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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가 우리들 머릿속 상을 구축한다."
"미디어는 곧 메시지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과 캐나다 출신 언론학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유명한 매스미디어 명제 이론이다. 1920년과 1960년 각기 다른 시기에 던져진 명제들이지만 공통점이 많다. 그건 바로 미디어가 특정한 이슈를 중요한 것으로 강조해 자주 부각시키면 수용자들도 그것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는 강렬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 전설과도 같은 명제는 지금도 학계에서 줄곧 인용되고 회자된다. 현실에선 어떨까.

비슷한 사례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최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고도 수용자들의 머릿속에서 외면당한 인물이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시점을 전후로 열흘 동안 국내 언론이 그를 주목한 뉴스는 무려 2869건. 하루 평균 280건 이상의 기사 세례를 받은 인물이다.

'오세훈' 언론 스포트라이트 집중 불구, 수용자들은 '외면'...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검색 사이트 <카인즈>를 통해 국내 주요 정치인들의 언론사 기사량을 측정, 결과를 표로 만들어 보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검색 사이트 <카인즈>를 통해 국내 주요 정치인들의 언론사 기사량을 측정, 결과를 표로 만들어 보았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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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부터 26일까지 10일 동안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기사통합검색 사이트 <카인즈(KINDS)>에 수록된 기사들 중 제목과 본문에서 '오세훈'이란 입력어로 검색된 기사량이다. <카인즈>엔 10개의 서울지역 종합일간지,  25개의 서울지역 외 종합일간지, 9개의 경제일간신문, 4개의 TV 방송뉴스, 10개의 인터넷신문 외에도 영자신문, 지역주간신문 등이 생산해 낸 기사들이 매일 수록되고 있다.

오 전 서울시장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1954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1055건)가 뒤를 이었다. 이어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저격수'로 부상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853건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757건)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571건) 보다 앞섰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사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지면과 영상을 차지하는 게 상례다. 그런데 오 전 시장이 대통령을 제치고 단연 1위에 올랐다. 뉴스검색 결과를 종합한 <표>에서 보듯이 오 전 시장은 일찌감치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차기 대권후보들과 차기 서울시장후보 등 여야 정치인들까지 모두 제쳤다. 표에서 거론되지 않은 일부 정치인들과는 무려 10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일 정도로 언론은 단연 그를 주목했다.

그런데 투표결과는 그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 유권자의 4분의 3에 가까운 620여만 명이 대거 투표에 불참함으로써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많은 미디어 노출이 수용자 인식변화와 투표결과에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이렇게 많은 양의 기사를 오 전 시장 본인은 물론 참모들도 함께 접하고 모니터링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종 무모한 전략을 밀어 붙인 이유는 뭘까. 자충수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음을 경고한 기사들도 많았다. 시장직을 걸고 억지눈물을 보였을 때, 자라는 어린 아이들의 밥상을 볼모로 벌인 어설픈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도 많은 기사에는 긍정적이기보다 우려와 불안, 걱정이 가득 담긴 부정적 성격이 강하게 묻어났다.

<조중동>사설, 검찰발 '공안몰이 시리즈' 만나 '활기'...오세훈 벌써 잊었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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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수신문들의 과열된 '오세훈 띄우기' 경쟁과 오 전 시장이 눈물을 흘리면서 벌인 막판 '표 구걸 퍼포먼스'는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시민들은 아무리 많은 '오세훈 보도'가 머리를 어지럽혀도 '나쁜 투표'를 냉정히 외면했다. 아이들의 밥상을 볼모로 잡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언론에 많이 비쳤을지라도 수용자들에겐 나쁜 이미지만 계속 반복적으로 심어주었던 것이다.

정당성 없는 투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182억 원이란 막대한 혈세 낭비는 물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부자-가난, 보수-진보, 여-야, 강남-비강남, 상식-비상식 등으로 갈라놓은 결과만 낳고 말았다. 문제를 확대시킨 책임은 일단 오 전 시장에게 있지만, 초기부터 '시장직을 걸고서라도 뜻을 관철시키라'며 충고와 훈수를 반복하며 열심히 그를 띄워온 보수신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언론이 공론장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사의 정치적·이념적 성향에 맞는 논조와 색깔 덧씌우기에 충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오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언 이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하 <조중동>)의 '오세훈 편들기'와 '띄우기'는 점입가경이었다. 그러다 결과가 참패로 막을 내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돌변하는가 하면 '보수 아이콘'의 부활을 기대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넋을 잃은 분위기까지 보여줬다.

그런데 금세 기사회생했다. 검찰발 왕재산 간첩사건, 강정마을 강경대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수사 등이 시리즈로 제공돼 보수신문의 반격이 시작됐다. 때를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이 검찰이 즉각 반전의 기회를 준 것이다. '오세훈 띄우기'가 수포로 돌아가자 한동안 침울하던 <조중동>지면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전쟁을 선포한 '한상대식 공안몰이'가 본격화된 것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은 신났다. 동시에 박수를 치고 나섰다. 특히 올바른 상관조정기능을 수행해야 할 사설에서 거품을 물고 반격에 나섰다. 공안을 부추기느라 다시 바빠졌다. '<조중동>이 곧 메시지?'라는 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여기서 <조중동>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어떤 의제들로 수용자들의 머릿속을 세뇌시키려 했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창피 사례와 반격 시리즈를 차례로 복기해 본다.

[#창피 사례 1] <조선>, "시장직 걸라" vs. "잘된 일 아니다?" 오락가락

<조선일보>의 '오세훈 띄우기'는 유별났다. 초기부터 방점이 다른 신문들과는 달랐다. 아이들의 급식을 볼모로 한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라'고 일찌감치 주문했다. 지난 6월 18일자 사설을 다시 살펴보자. 당시 '오 시장, '부자무상급식' 저지 투표에 시장직 걸라'란 사설 제목은 당사자에게 강한 압박을 가했을 법하다. 

사설은 "오 시장은 정치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면서 "이번 투표 결과에 서울시장직을 포함한 자신의 정치인생 모두를 걸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훈수를 뒀다. 사설은 그런 뒤 "오 시장이 공짜와 무료의 포퓰리즘 탁류에 원칙있는 자세로 맞선다면 당장은 죽더라도 다시 정치적으로 더 크게 부활할 날이 올수도 있다"며 "그런 믿음과 인내심이 없다면 지금 당장 주민투표를 멈추는 게 낫다"고 은근슬쩍 띄워도 본다. 

그러더니 <조선>은 주민투표 이틀 전인 8월 22일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의식했던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무상급식 주민투표 D-2…시장직 건 오세훈 "투표율 3~7%P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뽑았다. 전날 기자회견에 대해 진정성 없는 '정치쇼'라는 따가운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조선>은 그동안 열심히 훈수하고 띄워왔던 공이 아까웠던지 여론조사기관의 자료를 인용한 기사를 내보면서 선정적인 제목도 모자라 오 전 시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마치 후보시절의 홍보물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날 사설은 두 달 전과는 달랐다. '내년 선거 판도까지 좌우할 서울시 주민투표'란 사설은 "주민투표에 걸린 무상급식 범위와 속도라는 정책적 선택이 서울시장이 물러나느냐 마느냐 하는 정치적 문제와 뒤섞이게 된 것이 잘된 일은 아니다"라며 꼬리를 내렸다. "주민투표가 무산됐을 때 오 시장이 더 이상 서울시장 구실을 할 수 없게 되리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정치현실"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투표가 끝나고 <조선>은 '주민투표 이후 복지 포퓰리즘 누가 견제하나'란 25일자 사설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추진해온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됐다"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추임새를 던졌다. 결과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창피 사례 2] <동아>, "보수 아이콘 부활할 수도"...퇴장에도 마취제 '선물'

7월 20일. <동아일보>는 '정치운명 건 오세훈… 시장사퇴 카드 꺼낼까?'란 제목의 기사를 정치면(A10)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오 전 시장을 압박했다. 기사는 "서울시의 단계적 무상급식안이 선택받으면 오 시장은 '야권의 무상시리즈를 막아낸 일등공신'이 되면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만 야당의 '전면적 무상급식안'이 통과되면 시장직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더니 한 달 후인 8월 22일 '오의 도박? 오의 도전?'이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오 시장은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더라도 2017년 대선까지는 총선, 재보선, 입각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면서 "'정치적 도박'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잃을 게 많지 않은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막판까지 부추겼다.

이날 <동아>는 '급식투표 D-2, 정치생명 건 오세훈 시장'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사설은 "주민투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좌파 야권과 운동권은 시장직 사퇴를 거세게 요구할 것이 뻔하다"며 "이럴 바에야 차라리 시장직을 걸고 서울시민의 뜻에 따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오 전 시장의 전날 기자회견장 언행을 감쌌다.

사설은 또 "설사 주민투표에서 져서 시장직을 그만둔다 해도 그가 잘못된 포퓰리즘 극복을 위해 서울시장직을 던진 용기가 평가받을 날이 올 수도 있다"며 오 시장의 행동을 '용기'라고 띄웠다. 서울시장직을 버리더라도 차기 대선 주자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장기포석쯤으로 해석했다. 오 시장 퇴임 후에도 <동아>는 그의 부활을  노래할 정도다.

27일 '오세훈 물러났지만…'이란 제목의 사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사설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관한 서울시민의 선택을 물었던 주민투표에서 패했지만 복지포퓰리즘 정치와 벌인 싸움이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정치인 오세훈'이 반 포퓰리즘의 아이콘으로 부활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마지막까지 추켜세웠다. 퇴장하는 순간까지 그에게 마취제를 안겨준 것으로 손색이 없다. 

[#창피 사례 3] <중앙>, 오세훈 띄울 땐 언제고 "전면적 무상급식 만전?"

<중앙일보>도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열심히 부추겼다. 8월 13일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책 선택 문제다'란 사설에선 "관리비용 182억원의 낭비만 문제가 아니다"며 "주민투표에서 확실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8월 17일 ''무상급식 투표 해보라'는 법원 결정'에 이어 20일 '나쁜 투표는 없다'란 사설에서도 '오세훈 띄우기'에 적극 동참했다.

사설은 "투표를 홍보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피케팅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며 "오 시장이 들고 다닌 피켓엔 '8월 24일은 주민투표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투표일을 알리는 단순한 홍보행위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대변했다.

사설은 또 선관위를 나무라는 척하더니 본색을 드러낸다. "이번 투표는 무상복지 논란의 가닥을 잡는 중요한 기회다. 유권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행위는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니다. 투표는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며 투표참여를 종용했다. 그러더니 투표가 무산된 다음날엔 '무산된 주민투표도 민심이다'란 낯 뜨거운 사설을 내놓았다. 앞에서 용감하게 주장했던 내용들이 다소 걸렸던 모양이다.

사설은 "새 시장은 시의회와 함께 전면적인 무상급식 실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무상급식 확대에 따른 식재료의 부실화나 다른 교육 관련 예산의 삭감 등과 같은 문제가 없도록 후속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며 슬쩍 꼬리를 내린다.

사설은 말미에서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에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며 "한나라당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시정을 표류시킨 결과 불가피하게 택한 최후의 대안이 주민투표였다"고 어정쩡한 종지부를 찍었다.

[#반격 시리즈 1] "왕재산은 빙산의 일각...간첩 더 찾아내라", 사설 '거품'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8월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8월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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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투표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의 공안몰이가 시작됐다. 반격이 매섭다. <조중동>은 반전의 기회라도 잡은 듯 사설에서 무상급식 당위론과 '오세훈 띄우기'를 중단하고 검찰발 공안몰이 시리즈에 거품을 물고 가세했다. 이들 신문은 사설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제목과 논조를 보였다. 오세훈 사퇴와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발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은 온데간데없다. 검찰의 간첩수사에 온갖 해석과 잣대를 들이댄다. 

'북 훈장 받고 남에선 민주화 운동가 행세한 간첩들' -<조선> 8월 27일 사설
'북한 훈장 받은 간첩이 민주화운동가라니 …' -<중앙> 8월 26일 사설
''간첩사건 잇따라 연루' 민노당 민노총 실체 뭔가' -<동아> 8월 26일 사설

<조선>은 27일 사설에서 "민노당과 일부 단체들은 '공안 탄압'이라거나 '정치적 기획 수사'라며 그들의 간첩행위를 감싸주고, 수사가 자기들에게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며 공안수사 불씨를 키울 것을 주문한다. 이어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2000년 출범한 이후 2009년까지 733명에게 385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며 "이들 중에는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했거나 간첩 활동을 한 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운을 떼더니 "당국은 이런 허울 좋은 탈을 쓴 간첩을 더 찾아내야 한다"고 부추겼다.

<중앙>은 26일 사설에서 "왕재산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며 "요즘은 진보·친북·종북 세력이 마구 뒤섞여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분칠한 종북세력들이 사회 가치관과 질서를 뒤흔드는 세상"이라고 수사를 부추겼다. "낡은 레코드판 튼다며 매도하는 그릇된 사회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사설 말미의 주장에선 향후 예고될 공안정국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까지 엿보였다.

이날 <동아>도 사설에서 "남한 내 종북세력들은 간첩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안탄압' '인권침해' 등의 상투적인 주장을 내세우며 여론을 왜곡하고 수사를 방해한다"며 "이러한 행태는 당장의 불리한 국면을 벗어나 활동기반을 마련하고 훗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의도라는 게 공안당국의 분석"이라고 공안당국 편을 들었다. 적반하장이라고 했던가. 당장 불리한 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의제초점의 전환을 누가 획책하고 있는지 과연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반격 시리즈 2] "제주 강정마을 공권력 투입 더, 더, 더..." 어느 나라 신문?

8월 9일 정오 무렵. 경찰이 강정마을 중덕해안으로 들어가는 차양막 등을 불법설치물이라며 반입을 통제하면서 주민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활동가 한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여성 평화운동가 한 명은 경찰 방패에 눌려 실신했다.
 8월 9일 정오 무렵. 경찰이 강정마을 중덕해안으로 들어가는 차양막 등을 불법설치물이라며 반입을 통제하면서 주민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활동가 한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여성 평화운동가 한 명은 경찰 방패에 눌려 실신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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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도의 강정마을에선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다. 특히 대검찰청은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처음으로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어 해군기지 건설공사 방해 등에 대한 엄정한 대응 방침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4·3 사태 이후 63년 만에 육지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설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섬 전체를 억누르고 있다. 그런데 보수신문들은 더욱 강한 공권력을 부추기고 있다.  27일자 <조중동> 사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강정 해군기지에서 본 비굴한 공권력' -<조선> 27일 사설
'김밥 맞고 쫓겨간 초라한 공권력' -<중앙> 27일 사설
'제주 강정마을 '해방구'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동아> 27일 사설

<조선>은 이날 사설에서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경찰관 350명이 출동했지만 시위대 100명을 제어하지 못했다"며 "경찰서장은 이 과정에서 시위대가 던진 김밥에 머리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공권력을 강화할 것을 은근히 주문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사설은 "이 사업이 종북 외부세력들의 불법적 시위로 공정률 14%에서 멈춰선 후 매달 손실만 59억원에 달한다"며 "정부와 경찰은 법치를 세운다는 책임 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이날 <중앙>은 '김밥 맞고 쫓겨간 초라한 공권력'이란 우스운 사설제목을 뽑았다. 사설은 "시위대가 던진 김밥 밥알들이 덕지덕지 붙은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의 뒤통수 사진은 참담할 지경"이라며 "한편의 슬픈 희극"에 비유했다. 또 "현장은 난장판이요 무법천지...말 그대로 '평화의 섬' 제주를 일부 이념집단의 놀이터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표현에선 검찰총장의 섬뜩한 '공포 취임사'를 떠오르게 했다.

<동아>도 이날 사설에서 "미국에서는 집회 현장에서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면 현역 의원도 경찰이 수갑을 채워 연행한다"며 미국사례를 끄집어 든다. 그러더니 "우리 경찰은 공무집행 방해 현장에 400여 명이 출동하고도 주민들에게 포위돼 법 집행을 포기하고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주기에 바빴다"고 경찰을 나무랐다. 이도 모자라 "검경은 4개월이 넘도록 불법이 난무하는 해방구 같은 현장을 엄정하게 법으로 다스려 공권력을 바로 세우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반격 시리즈3] 무상급식 주민투표 끝나자마자 곽노현 수사?...물 만난 <조중동>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일인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일인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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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 이임식이 있던 날 <조중동>은 아주 큰 반격거리를 만났다.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곽노현 교육감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대가로 거액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를 검찰이 전격 체포하면서부터다. 오비이락 격이 이보다 절묘할 순 없다. 곽 교육감측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집권세력의 패배로 끝나자마자 당국이 공안검찰을 동원해 진보교육감을 상처 내려한다"며 반발했지만 검찰의 칼끝은 이미 정조준 된 상태다. <조중동>은 물 만난 듯 신났다. 일제히 1면에 띄웠다.

'검찰, 곽노현(서울교육감) 수사'  <조선> -27일 1면
'곽노현 측, 사퇴 후보에게 1억3000만원 건네'  -<중앙> 27일 1면
''교육감 단일화' 금품거래 조사' -<동아> 27일 1면

<조선>은 이날 '검찰, 곽노현(서울교육감) 수사'를 1면 사이드 톱으로 올렸다. 기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진한)는 지방선거 10여일 전인 작년 5월 19일 사퇴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와 친동생이 지방선거 후보 사퇴와 관련해 곽 교육감 측으로부터 1억원 이상을 받은 혐의를 잡고 이들을 전격적으로 체포했다"고 전했다. <조선>은 이날 인터넷판에서 검찰발 속보를 계속 내보내며 "지난해 진보진영 교육감 선거 후보 단일화 과정의 돈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의 칼끝을 애타게 주목했다.

<중앙>도 이날 '곽노현 측, 사퇴 후보에게 1억3000만원 건네'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다뤘다. 기사는 "지난해 6·2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진보 진영 측이 후보 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 곽노현(57) 서울시교육감의 측근 인사가 상대 후보 측에 금품을 전달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며 "곽 교육감이 금품 전달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질 경우 교육감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동아>도 약속이나 한 듯 검찰발 기사를 1면 사이드 톱기사로 다뤘다. [단독]이라고 표기한 ''교육감 단일화' 금품거래 조사'란 제목의 기사는 "이번 체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달 초 수사를 의뢰한 데 따른 것"이라며 "검찰은 또 박 교수가 동생을 거쳐 받은 돈이 선거 비용 보전 명목인지를 따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검찰 수사의 방향이 곽 교육감을 향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공안몰이에 나선 검찰과 <조중동>은 결국 한통속으로 가기로 약속한 듯하다.

그러나 언론이 제대로 된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몰상식'이 넘쳐흐른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전국언론노조가 언론공공성 복원과 <조중동>방송 광고 직접영업 저지를 위한 총파업에 들어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립무원을 스스로 자초한 <조중동>과 뜬금없는 전쟁을 선포한 검찰이 어떤 흉기를 감추고 국민을 겁박할지 소름이 돋는다. 남은 MB정권이 지나온 시간보다 더욱 길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태그:#오세훈, #조중동, #공안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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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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