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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 등걸이 있을 때 그것을 본 사람이 나무꾼이라면 그는 우선 땔감으로서의 유용성을 살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등걸을 건축이나 조각을 하는 사람이 봤다면 그들은 건축재나 조각재로서의 유용성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주조'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금속을 녹여 주물을 생산하는 과정(鑄造)을 먼저 생각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술을 만드는 과정(酒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 봤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심전심이나 염화미소처럼 알듯 말듯하고 아리송하기까지 한 법어(法語)라면 스님이나 불학연구자가 아닌 국어학자라면 어떻게 풀이하고 해석할지가 궁금했습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세계화 재단에서 기획하고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한국어문학전공 장윤희 교수가 써 <채륜>에서 출간한 '몽산법어언해'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몽산법어언해'는 <국립국어원>으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원을 받아 '100대 한글 문화유산 정비 사업'으로 이루어진 결과물, 일종의 연구과제 결과물입니다.

 

나옹선사가 간추려 기록한 '몽산법어'

 

몽산법어(蒙山法語)는 고려 공민왕의 왕사 보제존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라는 글귀로 잘 알려진 나옹선사가 중국 원(元)나라의 고승 몽산화상 덕이의 법어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기록한 것입니다.

 

공민왕 때라는 시대에서 짐작 할 수 있지만 '몽산법어'는 한자와 옛한글(한글 고어)로 되어 있어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문자가 들어가 있음은 물론 문법이나 용법도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원문 紀滅卽盡處 謂之寂니

언해문 起며 滅호미 곧 그츤1 고 닐오 寂이라 니

현대어역 일어나고 소멸함이 곧 그친 곳을 말하기를 적(寂)'이라고 하는데

주석 1그츤:끊어진.그친. '긏-'은 중세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로 두루 사용된 동사인데, 여기서는 자동사로 사용되었다. -205-

 

원문으로만 본다면 보고 있어도 읽지 못하고, 읽지 못하니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이며 실정입니다.

 

<몽산법어언해>에서는 먼저 한자와 고어로 된 원문을 싣고, 주석을 달아 언어적으로 먼저 해석하고 이어서 지금 우리세대에서 통용되고 있는 현대어로 다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언해문에 단 주석(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그런 글) 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해문에 달린 주석은 용어에 대한 설명, 문자의 변천과정, 문법적 해석, 낱말과 낱말과의 관계는 물론 시대적 배경까지 어느 틈새도 보이지 않을 만큼 꼼꼼한 설명입니다. 달랑 한 줄의 원문이나 언해문에 20~30줄의 주석이 달린 게 예사니 책 전체 불량의 구할 이상이 국어학자의 입장에서 풀어 쓴 국어학적 설명입니다. 

 

국어학적으로만 해석돼 법어의 담백함 오롯해

 

몽산법어가 화두나, 참선에 드는 방법 등에 관한 내용이니 스님이거나 불교학자의 입장에서 썼다면 당신들의 불교관련 지식이나 수행적 경험에 따른 부연(설명)이 따랐겠지만 '몽산법어언해'는 온전히 국어학적으로만 설명하고 해석한 글이라서 법어 원문에 담긴 담백함이 오히려 더 오롯하다는 느낌입니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한국어세계화재단 자체가 실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한글을 대하는 시책의 현주소입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여타의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결과물로 출간된 '몽산법어언해'가 어휘와 문법을 아우르는 국어사적 측면에서 갖는 가치는 효용성과 상업적 가치로는 가늠 할 수 없는 고구(考究)한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역주 및 해설 작업을 진행하면서 '몽산법어언해'에서 보이는 독특한 언어 사실을 확인하고 난해한 법어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던 점은 대단히 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가질 수 있었던 큰 즐거움, "'몽산법어'에서 보이는 독특한 언어 사실을 확인하고 난해한 법어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는 큰 즐거움"을 우린 '몽산법어언해'를 읽는 것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몽산어법언해>, 국어를 전공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겐 국어학적 전문지식이나 소양을 넓혀주는 전문서가 되고, 나옹선사가 간추려 후세에 전한 법어를 접하고 싶은 불자에겐 오로지 국어학적으로만 해석해 담백하기까지 한 '몽산법어'를 읽고 소화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몽산법어언해>┃글 장윤희┃펴낸곳 채륜┃2011.06.30┃값:15,000원


몽산법어언해

장윤희 지음, 채륜(2011)


태그:#몽산어법, #몽산어법언해, #장윤희,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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