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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 폰을 받지 않는다. 오랜 만에 녀석의 얼굴이 보고 싶어 모바일 폰을 걸었다. 그런데 받지 않는다. 두 가지 생각이 겹친다. 하나는 녀석이 찾아오는 것조차 귀찮아서 받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걱정이었다. 만약에 첫 번째 생각이 맞는다면 방문하는 것은 실례가 분명하다. 그러나 만에 하나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녀석과 나는 40년 지기다.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우정을 나누어 온 사이다. 그러니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살아가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짐작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 년에 많이 만나야 서너 번이니 생각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녀석에게 변고가 있었던 것은 작년이었다.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서 수술을 한 것이다. 그 뒤로 녀석의 걱정이 커졌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지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걱정이 앞서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의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였다. 다행이 벨이 얼마 울리지 않아서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녀석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 보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 얼굴이라도 보아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출발하였다. 자동차로 1시간 이상을 달려야 녀석이 사는 것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여 녀석을 불렀다. 그랬더니 녀석의 사위며 손자 그리고 딸까지 줄줄이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녀석이 모바일 폰을 받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함께 어은동으로 향하였다. 녀석의 얼굴은 야위어 있었다. 주름살이 확연하게 늘어나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나 또한 병으로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어서 녀석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녀석은 그런 내색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 역시 녀석 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고마웠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하여도 녀석의 모습은 변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믿음직스러웠다.

 

  우정의 향기. 녀석의 아호는 석암이다. 돌부처처럼 변함이 없는 녀석이다. 장어 요리를 앞에 두고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얼굴에 주름은 늘어났지만 녀석에게서는 향이 배어나고 있었다. 장어 요리 못지않은 진한 우정의 향이었다. 경륜과 식견에서 샘솟는 녀석의 향에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장어 요리의 맛보다는 녀석의 향에 취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녀석이 건강을 잘 보전하였으면 정말 좋겠다


태그:#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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