정의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바로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본다. 이는 당대 국민에게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후손,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자연에게도 막대한 재앙과 피해를 입히는 것 아닌가?

- 반부패운동 전문가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에게 한국사회 반부패와 투명성제고를 위해 하시고 싶은 제안이나 조언이 있다면?
"'전혀 문외한인 가짜'를 줄여 전문가라 하지 않나?(웃음) 이명박 정부에서는 반부패 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책자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 조건에서 부패인식지수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이를 치욕스럽게 생각하며 책임지려는 정치인도 공직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통치세력부터 대오각성이 있어야 하고 부패관련 무정책과 퇴보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 전제에서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노력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사회는 단순한 표어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정부만의 노력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공공, 기업, 시민사회, 정치 등 사회 각 부문이 모두 참여하여 투명사회를 향해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한다."

청린캠프
 청린캠프
ⓒ 김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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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거성 회장
1976-2009 연세대학교 신학과, 동 대학원 졸(신학박사).
1989-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구민교회 목사
1999-현재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부회장, 회장(현).
2004-2010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이사.
2005-2008 국가청렴위원회 비상임위원
2006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태그:#김거성, #김성수, #반부패, #한국투명성기구, #국제투명성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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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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