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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 기획 기사를 내보냅니다. [편집자말]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과 소수민족 박물관에서 일정이 늦어져 쿤밍(곤명)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따리(대리)로 향했다. 윈난(운남)은 우리나라보다 2.5배 넓다. 땅이 넓다 보니 이동하는 시간도 길다. 쿤밍에서 따리까지는 대략 5시간.

중국에서의 첫날밤, 호텔 옆에서 밤새 벌어진 공사 소음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라 따리로 가는 길에 좀 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으로 스치는 이국 풍경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일행 중 몇 사람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깊이 잠든 것을 보면서도.

윈난을 여행하며 많이 본 것 중 하나는 엄청 큰 글씨들이다. 벽에 페인트로 바탕을 칠한 후 쓴 큰 글씨들. 언뜻 사람 열 명은 나란히 서야 글자 하나 가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글씨들이. 어떤 사람이 글씨 앞을 지나는 것이 보였는데, 그가 세 걸음 정도를 걷자 부수 뚫을곤(丨)이나 갈고리 궐(亅)자 하나 겨우 가릴 정도로 글씨들이 컸다.

'석유가 원료인 페인트를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 아냐?'

눈에 보이지 않지만 페인트 폐해에 신음하고 있을 중국의 자연을 안타까워하며, '페인트 성분 일부는 우리가 수입하는 농산물에 축적되겠지'와 같은 생각도 하면서 '아마도 우리 현수막 성분과 비슷하지 않을까?'추측만 했다.

그러고 보니 중국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 거리에서 쉽고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현수막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변방에 해당하는 윈난은 그렇다 치고 베이징에서조차 전혀. 우리의 현수막과 중국의 페인트칠 글씨 중 어떤 것이 여러모로 더 나쁜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도로가이든 건물이든 엄청나던 큰 글씨들은 기억에서 쉬 사라지지 못할 것 같다.

대리 (따리) 고성 성문 '대리'란 현판 글씨는 중국 작가 궈모루의 친필이다-2011.7.17일 밤에
 대리 (따리) 고성 성문 '대리'란 현판 글씨는 중국 작가 궈모루의 친필이다-2011.7.17일 밤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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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따리) 고성 오하루에서 본 대리 고성의 밤-2011.7.17 대리(따리) 고성
 대리(따리) 고성 오하루에서 본 대리 고성의 밤-2011.7.17 대리(따리) 고성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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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직전 대리 고성 부근 백족이 운영하는 객잔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객잔 주인의 가족들이 나와 반갑게 맞는다. 그들을 처음 봤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의 반김이, 그들이 참 반가웠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따리 고성의 밤풍경을 만나러 객잔을 나섰다. 꼬치를 굽는 연기 자욱한 도로와 과일을 파는 사람들을 지나.

오늘날 윈난성의 성도는 쿤밍이지만 예전에는 따리가 윈난성의 성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단다. 서기 938년 단사평이 윈난의 여러 토착민족 세력들의 지지를 얻어 얼하이 지역을 다스리던 양씨 군대를 몰아내고 국호를 따리로 정한 후부터. 훗날 윈난의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중심지가 쿤밍으로 바뀌었지만 중국인들에게 따리는 여전히 윈난의 중심도시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따리 입구 성문의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일요일 밤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성문에 걸린 현판의 '따리'는 우리에게 <사람 냄새가 그립다>(역사넷 펴냄)란 책으로 알려진, 중국 민족의 저항정신을 담고 있는 만리장성의 성벽을 정비하자고 주장했던 중국 작가 '궈모루(1892~1978)'의 친필, 즉 그의 친필 현판이다. 글씨가 멋스럽다.

우리는 '라오와이(중국인들이 외국인을 부르는)'가 되어 따리 고성의 혼잡함 속에 끼였다. 가게마다 즐비한 대리석 제품들과 알록달록한 스카프며 숄, 염색 천, 각종 수공예품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낮에 왔다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그럼 훨씬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으로 보는 족족 셔터를 눌러대면서.

대리석이란 이름은 대리(따리)에서 유래한다. 백족의 전통가옥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리석 화분-2011.7.18 대리(따리)에서
 대리석이란 이름은 대리(따리)에서 유래한다. 백족의 전통가옥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리석 화분-2011.7.18 대리(따리)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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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는 대리석 산지로 유명하다. 대리석이란 이름은 이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다. 대리석을 거의 건축재로만 쓰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술잔이나 다기, 문방용품이나 주방용기 등을 만들기도 한다. 술잔이나 다기를 만드는 이 지역의 대리석들은 햇빛을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로 얇으며 대리석으로 만든 병풍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단다.

여행 가기 전 대리석 병풍에 대해 이 정도로 알고 있었던지라 대리석으로 만든 병풍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대리석 제품들을 파는 가게가 보이면 발을 멈추고 기웃거리며 찾아봤지만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8박 9일의 여행 중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대리석으로 만든 화분들을 백족 자치구인 이곳 따리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 따리의 성산이자 윈난을 북방으로부터 지켜주던 창산을 말 타고 트레킹(중화사까지)- 얼하이 호수 전망 감상 후 내려올 때는 도보 트레킹 ▲ 따리 백족 전통가옥 밀집 지역인 시저우로 이동, 전통 민가 탐방하여 백족 민속 공연 보고 전통차인 삼도차 시음 ▲ 샤핑 마을에 가서 백족들의 노천장터 탐방 ▲ 리장으로 이동(버스 4시간) ▲ 윈난 지역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화려한 춤과 의상을 볼 수 있는 지역최대의 공연인 리수진사 공연관람 ▲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객들이 몰려드는 리장 고성의 밤풍경 즐기기 ▲ 리장의 주요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운영하는 리장 고성 객잔(민박)에서 숙박.

여행 3일차인 7월 18일의 일정이다. 아침을 먹은 후 객잔에서 나와 말 타는 장소로 이동했다. 백족들의 깔끔한 전통 가옥이 양쪽으로 가지런한 골목을 지나서. 백족들은 흰색과 꽃과 새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벽을 하얗게 칠한 후 새나 꽃그림을 그려 장식한다. 그리고 지붕에 새머리 장식을 하는데, 장식으로 머물지 않고 새를 키우는 집들도 자주 보였다.

쿤밍에서 따리로 가는 길. 우리의 고속도로 주변처럼 더러는 한두 집, 더러는 여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쿤밍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는 지붕 합각이 끝나는 벽에 동그란 문양을 그려 넣고 벽에는 불꽃과 해 등을 그려 넣은 독특한 집들이, 따리 가까이에 이르를수록 백족의 전통 가옥들이 많이 보였다.

대리(따리)는 백족 자치구다. 백족 전통가옥 거리-2011.7.18 대리(따리)
 대리(따리)는 백족 자치구다. 백족 전통가옥 거리-2011.7.18 대리(따리)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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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들의 숫자는 대략 1억 명, 중국 전체 인구의 8% 정도란다. 우리의 두 배가 넘는 인구지만 중국 전체 인구를 감안하고 소수민족이 55개라는 걸 헤아려 짐작해 보면 한 소수민족의 인구는 훨씬 적어진다. 그만큼 목소리가 적어질 수밖에 없으며, 사라질 가능성도 많다는 이야기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윈난을 여행하는 동안 이처럼 독특한 소수민족들의 집을 자주 보았다. 전통복장으로 밭일을 하거나 공사장 일을 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그들의 문화와 풍습이 담긴 노래와 춤도 보았다. 소수민족 그들이 자신들 민족에 대한 자긍심도 강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 풍습에 대한 애정도 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하여 바랐다. 중국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소수민족들의 특성을 무시한 간섭과 통제를 멈추기를, 티베트를 독립시켜주기를, 그리하여 리장에서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에 갈 수 있기를, 훗날 언제든 특별한 감동으로 만나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무엇보다 그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면서 하루 빨리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기를.

창산(주봉 높이 해발 4122m)의 봉우리들이 보이는 중화촌 입구에 도착하자 두세 마리의 말을 끈 마부들이 나타났다. 내가 탄 말은 좀 작은 편이었는데, 남자에 비해 떨어질 소지가 많은 여자들이 타는 말은 마부가 말고삐를 쥐고 간다는 사전 설명과 달리 두 필을 가져온 마부는 다른 사람이 탄 말 고삐를 쥐고 내가 탄 말의 고삐는 내게 넘겨주었다.

이를 어째! 날 더러 말고삐를 잡고 저 높은 창산에 오르라고? 두려움이 왈칵 일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타는데 뭔 일이야 있겠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두려움을 털어내고자 애썼다. 그런데 설상가상! 내가 탄 말이 다른 말들을 따라 산 쪽으로 접어들지 않고 도로 쪽으로 접어들더니 교통신호 때문에 멈춰 서 있는 자동차 사이로 파고들지 않는가! 성큼성큼!

난 졸지에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에 걱정거리가 되고 만 것 같다. 말 한마리가 느닷없이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로 끼어들자 운전자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감하다는 듯 쳐다봤다. 우리가 갑작스런 일에 놀랄 때 '어어?'하며 입을 다물지 못할 때처럼 입을 벌린 채 뭐라 중얼거리며.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갑자기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것 같으면서 아찔해졌다. 신호가 바뀌고 어떤 차가 경적이라도 울려 말이 놀라 뛰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내 사정과 달리 일행들은 이미 가버려 보이지 않고, 조금 전까지 내 뒤를 따라오던 가이드와 국제민주연대 미성씨도, 맨 뒤에서 방울 소리를 울리며 따라오던 백족 마부 아저씨도 내 쪽은 전혀 보지 않고 말을 탄 채 산 쪽으로 막 접어들려고 하고 있었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뒷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그런 굽이진 길로.

"나 좀 살려줘요~! 누가 좀 살려줘요!"

창산 오르는 길에 스쳐 지나간 중국 드라마 <천룡팔부> 세트장-2011.7.18 대리(따리)에서
 창산 오르는 길에 스쳐 지나간 중국 드라마 <천룡팔부> 세트장-2011.7.18 대리(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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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말과 말의 주인-2011.7.18일 대리(따리) 창산 중화사 아래에서
 내가 탄 말과 말의 주인-2011.7.18일 대리(따리) 창산 중화사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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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질러 가까스로 다른 말로 바꿔 타고 창산 중화사까지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실 공정여행을 떠나자 마음먹은 직후부터 말을 탄 직후까지 말을 타고 창산에 오른다는 것이 막연히 불안했다. '안전하니까 계속 진행하겠지?'라 생각해도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았었다.

말을 바꿔 탔지만 앞으로 1시간 동안 어떻게 가야 하나 긴장이 되어 말고삐를 바짝 움켜쥐었다. 그러나 얼마 잔뜩 굳어 어정쩡한 허벅지의 긴장을 풀어 지긋이 말에 밀착한 후 서서히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보자 말 타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졌다. 그리하여 난 언제 죽다 살아났냐는 듯 말의 움직임이 출렁거리며 창산에 피어난 꽃과 나무들을 즐겼다.

그러나 웬걸! 이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3분의 1쯤 갔나? 중국 드라마 <천룡팔부> 세트장 앞을 막 지나면서부터 길가의 풀을 뜯어 먹겠다고 해 마부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걷기를 반복하던 말은 이젠 아예 대놓고 멈춰 섰다. 마부의 채근에도 아랑곳없이 풀을 뜯어 먹다가 마지못해 걷더니 10여 미터쯤 가서 딱 멈춰 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되풀이하고, 그럴 때마다 마부가 채근하고, 두 마리 건너 뒤에서 방울소리를 내며 따라오던 백족 할아버지도 말을 달래고 혼내기를 되풀이 했다. 그런데 말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내리막길에서는 정신없이 내닫고 오르막길에서는 후다닥 뛰어 오른 후 멈춰 서서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를 중복했다.

말 위에서 별별 생각들을 하고 기도했다. 제발 무사히 갈 수 있기를. '말아, 제발 나를 떨어뜨리지만 말아다오!' 애원하며. 말이 내가 두려워하는 걸 알고 장난을 치는 건가. '쨔샤, 날 좀 봐줘!' 이렇게 말하며 좀 더 친숙해지고 싶어 허벅지를 말에 지긋하게 밀착해 말의 온기를 느끼며. 지나치게 민감했나? 미안한 마음에 마부가 볼 때마다 활짝 웃어주며. 그리고 갑자기 내린 비로 불어버린 물을 건너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말에게 고마워하며.

목적지를 조금 앞두고 작은 샛길을 이용해 마부가 내가 탄 말을 앞서가던 말 앞에 세우면서 유독 혈기왕성해 보이는 내 말은 많이 순해졌지만, 목적지에 닿아 말에서 내릴 때까지 긴장해야만 했다. 고삐를 잡았던 손이 얼얼할 정도로. 그런데 마부와 함께 내려가는 말을 보며 말을 타고 창산에 다시 오르고 싶단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음은 어인 까닭이랴.

말의 의도야 어떻든 말과 함께 윈난의 소수민족들을 북방으로부터 지켜줬던 윈난 소수민족들의 성스러운 산 청산을 고생고생하며 올랐다는, 말 위에서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말에게 애원하고 미안해하며 긴장한 만큼 진실해졌기 때문 아닐까. 중화사를 둘러보고 다른 길로 창산을 걸어 내려오며 말과 1시간 동안 벌인 해프닝이 그저 기분 좋을 뿐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이 창산. 주봉의 높이 해발 4122m로 무척 높은데 낮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머문 대리 고성이 해발 2000m에 있기 때문이다.-2011.7.18일 창산가는 길에
 멀리 보이는 산이 창산. 주봉의 높이 해발 4122m로 무척 높은데 낮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머문 대리 고성이 해발 2000m에 있기 때문이다.-2011.7.18일 창산가는 길에
ⓒ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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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인데 말을 타는 프로그램을 왜 섞었나? 잔인하게 왜 말을 타고 산에 올라야만 하는가? 의아해 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예전에 말들은 농사를 짓고 물건을 나르거나 사람들을 태우는 등으로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재산이었지만, 요즘엔 일부러 죽이고 있습니다. 소수민족들이 살던 지역들이 관광지가 되고 자동차가 보급되고 그들이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쓸모가 없어졌거든요. 아주 적은 숫자의 말들이 이처럼 관광객들을 태우는 데 쓰이며 소수민족들에게 돈을 벌어주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산이나 들판을 다니지 않는 말들은 수명이 단축된다는 겁니다."
- 국제민주연대 김미성

여행을 떠나기 전 공정여행 관련 기사를 쓰며 관광산업의 폐해에 관한 글들을 좀 많이 읽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코끼리를 12년 동안 쇠몽둥이로 길들여 50년 동안 부려먹는다는 네팔이나 태국의 '코끼리 투어'에 대해서도 읽었다. 이런지라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국제민주연대가 왜 말을 타는 프로그램을 일정에 넣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던 터였다.

그랬다. 깊이 알지 않으면 자칫 비판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 말 타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있었다. 창산에 오르는 방법은 리프트를 타고 가는 방법과 산행, 그리고 말타고 가기. 자연도 덜 해치고 경제적으로 소외받는 현지인들도 도와주면서 동물도 살리고 여행의 참맛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 제일 좋은 것 같다. 공정여행의 취지다.

우리들이 말을 타는 대가로 소수민족들에게 지불하는 돈은 기득권인 한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소수민족 그들의 밥이 되리라.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마부에게 쥐어준 팁은 아이들 학용품을 사는데 쓰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한 시간 남짓 고생을 하는 동안 정이 들어버린 내 말이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살게 하리라.


태그:#공정여행, #국제민주연대, #창산, #얼하이 호수, #중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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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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