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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돈다는 충청남도 서산(瑞山). 우리 일행은 25인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중부지방에 억수로 쏟아지는 빗길을 뒤로하고 서산을 향해 출발이다.

 

서산을 흔히 내포(內浦)중심지라 한다. 내포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들어간 부분인데,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친다'고 했다. 내포지방은 예산, 당진, 홍성, 서산 일대를 일컫던 지방이름이었다.

 

서산에는 마애삼존불이 있다

 

금강 상류지역에 위치한 내포평야는 삼남보고(三南寶庫)로 꼽는다. 수만 년 간 퇴적된 간척지의 기름진 땅에서 생산한 쌀은 미질이 좋기로 밥맛 또한 일품이란다. 주변의 구릉지에서는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 과수농사가 성행하고, 요즘은 서산마늘과 서산인삼이 이 고장 특산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서산에 가면 뭘 먹을까? 서산하면 어리굴젓이 생각난다. 또, 박속낙지도 유명하단다. 동해 오징어가 서해에서도 많이 잡힌다는데, 싱싱한 오징어물회는 어떨까? 갯가 근처에서 조개구이에 막걸리 한 잔도 좋을 듯싶다.

 

그 보다 서산에서 뭘 보고오지? 1박2일 여행. 점심 먹고 늦게 출발한 첫날 일정에 대해 우리 일행은 의견이 분분하다.

 

"해미읍성이 좋아요. 성곽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하고. 천주교 박해성지로 순교 의미도 되새길 수 있어요."

"상왕산 개심사도 있지요. 속세의 시름을 잊게 하는 때 묻지 않은 사찰이 참 인상 깊을 거예요."

"그보다 용현리에서 백제인의 미소를 보면 어때요?"

 

백제인의 미소라?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을 말하는 모양이다. 용현리계곡 맑은 물소리와 함께 마애불을 보면 좋겠다는 의견에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달린다. 산등성이를 이발이라도 한 듯 단정하게 조성된 초지에서 풀을 뜯는 누렁이 소떼들이 한가롭다.

 

서산 아라뫼길로 들어섰다. '아라뫼길'이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뫼'를 합친 말이라 한다. 서산 아라뫼길은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자연 그대로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길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아라뫼길은 시작과 끝이 없다고 한다. 적당한 곳에 발걸음을 시작해서 멈추는 데가 끝이란다. 가는 길마다 아름다운 절경과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용현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이 상쾌하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공기와 물소리를 들으며 두어 시간 걷고 싶다.

 

차창을 내린다. 나무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마애불까지 20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삼불교'라는 구름다리가 멋지다.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오르니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곧이어 불이문이 보인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에서 불이(不二)는 유래한다고 한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이제 곧 마애삼존불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삼존불의 미소에서 백제인의 미소를 보다

 

얼마가지 않아 돌계단과 석축이 보인다. 헐떡인 숨을 죽이며 함께 한 일행들 모두 마애불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야! 이 삼존불이 바로 백제인의 미소라고 하는가!"

"세분 부처님의 자애롭고 온화한 표정이 압권이네요!"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음 띤 모습이 각기 다르다하여 일행들은 여러 각도에서 연신 카메라를 터뜨린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백제인의 낭만적인 기질을 보려는 듯 서로 자리 바꿔가며 유심히 관찰한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어있다. 가야산의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에 위치한 커다란 암벽을 부조형식으로 조각한 삼존불상이다. 중앙에 본존인 석가여래입상, 좌측에 제화갈라보살입상, 우측에 미륵반가사유상을 배치하였다. 처음에는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형식의 삼존불을 모셨다고 한다.

 

서산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입술을 드러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뺨을 한껏 부풀린 모습의 마애불에서 백제인의 아름다운 미소를 찾으려 한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있는 석가여래입상의 둥글고 풍만한 미소가 진가를 발휘한다.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등을 표현한 조각솜씨가 뛰어나다고 한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너무나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 본존불의 살찐 볼과 쾌활한 얼굴표정에서 당시 태평성대 백제인의 여유로움과 낭만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른쪽 미륵반가사유상 역시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이 크게 손상을 입었다.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다리 위에 수평으로 얹고 걸터앉아 오른손을 받쳐 뺨에 대고 생각에 잠겨 있어야 할 성도(成道) 전의 부처님의 미소가 예사롭지가 않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왼쪽 보살입상 또한 본존과 같이 볼 살이 올라 있다.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긴 모습이 아름답다. 천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는 치마가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우리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삼존불을 새긴 석공은 어떻게 이런 자리에 백제인의 아름다운 미소를 담을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니 삼존불이 자리 잡은 위치가 기가 막히다. 동짓날에는 해 뜨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앞에는 산자락이 가로막아 정면으로 때리는 바람을 피할 수 있다. 위로는 앞으로 튀어나온 바위와 더불어 삼존불을 새긴 바위가 80도로 기울여져 있어 비가 직접 들이치는 것 또한 막아준다.

 

악다구니를 쓰듯 매미가 울어댄다. 녀석이 우는 곳이 어딜까? 매미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리니 마애불 위 암벽에서 들리는 듯싶다. 벼랑 끝에서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에도 경이로움이 있다.

 

삼존불의 자애로운 미소의 상서로움에서 서산이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서서 마애삼존불의 미소에 눈을 떼지 못한 일행이 발길을 돌리며 말을 한다.

 

"우리 사는 세상도 이곳 마애불처럼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너무 늦었네! 이젠 서산에서 맛난 저녁 먹을 일만 남았어."


태그:#서산, #마애불, #서산마애여래삼존상, #국립용현리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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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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