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노조를 설립한 4인. 좌로부터 김영태 회계감사, 조장희 부위원장, 박원우 위원장, 백승진 사무국장.
 삼성노조를 설립한 4인. 좌로부터 김영태 회계감사, 조장희 부위원장, 박원우 위원장, 백승진 사무국장.
ⓒ 노동세상

관련사진보기


세 명의 주방장과 한 명의 식당 매니저가 '무노조 경영' 삼성의 단단한 벽을 깼다. 지난 7월 12일 창립한 삼성노동조합(위원장 박원우)을 만든 삼성에버랜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물론 시작은 만만찮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는 선대 회장의 유지가 받들어지는 삼성그룹에서 노조를 만들자 이를 주도한 조장희(39) 부위원장은 서울 남부고용노동청으로부터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기 1시간 전, 회사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먼저 받았다. 연이어 김영태 회계감사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상황이 결코 좋지는 않다.

삼성노조 설립 한 달을 넘긴 지난 8월 20일, '골리앗' 삼성에 맞선 네 명의 '다윗'을 만났다. 다들 의연했다. 서로 마음을 모으고 스스로를 단련해오면서 노조 설립을 준비한 지난 3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 한 통에 짐 싸서 나가는 삼성, '이건 아니야'

먼저 나선 건 부위원장 조장희씨였다. 그는 2002년부터 6년간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사실 처음엔 회사에 노사협의회가 있는지도 몰랐다. IMF가 그를 새로운 세계에 눈 뜨게 했다.

"입바른 소리를 잘해 팀을 계속 돌다가 외환위기 직후에 식당관리 부서로 돌아왔다. 그때 회사에서 사람들을 막 잘라내기 시작했다. 매장으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고 인사팀에 간 사람은 다음날부터 출근을 안 하는 거다. 송별회나 인사도 없이…. 공포분위기 그 자체였다. 안 나가고 버티는 친구들이 있으면 회사는 몇 년 전 실수까지 끄집어내기도 하고, '회사 경영이 좋아지면 다시 부르겠다'면서 나가게 했다."

너무도 쉽게 '권고사직'이란 미명의 해고가 이루어졌다. 그러는 가운데 그가 좋아하는 주방장 선배도 인사팀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노동부 등에 알음알음 물어보니 권고사직은 '나가지 않을 권리가 있다, 사인을 안 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선배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결국 선배는 2~3개월 회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긴 했지만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때 노동법은 몰랐지만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상식적인 의문이 들었단다. 그때부터 노동조합도 알아보고 노동법이라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사협의회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노사협의회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근참법(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도 공부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던 노사협의회 선거에 나가봐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회계감사 김영태씨가 조씨를 보면서 "그처럼 열심히 하는 노사위원도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 김씨가 에버랜드에 들어와 처음 일한 팀의 식당 매니저가 바로 조씨였다. 처음에 잘 챙겨준 고마움도 있지만 김씨가 노사협의회 선거 때마다 회사에서 '문제 사원'으로 찍힌 조씨의 참모 역할을 자처한 건 개인적 친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사협의회 회의만 열리면 안건이 없는지 묻고, 끝나고 오면 결과도 늘 알렸다. 누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하면 자기 일이 아닌데도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걸 보고선 정말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자편이라는 믿음이 갔다. 그래서 주방장 미팅 때면 조 부위원장 얘기도 많이 하고 참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얼마 전 징계위원회에 참석했던 김씨는 "이번에 감사를 받으면서도 노동자편을 들어주는 노사협의회 위원이 없는 것에 정말 화가 났다"고 덧붙였다.

물론 에버랜드 노사협의회는 각 9명씩 노동자, 사용자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노사협의회 안에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담기긴 쉽지 않았다. 선출직인 노동자 위원도 공공연하게 내정돼 있었다. 더군다나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곧잘 따져 묻던 조씨와 같은 직원이 선거에 나가긴 쉽지 않았다. 처음 입후보한 2002년 선거 땐 부서장이 그에게 직접 나가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버랜드 사상 처음으로 노사협의회 경선을 치러 어렵게 당선됐다.

그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하는' 노사위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수시로 직원들에게 여러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곳곳에서 노사협의회의 한계를 절감했다.

"노사협의회는 인사팀 노사협의회 담당 간부가 모이라면 모이곤 했다. 안건 자체도 유니폼, 셔틀버스 운행 등 굳이 노사협의회가 아니더라도 건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벼운 사안이 대부분이었다. 임금이나 정년보장, 우리사주 등 직원들이 정말 원하는 안건들은 다루어지기 힘들었다."

처음에 그는 노동자 위원 9명만 똘똘 뭉치면 노사협의회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어렵게 동지 한 명을 만들었다. 노사위원 출마를 못하는 상황에 있던 직원이었는데 그가 직접 노동부에 지도를 요청해 노사위원 당선을 도왔다. 노사위원이 된 후 그와 함께 사측의 눈 밖에 나면서 힘들어하던 그 직원은 1년여 만에 결국 사측으로 돌아섰다. 똑같은 과정을 세 명이나 반복했다. 좌절했다. 노사협의회 회의에서도 좀 큰 안건만 발의하면 언제나 사측의 대답은 "그룹방침에 어긋나 실행할 수가 없다"로 귀결됐다. '노사협의회를 어떻게 바꿔볼까'였던 그의 고민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로 방향을 틀었다.

노조 설립 결심 후 가족부터 설득하고 매일 만나

지난  7월 13일, 삼성노동조합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고용노동부 남부지청에 노조설립신고를 했다.
 지난 7월 13일, 삼성노동조합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고용노동부 남부지청에 노조설립신고를 했다.
ⓒ 삼성일반노조

관련사진보기


박원우 위원장이 에버랜드에서 13년 동안 일하면서 느꼈던 어려움들을 토로한다.

"출퇴근이 불규칙하다. 성수기인 4~9월엔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 11시까지 일한다. 학생 단체가 있으면 새벽 4,5시에 출근하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13, 14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못 쉬니 육아 부분이 힘들다."

특히 에버랜드엔 사내 커플로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아 주말에 아이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거리기 일쑤다. 박 위원장과 김영태씨도 사내커플 가족이다. 아이들도 3살~6살로 아직 어리다.

에버랜드는 기본급이 낮아 연장근무와 휴일 특근으로 생활비 부족분을 메우는 게 일반화돼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임금이 다른 삼성 계열사에 비해 적은 편이다. 다른 삼성 계열사에서 노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에버랜드의 연봉을 얘기했더니 믿지 않더란다. 박 위원장은 일은 고된데 임금은 많지 않으니 에버랜드의 퇴사율이 높다고 안타까워했다.

몇 년 전부터 정년퇴임보다는 반강제적인 명예퇴직, 희망퇴직이 늘어난 고용불안이나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개별화하는 삼성그룹의 개인주의적인 조직문화 역시 이들이 노조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직원들 사이에 정이 없다는 걸 많이 느꼈다. 저마다 인사고과점수만 잘 받으려고 계산적이 되고, 서로 만날 웃고 지내지만 퇴사하면 연락 한번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회사에서 직원들이 친근해지는 걸 막는, 그런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하다못해 힘들 때 서로 돕는 경조회조차 만들지 말라고 하니…."(조장희)

2009년 1월, 네 사람은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마음을 모았다. 마음을 모으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족들의 동의 구하기였다. 가능한 자주 가족모임을 마련했다. 아직 유치원도 안 간 아이들 대여섯 명이 부산을 떠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아내들에게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노조 설립 얘기에 "왜 꼭 당신이어야 하냐?"고 되묻던 아내들도 차츰 이해해줬다.

한번은 아이들을 다 재우고 아내들과 밤새 끝장토론을 하기도 했다. 일부러 힘든 경우의 수들만 거론했다. 다 같이 해고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는 부분,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회사에선 가족들을 통해 회유가 들어올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지 등을 터놓고 얘기했다. 한번 결심이 서니 오히려 아내들이 더 담담했다. 에버랜드에서 같이 일하는 박 위원장이나 김영태씨의 부인한테 팀내 간부들이나 인사팀 노무담당자가 찾아가 "남편이 왜 꼭 그래야만 하냐. 노조 하면 경제적으로도 힘들 텐데…"라고 회유할 때도 아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남편들도 힘을 냈다. 10년 넘도록 노동조합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들어왔던 이들의 급선무는 '노동조합이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옆에 가르쳐줄 사람은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찾았다. 우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들을 탐독했다.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나온 어려운 법률용어들도 몇 번씩 봤다. 노동운동사도 공부했다. 그러기 위해 일이 밤 10시에 끝나든 11시에 끝나든 매일 모였다. 2009년 말부터 노조를 세운 2011년 7월 12일까지 네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났다.

아무리 동의해 준 아내들이어도 불만이 쌓였을 것 같다. 박 위원장이 답한다. "아내들도 원칙이 있다. 힘들고 짜증도 나겠지만 '왜 노조를 하려고 하냐?'와 같은 말은 꺼내지 않고 생각도 안 하려고 한다." 이들의 확고한 의지를 부인들도 인정하는 게다.

밥 먹는 시간까지 감시해도 의연하게 돌파해

매일 밤 만나 공부도 했지만 한편으론 사측의 탄압사례에 대한 대응 매뉴얼도 짰다. 해고, 도청, 미행, 납치나 감금 등 삼성에서 노조결성 시도 때마다 있었던 예전 사례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지 실제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얘기했지만 우리가 모든 걸 대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원칙은 우선 '회유되지 않는다'다. 그 밖에 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법적 대처를 위해 정황을 녹취 등 증거로 남기기, 무조건 서로 공유하고, 사측은 철저하게 혼자 만나지 않기, 동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고 안전성 확보하기 등 구체적인 행동수칙도 마련했다."

조씨는 이처럼 꼼꼼하게 대응 매뉴얼을 만들면서도 사측이 과거처럼 무자비하게 하지는 못할 거라고 예측했단다. 지난 3년여 동안 회사에서 회유하거나 불이익을 줄 때마다 이들은 정면돌파를 해왔기 때문이란다.

지난해 1월, 조씨는 사내 인트라넷에 '삼성에버랜드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글을 띄었다. 그러자 사측이 사원들을 통해 이들 4인의 행동을 감시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박 위원장의 경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몇 분 앉아 있었냐, 뭐하는지 봐라, 출근하면 주로 하는 일이 뭐냐, 밥은 몇 시에 먹으러 가냐 등에 대해 시시콜콜 다 캐오게 했단다. 바로 인사팀 차장을 찾아가 따졌다. 감시 등에 위축될 4인이 아니었다. 또 월급이나 진급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부당한 발령에 대해선 강하게 항의했다. 사측의 어떤 조처에도 수그러들지 않으니 사측이 쓸 수 있는 카드도 별로 없게 됐다.

물론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건축학과를 나왔지만 요리가 좋아서 다시 조리를 배워 입사했던 김영태씨는 2년 전부터 주방이 아닌 홀로 배치됐다. 20대 후반이란 어린 나이에 주방장이 된 사무국장 백승진씨 역시 지금은 다른 주방장 밑에서 일하고 있다.

"홀에서 일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조리를 좋아했는지 알게 됐다"는 김씨의 말에 자기 일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는단다.

삼성노조 설립 전, 사측 알박기 노조 세워

삼성노조를 설립한 4인은 노조설립을 준비하면서 사측의 탄압사례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면서 '회유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삼성노조를 설립한 4인은 노조설립을 준비하면서 사측의 탄압사례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면서 '회유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 삼성일반노조

관련사진보기


한편 이들의 결속이 단단하다고 사측이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이 7월 1일 복수노조제도가 시행이 되면 노조설립신고를 하자고 예행연습을 하고 있던 사이, 이미 6월 23일 삼성에버랜드노동조합이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노조설립 1주일도 안된 6월 29일엔 단체협약도 체결했다는 거다.

노동계에서는 삼성에버랜드노조에 대해 "현행법의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을 적극 활용해 친회사 성향의 노조를 설립해 2년 동안 교섭권을 독점하기 위한 '알박기 노조'"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삼성에버랜드노조 위원장은 에버랜드 인사팀에서 노무관리를 담당해온 임아무개 차장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조합원 3명도 회사 간부급인 것으로 보도됐다.

박 위원장은 "삼성에버랜드노조가 설립됐다는 것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것도 언론에만 나온 얘기고 에버랜드안에서는 어떤 공지도 없었다. 단체협약을 했다는 게 확인이 안돼 삼성노조 차원으로 사측에 단체협상을 요구한 상태다. 삼성측에서 어떤 답이 오는지에 따라 이후 법적 대응 등을 준비할 거다"라고 밝혔다.

사측은 또한 징계의 칼도 빼들었다. 조씨의 해고사유는 개인정보와 회사 기밀 유출, 대포차(명의이전이 안된 중고자동차) 운행에 따른 회사 명예실추 등이다. 이에 대해 그는 "회사가 말한 개인정보 유출은 인트라넷에 있는 (조합원 대상인) 사원들의 이름, 연락처 등을 내 개인 메일로 옮겨 둔거다. 또한 회사에서 말한 회사 기밀이라는 것도 접근이 금지된 자료가 아니라 업무 시스템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래내역 등으로 노조설립 후 단체협상 때 필요할 수 있어서 개인 메일에 저장해 둔 것뿐"이라면서 "사측은 포털 서버가 해킹당했으면 어떻게 할 거라며 정보유출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칼을 갖고 있으면 다 살인 의도가 있는 거냐고 되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대포차와 연관 돼 노조에까지 영향을 미친 부분에 대해선 다른 조합원들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그와 함께 징계위에 오른 김씨의 징계사유도 정보유출 등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이들 징계가 노조 설립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삼성노조측은 "김영태 회계감사와 같은 건이 100여건 적발됐다고 하면서도 다른 누가 징계위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하필 노조를 설립한 시점에, 왜 우리만 징계를 받는지 묻고 싶다"고 전했다.

삼성에서 이건희 일가 언급 못하는 불문율도 깰 것

이들과의 인터뷰는 몇 번의 약속 조정 끝에 어렵게 잡혔다. 부산, 거제, 대전 등 전국에 있는 노조에 관심 있는 삼성맨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삼성에버랜드만 해도 놀이동산이 포함된 리조트사업부를 제외하고 유통사업부 등은 사업장이 전국에 포진돼 있다. 게다가 조합원 가입범위를 삼성 전체 계열사와 하청기업의 정규직, 비정규직까지 열어둔 초기업노조이다 보니 이들의 발걸음이 뻗어나가야 할 곳은 무수히 많다. 그런 탓에 해고된 조 부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3개월 육아휴직중이다. 초반에 노조 기틀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장과의 소통은? 아직은 공개할 수는 없는 2선들이 현장소식들을 전해주고 있단다.

지난 한 달 동안 명함과 노조 조끼, 피켓 등을 만들었다. 홈페이지와 첫번째 유인물도 완성단계에 있다.(홈페이지 9월 1일 오픈) 삼성본사에 항의 온 타워크레인 노동자들 집회에서 처음으로 연대사도 해봤다. 하는 것마다 처음이다.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만큼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단다.

이들의 첫 번째 활동 목표는 "삼성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딱딱하고 부정적인 시각을 객관적인 상황에서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매년 '무노조 교육'을 받아온 삼성노동자들이다. 올해도 3월과 6월에 교육이 있었다. 그런 교육마다 대우차나 쌍용차 투쟁 등의 자극적인 동영상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전문가라는 노무사는 나와서 현대, 기아차 등 강성노조들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지난 20년간 몇 조원에 이른다고 강조한다. 인사팀 간부는 미국 디트로이트 산업단지의 자동차노조들이 강성인 것과 미국의 금융사태가 연관이 있는 것마냥 호도하기도 한다. 끝은 언제나 민주노총 등 '외부 불순세력'과 연대한 노동조합은 다 잘리고 다 망한다는 것으로 결론난다. 삼성노조 조합원들이 기억하는 '무노조 교육'의 단면들이다.

이런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아온 삼성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든든한 백'이라기보다는 멀리하고픈 '애물단지'일 수밖에 없다. 이 인식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노조가 생겼다고 20만 삼성노동자들이 갑자기 조합에 가입할 거라는 환상은 안 갖는다고 그들은 말했다.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깨지지 않고 버텨서 노조를 늘려가는 것"이라고 박 위원장은 결연하게 말했다.

삼성노조 관계자는 앞으로 "삼성 안에서 이건희 일가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비판은 불문율처럼 돼 있는 정서도 직접 깨려고 한다"고 밝혔다.
 삼성노조 관계자는 앞으로 "삼성 안에서 이건희 일가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비판은 불문율처럼 돼 있는 정서도 직접 깨려고 한다"고 밝혔다.
ⓒ 노동세상

관련사진보기


버텨낸 이후엔 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단다.

"이건희 회장 비자금 사건 때 에버랜드가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부분이 크다. 이재용한테 편법증여될 때도 배임 등의 손해를 끼쳤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건 굉장히 자존심 상해야 할 문제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재벌2세의 편법증여에 이용된 거 아닌가. 삼성 안에서 이건희 일가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비판은 불문율처럼 돼 있는 정서도 우리가 직접 깨려고 한다. 그건 자신 있다. 자꾸 사례를 만들어서 그게 익숙해지면 되더라. 내가 입사했을 때는 노동조합이라는 말만 해도 인사팀에서 불러 면담을 했다. 근데 그게 계속 되니까 막을 수 없는 게 됐다. 시대의 흐름이 있는 거다."(조장희)

삼성노조 4인의 하루는 새벽 6시 30분부터 시작된다. 매일 함께 1시간 반씩 근처 산을 탄다. 일이 많아져서 체력을 키우는 것도 있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라고. 토요일에 만난 이들은 점심 먹고 집에 가서 애들 보면서 점수 좀 따놓고 나와서 다시 저녁에 만날 거라고 했다. 삼성이란 거대한 조직에 맞서는 이들의 철저함도 만만찮다.

조장희씨는 "공룡과 같은 조직에 맞서 왜 혼자 싸우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삼성은 공룡이 아니다"라고 답한단다.

"공룡 같은 조직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잖은가. 그들도 1대1로 대면할 때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들이고…. 컴컴한 터널을 가는데 앞에서 누군가 오면 그와 내가 느끼는 공포는 똑같을 거다. 회사와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네 명밖에 안 되는 우리를 회사는 우습게 생각하겠지만 한편으론 두려움이 분명히 있을 거다."

그 두려움에 맞서 삼성노조 4인은 정면돌파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삼성노동조합, #박원우, #조장희
댓글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그 속엔 새로운 미래가 담깁니다. 월간 <노동세상>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