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름다운 위로의 이공간(異空間), 박희정의 세계'.

올해 BICOF '박희정 특별전'이 내건 타이틀이다. 그녀의 손때 묻은 원화들과 명장면들을 돌아보고, 푸르른 수풀 사이에서 '환상 속 연인'과 만나는 곳. 아름다운 추억으로 무장한 그녀의 특별한 초대에 팬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BICOF 대상작인 박희정 작가의 <마틴 앤 존>
 지난해 BICOF 대상작인 박희정 작가의 <마틴 앤 존>
ⓒ 박희정

관련사진보기


BICOF 2010 대상작 <마틴 앤 존>

"워낙 상과는 인연이 없던 터라 처음 소식 듣고 얼떨떨했습니다. 수상하고도 한동안은 얼떨떨했죠. 여기저기 한 턱 내면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실감했어요.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전시를 위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그냥 그림만 보시지 말고 전시회 구성이나 관객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를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저마다 다른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틴'과 '존'. <마틴 앤 존>은 사랑에 빠진 '나'와 '너'의 문제를 박희정 특유의 감수성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동성애 코드에도 무난히 지난해 BICOF 대상 후보에 올랐고, 심사위원은 만장일치로 그 빼어난 작품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올해 특별전을 열게 된 박희정은 소회가 남다르다. 

BICOF 2011 '박희정 특별전' 모습
 BICOF 2011 '박희정 특별전' 모습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련사진보기


"<호텔 아프리카>를 막 끝내놓고 잠시 쉬던 차에 <나인>이 창간을 했어요. 1998년이죠. <호텔 아프리카>를 하면서 많은 분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마음 한 쪽엔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아마추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뭔가 조금 더 간질간질하고 아슬아슬한 이야기요.(웃음) 그래서 시작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잡지가 폐간하면서 연재 역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재를 이어갔고, 드디어 지난해 12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긴 시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녀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작품이었다. 온 마음을 쏟아 작업한 탓에 에피소드가 마무리 될 때마다 몸살이 찾아오곤 했다. 못된 자식놈 같던, 그래서 예쁘고 그래서 미웠고,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시원섭섭해요. 영원히 안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나서 엄청 신기하고 시원해요. 마감에 쫓겨 제대로 풀지 못한 몇몇 에피소드들 때문에 아쉽고요. 사실 담당기자와 전 믿지 않았어요. 정말 12권을 해낼 줄은. 저같이 게으른 작가에겐 기적과도 같은 권수거든요." 

그녀만의 특별한 전시에 관람객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만의 특별한 전시에 관람객들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련사진보기


사랑을 말하는 방법

"사랑은 제 작품의 기적이에요. 전 앞으로도 아주 많은 사랑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떤 식으로 풀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이게 늘 숙제고요."

데뷔 이후로 박희정의 화두는 줄곧 '사랑'이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순정만화들이 쏟아내는 달달한 사랑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그녀의 주파수는 사랑 그 자체보다는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 흐르는 세상의 모든 사랑"에 맞춰져 있다. 유려한 그림체와 정제된 고운 글을 무기로 '존재'와 '관계'의 의미에 대해 물어온다.

흑인과 집시, 게이, 인디언 청년 등 세상에서 소외받고 외면받는 비주류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던 <호텔 아프리카>를 기억하는가? 여기에서도 특유의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은 빛이 났다. 슬프지만 황홀하고, 아프지만 오히려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 사랑에 달뜬 청춘과 외로움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한 평론가의 말처럼 '덮쳐드는 외로움에 대한 아름다운 위로'였다. 

당신들이 있어 행복하다

박희정의 또다른 수작 <호텔 아프리카>
 박희정의 또다른 수작 <호텔 아프리카>
ⓒ 박희정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윙크>에 5부작을 작업중이고, 연말까지 단편집을 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 말이나 내년 초에 새 연재를 시작할 듯해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인데 그릴 것도 엄청 많고 등장인물도 많아 벌써 숨이 턱 막히지만 처음 도전해보는 장르라 신바람 나 있어요. 많이 성원해 주세요."

데뷔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늘 가슴을 짓누르던 의구심에서 놓여나 이제는 만화가가 천직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됐"으니까. 다만 욕심만큼 안 그려질 때는 힘이 든다. 스토리 안 풀릴 때, 마감에 쫓길 때, 그림 마음대로 안 그려질 때처럼 도망가고 싶은 순간은 많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다. 자신의 블로그 '선앤피쉬'에 찾아와 소곤소곤 위로를 건네는 이들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늘 감사합니다. 늘 잊지 않고 찾아와 응원의 메시지를 주시거든요. 블로그에서 제가 투정을 많이 부리는데 그때마다 '힘!'을 외쳐주시죠. 정말 힘이 납니다. 늘 마음을 열고 제 이야기와 감정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그 분들의 행복한 한 때에 제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특별전 기간, 팬에게 사인중인 박희정 작가.
 특별전 기간, 팬에게 사인중인 박희정 작가.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희정, #마틴 앤 존, #호텔 아프리카, #만화규장각,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