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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곳에 앉아 있는데, 웬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서 한다는 말이 '용대?'라고 물어보는 거야. 핀란드에 사는 여성인데, 직업이 변호사라더라구. 핀란드에서 사우나를 하면서 앉아있는데, 트위터에서 김진숙 얘기를 봤다는거야. 그러고 나서는 도저히 사우나하고 앉아 있을 수 없어, 곧장 한국으로 날라 왔다는 거야."

 

15일 밤 서대문 앞 거리를 지나는데 갑자기 나타난 후배가 나를 보고 어디론가 끌고간다. 이용대 아저씨가 술 한잔 사준다는 거다. 그와 우리는 이번 여름 여행을 통해서 친해진 사이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3명의 동료를 떠나보내고 김진숙을 크레인 위로 떠나보낸 것으로 널리 알려진 한진중공업 조합원 이용대 아저씨. 우연히 가진 그 술자리에서 우리는 핀란드에서 날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약 반년간의 긴 휴가를 위해 반년을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이 여성은 휴가기간에 김진숙 이야기를 듣고 나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15시간 정도가 걸리는 한국 땅으로 왔고 이용대 아저씨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85호 크레인 앞 담장을 10일 동안 왔다 갔다 했다는 거다. 그리고 공항을 떠나면서 '내 생애 가장 보람찬 휴가'였다고 이야기하면서 공항에서 엄청난 눈물을 쏟아냈단다.

 

'보람찬 휴가'라···. 생각해보면 이번 여름방학만큼 화려한 휴가를 보낸 적도 없을 것이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6~8월 동안 부산을 네 번이나 찾았다. 물론 피서객보다도 경찰을 더 많이 만난 여행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8월 바로 '보람찬 휴가'를 떠나기 위해 마음맞는 학생30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이름하여 생명평화의 '바람'. 마리-재능-현대자동차 성희롱 피해노동자-제주도 강정마을-유성-부산-경주를 돌면서 생명과 평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자는 것이었지만, 이 여행의 의미는 우리가 여행에서 만났던 이들이 더 잘 풀어주었다. 9박 10일의 여정이니 준비물도 만만치 않다. 언제 어디서든 잠을 잘 수 있도록 일명 돌돌이(혹자는 깔깔이)를 들고, 무거운 배낭과 우비를 챙겨서 채비를 갖추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게 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제주도 강정마을이었다. 

 

'너희가 농민의 마음을 알어?' 평화의 섬 제주도 강정마을

 

 

지난 6일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기다린 것은 강한 태풍이었다. 오후 5시에 있었던 제2차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촉구 제주강정 평화대회를 마치고 구럼비 바위 위에 만들어 놓은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칠흑같은 어둠에서도 거친 파도의 하얀 거품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살다 살다 그런 파도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엄청난 바람에 비닐하우스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난 우리들은 모두 비닐하우스 철근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곧 대피명령이 떨어져 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태풍이 잠잠해진 이틀 후에 가보니 비닐하우스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그대로 있었다간 큰일 날 뻔했다. 그러나 날아간 비닐하우스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구럼비 바위 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김제동씨가 예전에 트위터에 왜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 되는지 '와보면 안다'라고 적지 않았던가. 이 곳 위에 시멘트가 발라진다니 끔찍한 일이다.

 

우리들은 주민들과 현장에 있던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수재복구를 하기 시작했다. 젖은 책을 닦고, 집기들을 들어내서 햇빛에 말렸다.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붉은발 말똥게도 모습을 드러냈다. 옆으로 걸어 다니는 것이 귀여웠다. 천연기념물을 그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다.  피해가 심각했지만 절망하지 않고 평화롭게 수재복구를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마을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해군과 경찰들이 왔다는 거다. 모든 사람들이 제주해군기지 건설부지 언덕으로 달려갔다. 주민들은 오열했다.

 

"너희가 농민의 마음을 알어! 하필 오늘 오냐."

 

태풍 때문에 강정마을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피해복구를 하고 있던 와중에 일손을 놓고 뛰어 오신 거다. 불난 집에 부채질이 딱 이런 꼴이다. 수해복구를 도와줘도 못할 만정…. 경찰과 해군은 물러갔지만 주민들의 마음에는 태풍보다 큰 상처를 남겼다. 구럼비 바위의 아름다운 정경과는 달리 마을은 크고 작은 공권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 촛불문화제에서 힘내시라고 신나는 율동과 노래공연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예쁜 촛불을 들고 풀벌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 촛불시민이라면 강정마을로 가서 촛불을 들기를 추천한다. 지금까지 본 촛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제주도에서 4일을 지낸 후 우리는 유성기업 앞 굴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셨던 유성노동자들을 만나러 떠났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다녀오겠습니다'라는 꼭 지켰으면 좋을 인사를 나누고 육지로 가는 배를 탔다.

 

제주도에서 아산까지는 정말로 멀었다. 9일 아침 9시배를 타고 제주도를 떠나, 오후 6시에나 도착했다. 역시 힘을 드리는 공연과 발언 뒤에 유성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유성기업공장 앞으로 갔다. 공장은 보고가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도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정문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한 것은 문을 통과해 회사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지게차는 정문을 막고 있던 컨테이너 박스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어간다. 그 앞에는 용역들이 서 있었다(16일 현재 유성기업 노사는 법원 중재안을 받아들이고 현장에 복귀했다).

 

우리가 휴가기간에 돌아봐야 할 곳은 참 많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그 식상한 말이 계속 떠오른다. 역시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농성장 청소를 한 후 부산행 버스를 탔다.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서.

 

밀면 골든벨 사건, "연락주십시오" 

 

10일, 부산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트위터로 조남호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참 스마트한 시대다. 조남호씨도 긴 유럽휴가를 마치고 헬리콥터를 타고 시청으로 내려왔나 보다. 버스는 들썩였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85호 크레인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1차를 제외하고 2~3차 희망버스를 통해서도 보지 못했던 김진숙씨를 멀리서나마 만나자 우리들은 감격했다. 이산가족도 아니고 38선보다 높은 담벼락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지하철을 탔다. 부산시민들이 희망버스나 정리해고 투쟁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부산시민 대부분은 '조남호씨 말을 믿으십니까'라는 내용의 자체적으로 만든 유인물을 달라고 난리였고, 일단 드리면 우리가 다음 칸을 지날 때까지 유심히 읽어보셨다.

 

어버이연합 회원님들을 만날까 잔뜩 긴장했었는데,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더욱 열심히 유인물을 돌렸다. 아주 가끔씩, 욕을 하는 어르신도 있었는데 '종북빨갱이'라는 욕이라 다행이었다. 이미 익숙하고 많이 들어본 거였다.

 

광안리에서 해변퍼포먼스를 하기 전에 부산에 왔으니 역시 밀면을 맛보기로 했다. 3500원의 저렴한 가격과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는 광안리 맛집을 찾았다. 정신없이 밀면을 먹고 나와 계산을 하려고 했다.

 

"얼마예요?"

"18번 테이블 손님이 계산하셨는데요."

"......"

 

우리 모두는 감격에 젖었다. 3500원짜리 밀면 한 그릇이 이렇게 큰 감동을 줄지 누가 알았으랴? 그 뒤에는 사기 충전되어 거침없이 부산시민에게 정리해고 이야기를 알리고 다녔다. 곧바로 광안리해수욕장으로 가서 모래찜질과 바닷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혹시 이 기사를 읽고 계실 18번 테이블 손님이 있다면 꼭 연락을 부탁드린다.

 

12일 낮과 밤 85호 크레인 앞에 섰다. 낮에는 담장 밖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간담회를 진행했고, 밤에는 김진숙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크레인 위에서 운동을 하기 위에 오고가는 김진숙을 보며, 우리에게 불빛과 하트를 날려주는 김진숙을 생각해보면 이용대 아저씨가 이야기 한 핀란드 여성이 떠오른다. 그녀는 우리와 같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여행을 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올랐고, 또 오를 것이다.

 

농성장이 침탈당한 재능농성장, 여성가족부 앞에서 천막을 지키는 현대자동차 성희롱 피해노동자, 용역깡패의 폭력에 유린당한 마리와 포이동, 물이 새는 동굴에 핵 폐기장을 지으려는 경주까지, 우리는 어쩌면 시대를 여행했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곳을 떠나면서 그 사람들에게 했던 말.

 

"다녀오겠습니다."

 

8월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말을 지키기 위해 내일 또 여행을 떠난다. 


태그:#한진중공업,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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