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집 근처에 있는 망원시장의 풍경. 오랜만에 돼지고기 사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 망원시장과 금겹살 집 근처에 있는 망원시장의 풍경. 오랜만에 돼지고기 사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 김정현

관련사진보기


'어이쿠나!'

지난달 초, 함께 자취를 하는 두 형과 장을 보러 갔다. 주중엔 저마다 밖으로 나다니느라, 아니면 먹고 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얼굴 보기 힘든데 오랜만에 주말이라 집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고 나간 참이었다.

한 근에 만 육칠 천원 씩 하는 '금겹살' 가격에 놀란 나는 그냥 있는 반찬에 밥이나 차려 먹을 것을 괜스레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기왕 나왔는데 그냥 들어갈 수는 없어서 삼겹살하고 그것보다 조금 싼 앞다릿살을 섞어서 2만 원어치 정도 샀다.

거기에 쌈채 몇 가지 하고 국 끓일 때 쓸 감자며 양파, 버섯 따위를 사니 벌써 삼사만 원이나 깨졌다. 오랜만에 푸지게 먹으려고 하니, 남자 셋이 집에서 한끼 차려 먹을 식사값이 외식비 못지 않다.

며칠 전에는 학교 근처 마트에 동아리방에서 쓸 물품들을 사러 나갔다가, 설핏 둘러본 과일 가격에 쇼크를 먹었다. 얇은 비닐로 싸놓은 주먹만한 참외 네 개가 만 원, 복숭아도 다섯 개 들이 종이상자 하나가 만 오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수박이나 한 통 사다놓고 며칠 동안 잘라 먹는 정도로만 지내느라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과일 껍질에 무슨 금이라도 발라 놓은 건가 싶었다.

그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달포 가량의 장마와 폭우로 인한 과수 농가의 피해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특히 낙동강 중류에 있는 성주에서는 4대강 공사로 쌓아놓은 모래가 인근 하천의 물길을 막아서, 배수로를 따라 빠져나가지 못한 흙탕물이 비닐하우스에 고인 채로 참외며 수박, 방울토마토까지 모두 썩어버렸다며 망연자실해하던 농민들의 모습도 기억났다.

주변 자취생들에게 물어보니...

나도 자취를 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밖으로 싸다니느라 집에서 해먹는 밥이라고는 근처에 살고 계시는 이모로부터, 아니면 집에서 보내주는 반찬을 가지고 아침이나 차려먹는 정도다. 자연히 직접 장을 보는 일이 많지는 않아서, 물가 같은 것에 예민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둔감한 편이다.

구제역이며 호우 피해로 육류와 과채류 값이 오르고, 국제적으로 기름값도 치솟아서 외국서 들여오는 식료품이나 공산품 물가도 만만찮다는 이야길 듣기는 했다. 하지만 교통비나 학생식당 밥값처럼 고정적인 지출을 빼면, 학비는 물론 대부분의 생활비를 부모님의 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는 처지라 생활 물가엔 사실 숙맥이나 다름 없다.

지난 2008년 3월 하나로마트 를 방문해 진열대를 둘러보는 이명박 대통령
 지난 2008년 3월 하나로마트 를 방문해 진열대를 둘러보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학교 밖에서 밥 한 끼 먹으려고 하면, 기본이 육칠천 원이야. 자장면도 어떤 데는 한 그릇에 오천 원씩 하더라니까."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의 말이었다. 실제로 자취를 하지만 집에서 밥을 차려 먹기가 번거로운 대부분 학생들의 경우 학생 식당이 아닌 곳에서 밥을 먹기에 밥값이 매우 부담스럽다. 집세 얘기도 있었다.

"얼만지 얘기는 못하겠는데, 집값도 비싸. 계약 할 때마다 오르더라구."

졸업 후 학교 근처에서 살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의 얘기다. 한번에 십 만 원씩 오르는 월세가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비슷한 가격대의 집을 찾아 점점 더 구석으로 들어가고 만다.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에 아르바이트비를 합쳐서 집세며 생활비를 감당해나가는 빠듯한 경우에는 수도요금이나 전기요금 같은 공과금과 교통비마저 적지 않은 부담이다. 뉴스를 보니 이달부터 전기요금은 평균 4.9% 올랐고, 정유사에서 시행해왔던 기름값 인하조치도 지난달로 끝나면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도 오를 것이라고 하니 일 이만 원이 아쉬운 자취생들로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 공모전"? 반값등록금부터!

"용돈 필요하면 얘기하고."

어제도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언제나 "그럴게요" 하고 대답하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나는 아직 학생이니까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없는 용돈에 보태쓰는 것 이상으로 벌기 어려운 처지인 건 당연한 거고, 공무원으로 계신 부모님 덕택에 그래도 다른 친구들보다는 걱정 않고 지낸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아들 둘 서울에서 지내는 집세, 생활비하고 학비까지 하면 적잖은 돈이다. 학과 사무실에서 가끔 학부생들한테 시키는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거나 어쭙잖은 글이라도 고맙게 실어주는 데가 있으면 기고를 해서 원고료를 받아 2~3주는 더 버틸 수 있다. 이렇게라도 해서 효도는 못 해도 불효는 안 하려고 한다.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는 물건들은 물론이고, 공과금에 교통비, 통신비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휴학해가며 학비마련 해야 하는 고학생들에게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물가가 얼마나 버거울지 내 처지에선 감히 말할 엄두가 안 난다.

정부는 무얼 하고 있을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8월 5일자로 "물가안정 아이디어 공모전"(www.착한물가.com)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돼지고기 값이 치솟았을 때에는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수입산 돼지고기 운송료 지원과 무관세 혜택을 주어 국내 축산 농가를 위협하더니, 이제는 국가기관과 정책입안자들이 해야 할 일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언제부터 물가 안정이 국민들의 몫이었던가?
▲ 물가안정 아이디어 공모전 온라인 홍보 포스터 언제부터 물가 안정이 국민들의 몫이었던가?
ⓒ 기획재정부

관련사진보기


정부가 나서서 물가를 잡기 위해 허둥대자,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수 언론들은 말한다. 경제에 문외한인 일개 자취생 입장에서는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다만 그 말이 일단 옳다고 치자. 식재료비, 교통비, 공과금은 어차피 개인의 힘으로는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문제 아니었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있다. 바로 대학 등록금을 잡는 것이다.

한 학기에 오백만 원, 육백만 원 씩하는 등록금만 잡아도 물가로 인해 휘청거리는 자취생들과 학부모들의 허리를 조금은 바로 세워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교육은 시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시장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90% 가까운 대학진학률을 보이는 상황에서 고등교육은 이미 공공재이자 미래를 위한 국가적인 투자다.

 26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정부·여당의 '소득구간별 차등 지원' 등록금 대책 협의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최헌국 등록금넷 학부모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6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정부·여당의 '소득구간별 차등 지원' 등록금 대책 협의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최헌국 등록금넷 학부모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김민석

관련사진보기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반값등록금 공약만 지켜진다면 물가가 이렇게 올라도 자취생들이 지금처럼 허덕거리진 않아도 될 거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부모님께 덜 미안해하면서 조금 더 공부에 집중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이고, 학비 대느라 휴학해야 하는 고학생들도 지금처럼 고생하지는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이달엔 부모님께 더 자주 전화드려야겠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릴 수는 없어도 가끔은 내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전해 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김정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물가, #자취생, #이명박, #기획재정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