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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케이크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J.
 컵케이크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J.
ⓒ 장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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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꿈을 향한 길로 들어서자 "최대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피해 가면 감성 포인트가 적립됩니다"는 팁이 떴다 사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J가 몇 걸음도 채 떼지 못한 지점에서 동생의 빗방울 "누나는 앞으로 뭘 할 거야?"가 머리 위로 떨어져 에너지 게이지가 10% 감소되고 만다. J는 주택 대출금을 혼자 부담하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애써 삼키고 꿋꿋하게 앞으로 향했다.

걷다 보니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 출품' 이벤트가 나타난다. 떨리는 마음으로 실행(action)을 누르자 J의 작품이 한국의 40 작품 중 한 작품으로 당선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너스 포인트 10점을 얻게 됐다.

길을 조금 더 진행하자 함께 대학 동창의 번개 한 줄기 "넌 정도에서 벗어났어"가 떨어져 에너지를 15% 감소시킨다. 충격에 엎어져 한동안 비를 맞게 된 J의 눈앞에 S커피전문점이 보인다. 바리스타 수련을 마쳐 감성포인트 10점이 추가됐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피해가던 중 이유를 알 수 없이 넘어졌다. 바닥을 살펴보니 돌부리 '돈의 압박'이 깔려 있다. 신기한 건 잦은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J의 감성 포인트가 일정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J는 강적이다.

가우디에 홀린 그날 이후, 회사를 때려쳤다

J를 처음 만난 날, J는 나에게 정체불명의 명함을 건넸다. 'rachel's card'라 적혀 있는 블로그 주소, 연락처 외에는 적혀 있지 않은 질문을 부르는 명함. 나는 간단한 질문을 통해 J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수제카드 제작자이며 미술·디자인분야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눈빛을 지닌 보기 드문 존재란 걸 알게 됐다. 그날 J는 나의 수많은 연구대상 중 하나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200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당선된 J의 작품.
 200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당선된 J의 작품.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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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이야기는 5년 전 어느 봄날 스페인 구엘공원에서 시작된다. 휴가를 내어 유럽여행 중이던 J는 스페인에 다다랐고 그중 유명 관광지라는 '구엘공원'을 찾았다. J는 이 공원에서 영감을 얻어 삶의 전환을 결심했다는데, J가 이 곳에서 본 것은 동화처럼 구불구불 펼쳐져 있는 작품의 아름다움보다 '가우디의 용기'였다. 어딜가나 주사위처럼 사각인 네모나라 스페인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상상 속 곡선 건축을 눈앞에 실현한 가우디의 용기 말이다.

"가우디 작품을 보며 상상한 것은 실현될 수 있겠구나. 내 작품을 단순한 취미로 머물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꿈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날 J는 직접 만든 패브릭·종이공예 디자인 작품들을 카페 한 켠에 전시해 판매하는 꿈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J는 가우디가 숨결을 불어넣은 이 꿈에 매진하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2006년 봄에 품은 꿈은 같은해 가을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 북아트 작품을 출품해 당선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어 스크랩북킹 전문강사 활동, 2008 도쿄 디자인페스타 참여, 2009~2010 'rachel's card', S출판사 직영 서점 납품이란 성과로 이어졌다.

"누나는 대체 뭘 할 거야?"... J는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J가 만드는 형태의 수제카드는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보편화된 것이라 수입 재료 값이 꽤 든다. 자연히 일반카드보다 비싸 쉽게 팔리지 않았다. J가 현재 일하는 컵케이크집에 양해를 구해 발렌타인·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시, 판매해 보았지만 1년을 통틀어 한 달 최소 생활비 정도를 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J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카페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 바리스타 과정, 관련 서적을 읽기 위한 영어 공부 등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답답하다고 하지. 누나는 대체 뭘 할 거냐고 하고…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으니깐… 미안하고…. 그런데 이 길을 가는 건 멈출 수가 없어."

J가 돈보다 좋다고 하는 카드. 모든 걸 직접 만들고 소량 생산만 한다.
 J가 돈보다 좋다고 하는 카드. 모든 걸 직접 만들고 소량 생산만 한다.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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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길이 아닌 꿈을 향한 길을 걷기에 가족들이 함께 사는 집의 대출금 부담을 남동생에게만 지우게 되기도 했다. J의 평생 후원자가 될 거라는 동생은 고맙게도 큰 불평 없이 부담하며 J를 응원해 준다. 

사실 나도 J의 남동생의 말에 공감했다. J의 카드는 상당히 예쁘다. 하지만 카드를 선물의 들러리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비싼 가격을 지불하며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카드보다 비싸게 팔더라도 원재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실제 J에게 남는 돈이 너무 적다. "J야, 하필이면 돈 안 되는 것들을 만드는 데 열정을 쏟는 거니?"라고 말이라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수제카드를 만들고 이를 사람들이 받아보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찾겠다는 J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다.

아~ 이 레이저…. 잠시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바비큐 파티에서, 사람들이 다 모이기 전 목살 바비큐를 허겁지겁 먹고있던 내가 보였다. 그런 내 옆에 서서 "벽돌로 맞고 싶냐"는 신선한 멘트와 함께 초강력 레이저를 쏘아 내 식욕을 잠재운 이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가 바로 J였다. 나는 말했다. "동생이 너무 심한 말을 했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 식욕을 잠재운 레이저 포스의 소유자 J, 너라면 충분히 평생 카드를 만들며 살 수 있어.'

J가 만드는 카드는 디자인이 모두 달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수제 창작 카드인 관계로 대량 판매 목적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할 수 없으며, 디자인의 복제 우려가 있어 인터넷에 올릴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이 때문에 고급 플라워숍, 백화점 선물 코너 등 수제카드의 가격을 감당할 만한 곳에 팔아줄 것을 제안해 봤지만 문턱이 상당히 높았다.

"공들여 만든 카드를 목전에서 거절 받는 기분 더 느끼고 싶지 않아. 혼자서 수공예 제작부터 판매까지 하는 게 쉽지 않거든."

지친 J는 더 이상 카드 판매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항상 회사에서 팀을 이뤄 일해 왔기 때문에 혼자서 산전수전 겪으며 가는 외로운 길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 강인한 포스의 J도 힘들다는 걸 보니 얼마나 힘든지 알려고 하지 않는게 나을 것 같다.

나도 구엘공원에 가볼까나

발렌타인데이용으로 만들었던 J의 카드
 발렌타인데이용으로 만들었던 J의 카드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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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J는 여러 가지 아픔을 겪으며 4000원 가량 하던 카드 가격을 2500원으로 낮췄으며 간간히 바자회 같은 기회가 생길 때 판매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없이 리얼한 오늘을 반복하고 있는 J, 하지만 J는 구엘공원에서의 결심 이후 5년 동안 단 하루도 지루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J만의 카페를 개업하기엔 너무 먼 길로 보이는 카페 매니저 수입과 수제 카드수입, 친구와 가족의 현실적 충고들은 초강력 레이저의 소유자 J를 낙담시키지 못한 듯 보였다.

"더 제대로 해야겠구나. 친구, 가족들의 걱정이나 충고를 들을 때면 그런 생각해. 결심하고 가는 꿈의 길인데 걱정 끼치면 안되잖아."

나도 구엘공원에 한 번 가봐야 하나? 목살 바비큐 먹기 전 다르고 먹은 후 다른 내 마음과 비견되는 J의 굳은 의지가 신비로웠다. 

우리는 대체로 꿈을 거창하게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화려하게 빛나는 그들의 현재는 과거의 구질구질함이나 고통도 아름답게 포장시키지만 J는 꿈을 이뤄가는 중일 뿐이라 소박하다. 집에 J가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생겨 베란다에 있던 재료들을 방으로 옮겨온 것도 겨우 작년 가을이 되어서였다.

"거실에 또 펼쳐놨느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이젠 듣지 않아도 되니 좋아."

감사하며 하나씩 이뤄가는 J, 네가 가우디처럼 멋진 아티스트가 되면 좋겠다. J의 아름다운 열정을 알아주는 J만의 구엘 백작 어디 없을까? 나의 가우디 J야~ 힘내고, 앞일 팍팍 뚫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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