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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을 두텁게 깔고 가족, 친지들이 만든 송편을 얹었다.
▲ 송편 만들기 솔잎을 두텁게 깔고 가족, 친지들이 만든 송편을 얹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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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데, 송편을 시장에서 그냥 사면 안 될까?"

추석명절 전날, 철원 큰집에 도착하자마자 송편에 쓸 솔잎을 캐러 가자는 제안에 아들놈이 귀찮다는 듯 대꾸한다.

"송편이란 게 왜 송편인줄 아니?"
"떡 이름이 송편이니까 그렇겠지, 뭔 의미가 있겠어?"
"인터넷에서 찾아봐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우리 고유의 명절인 중추절에 햅쌀을 이용해 떡을 만들고 솔잎을 넣어 쪄서 조상님들께 올 한해의 풍년을 감사드린다는 의미가 있을 거다."

송편 하나에 이웃 간의 정이 있었고, 조상들의 지혜가 있었다

"송편 예쁘게 만들면 예쁜 마누라 얻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라는 내 농담에 집사람은 "자기는 얼마나 잘났다고"라며 대꾸한다.
▲ 내가 만든 송편 "송편 예쁘게 만들면 예쁜 마누라 얻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라는 내 농담에 집사람은 "자기는 얼마나 잘났다고"라며 대꾸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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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은 시장등지에서 송편이란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기계를 이용해 모양만 송편인 떡을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따라서 송편에서 솔향기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며, 요즘 아이들은 송편은 한낱 떡집에서 파는 떡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50대인 사람들이 어렸을 때인 70년대만 하더라도 추석명절 전날 시골 방앗간 앞은 송편 만들 쌀을 빻기 위해 아낙들이 몇 십 미터 줄을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이 흔했다. 가구별로 쌀 한 말은 기본이었고, 좀 산다는 집은 쌀을 한가마니씩 빻아 갔다.

그런 후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솔잎을 따러 나가고 아낙들은 빻아온 쌀가루에 따뜻한 물을 붓고 반죽을 했다. 이렇게 송편을 만들 준비가 끝나면 오랜만에 만난 형제, 친척들이 송편을 빚으며 마을 대소사이야기, 나라걱정 등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번데기 처럼 만들어 놓은 것은 딸 아이의 작품이고, 대체로 예쁜 모양은 조카 녀석이 만든 송편이다. 다 찐후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 각양각색의 송편 번데기 처럼 만들어 놓은 것은 딸 아이의 작품이고, 대체로 예쁜 모양은 조카 녀석이 만든 송편이다. 다 찐후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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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아침, 솔향기 물씬 풍기는 송편과 햇과일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낸 가족들은 송편을 먹기에 앞서 그릇 혹은 바구니에 송편을 담아 이웃들에 나누어 주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사시는 집은 큰 아버지가 가져다 드리고 별로 가깝지 않은 이웃에 떡을 가져다 드리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떡을 받은 집은 몇 시간 뒤에 자신이 받은 만큼의 떡을 되돌려 준다. 송편에 넣는 것이라야 팥, 강낭콩, 밤 정도로 비슷한데 왜 이런 쓸데없는 짓들을 반복하는지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예부터 내려온 우리 고유의 따뜻한 풍습이었고 이웃 간의 정이었다.

이웃에 나누어 주고, 친척들이 돌아갈 때 싸주고, 남는 것은 식구들이 다시 쪄서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오래돼 딱딱해진 송편은 기름에 튀기면 또 다른 별미였다. 그래서 당시엔 추석만 되면 그렇게 많은 송편을 만들었다.

그런데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80년대부터 이 같이 이웃 간에 송편이나 떡을 나누던 현상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이웃 간의 정과 풍습은 사라져 버렸다.

솔잎은 송편을 오랜 시간동안 상하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솔잎채취는 소나무 옆가지 부분에서 뽑아내 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며, 채취를 위해 타인의 산에 출입하는 것은 금물.
 솔잎은 송편을 오랜 시간동안 상하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솔잎채취는 소나무 옆가지 부분에서 뽑아내 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며, 채취를 위해 타인의 산에 출입하는 것은 금물.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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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남은 송편은 소쿠리에 담아 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나무에 올린 송편은 한달이 지나도 상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 팥을 넣은 음식은 이삼일 안에 쉽게 변하는데 송편에 방부제를 넣은 것도 아닌데, 오랜 기간이 지나도 송편이 쉬거나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알고 있었다(솔잎에는 음식의 부패를 막는 성분이 있다).

명절에 대한 무감각은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

참기름을 손에 발라 솔잎을 떼어내면, 솔향기와 어울린 송편의 맛은 추석 고유의 맛이 된다.
▲ 완성된 송편 참기름을 손에 발라 솔잎을 떼어내면, 솔향기와 어울린 송편의 맛은 추석 고유의 맛이 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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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로 지난해까지 시장에서 송편을 사다가 차례를 올렸다. 그래서인지 아들 녀석도 송편에 의미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옛날과 똑같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송편을 가족끼리 만드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따온 솔잎을 깨끗이 씻어 두고, 형님 가족과 우리 식구 8명이 거실 바닥에 앉아 송편을 빚었다.

"다음 화천군수는 누가 나온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김아무개씨와 최아무개씨가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형님이 궁금했던 건 역시 고향마을 정치이야기인 듯 싶다. 나꼼수 이야기, 곽노현 서울시 교육청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어른들의 관심사다. 아이들의 대화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방송인 강호동 사퇴 이야기를 끄집어냈더니, 아이들은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세금 떼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는지' 이건 지금 고3인 딸아이의 의견이고, '이제 그럼 무릎팍 도사는 누가 진행하냐'에 대한 궁금증은 중학교 2학년 조카 녀석의 딱 제 수준에 맞는 질문이다. 두 시간여 동안 결말이 나지 않는(낼 수도 없는) 토론은 계속 이어졌다.

송편에 들어가는 재료는 팥, 강낭콩, 생밤, 들께, 설탕 등 참 다양하다.
 송편에 들어가는 재료는 팥, 강낭콩, 생밤, 들께, 설탕 등 참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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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을 만들며 먹는 간식
▲ 찰옥수수 송편을 만들며 먹는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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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만들기 두어시간이 아마 아이들 나름대로 뜻있는 시간이었던 듯 흡족한 표정들이다. 이런 자리를 일부러 만들지 않았던들 아이들은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각자 방에 들어가 TV를 보거나, 게임기를 가지고 오락을 하거나 낮잠을 자는 등 그런 의미 없는 시간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설날과 추석명절은(명절빔에 대한 설렘과 친지들의 모임을 고대했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한낱 귀찮은 날 정도로 생각 했을지 모를 일이다.

추석명절. 가족, 친지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풍습, 직접 만든 송편을 이웃과 나누는 인정을 되살려 내는 것은 이제 우리 기성세대의 역할은 아닐는지.


태그:#추석,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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