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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경기감영도병에 나타난 돈의문 주변
▲ 돈의문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경기감영도병에 나타난 돈의문 주변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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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보다 먼저 김종서의 집을 빠져나온 권람이 말고삐를 당겼다. 순청에 도착한 권람이 기다리던 홍달손에게 속삭였다.

"김종서와 김승규는 죽었다."
"정말?"

홍달손이 화들짝 놀랐다.

"어디에서 어떠한 명이 떨어져도 순졸(巡卒)을 발하지 말라.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또한, 사람을 보내 숭례문과 서소문을 굳게 닫도록 하라.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특명이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목을 걸라는 것이다.

"나는 돈의문에 나가 대군을 맞이할 것이다. 여긴 자네 책임이다."

순청을 나온 권람이 갑사 두 사람과 총통위 열 사람을 거느리고 돈의문에 도착했다.

"수양대군께서 중대한 일로 문 밖에 나가셨으니 종소리가 다하더라도 문을 닫지 말고 기다려라."

한양성곽의 성문과 대궐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던 종루.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교의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따라 서대문을 돈의문, 종루를 보신각이라 명명했다 .
▲ 보신각 한양성곽의 성문과 대궐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던 종루.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교의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따라 서대문을 돈의문, 종루를 보신각이라 명명했다 .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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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소리에 개의치 말라는 주문이다. 도성은 야간 통행금지가 엄격했다. 저녁 2경(二更-21시)에 종각의 종이 28번 울리면 한양 성곽 4대문과 4소문이 닫혔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파루는 새벽 5경(五更-4시)에 33번 종을 치는 것으로 알렸다. 공물이나 세곡을 실은 수레와 임금이 국가의 위난 시에 대신을 긴급히 호출하는 신표(信標)를 소지한 자 이외에는 어떠한 자도 통행이 금지되었다. 이를 담당하는 관아가 순청(巡廳)이다.

돈의문 주위가 적막에 쌓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문이다. 한양을 에워싼 성곽과 함께 등장한 돈의문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좌에 오른 이방원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던 이숙번에 의해 수난을 겪었다. 자신의 집근처에 수레와 통행인이 많아 시끄럽다며 옮겨가라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돈의문, 그 문밖에 김종서가 살고 있었다

도리 없이 새문을 짓고 이사했다. 문패도 서전문으로 갈아달았다. 이숙번이 몰락하자 세종은 새문을 헐고 원래 위치에 다시 지어 돈의문으로 환원하라 명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돈의문에서 황토현에 이르는 길을 새문안길이라 불렀다.

말썽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세종의 장인 심온은 중국 사신길에 돈의문에서 권력을 쫓는 문무 실력자들의 대대적인 환송을 받아 이방원의 노여움을 샀다. 귀국 길 압록강에서 붙잡혀와 사약을 받게 된 이유다.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은 돈의문이지만 중국으로 통하는 요충이기에 도성의 서대문으로서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전차가 다니던 일제 초까지 존재했던 돈의문. 조선총독부는 도시계획이라는 미명아래 1915년 돈의문을 경매에 부쳐 250원에 낙찰처리하고 헐어버렸다
▲ 돈의문 전차가 다니던 일제 초까지 존재했던 돈의문. 조선총독부는 도시계획이라는 미명아래 1915년 돈의문을 경매에 부쳐 250원에 낙찰처리하고 헐어버렸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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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었다. 문루에서 고마청쪽을 주시하던 권람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수양이 돈의문에 나타나자 군졸들이 함성을 지르며 두 손을 치켜들었다.

"조용, 조용! 조용들 하라. 간당을 하나 베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양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양이 돈의문을 통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육중한 문이 닫혔다.

"아직도 여러 무사가 나으리의 저사에 있으니 수종하게 할까요?"

한명회가 두 손을 모았다.

"그리 하도록 하라."

따라 나서지 않는 자들을 괘씸죄로 다스리고 싶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아쉽다. 권람을 앞세운 수양 일행이 순청에 도착했다. 홍달손이 뛰어나와 맞이했다.

"여기는 어떤가?"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수고했다. 여긴 자네 수하에게 맡기고 나를 따르게."

순청을 장악한 것을 확인한 수양이 홍달손으로 하여금 순졸을 거느리고 뒤를 따르게 했다. 수양 일행이 궁궐 가까이 다달을 무렵 한명회가 이끄는 무사들이 합류했다. 드디어 시좌소에 도착했다. 궁인들이 시어소라 부르는 시좌소(時坐所)는 임금이 출궁하여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태그:#수양대군, #한명회, #계유정란, #돈의문,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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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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