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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4월 25일 오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 건설 현장에 최병수 작가가 철판에 이지스함 모양을 뚫은 작품 안쪽으로 범섬과 해안기지를 반대하는 깃발이 보이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4월 25일 오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 건설 현장에 최병수 작가가 철판에 이지스함 모양을 뚫은 작품 안쪽으로 범섬과 해안기지를 반대하는 깃발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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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국방장관님. 저는 찬반 갈등 속에서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는 제주특별자치도 도민이며 한때 관선, 민선도지사로 일했던 신구범입니다.

장관님은 지난 20일 '국방개혁방향과 발전방안'이란 주제의 조찬포럼에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하여 "기지건설에 찬성하는 사람 숫자가 훨씬 많아서 안 들어가겠다고 선언할 수 없다"며 "제주도 남방해역만큼 앞으로 민감성이 대두될 해역이 어디 있겠느냐, 그 일대 군항건설은 국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장관님의 이 발언 내용을 접하고 분노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진실을 호도한 채 제주도민을 속여 온 세력이 이제는 한 나라의 국방장관까지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입니다.

장관님이 인지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성자 숫자, 주민동의, 기지 건설 필요성과 그 시기적 적절성 등에 대한 사실은 거짓이거나 조작된 것입니다. 더욱이 절대보전지역 해제 등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제주도지사의 행정처분에 대한 절차적, 내용적 불법과 위법여부를 가리는 사법적 판단도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이기 때문입니다.

강정마을 주민이든, 제주특별자치도 도민이든 간에 찬성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근거를 장관님은 내놓을 수 있습니까?

해군기지 찬성 하는 제주도민이 많다고?

정부와 해군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당초 해군기지 예정지인 화순지역을 거쳐서 위미지역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입지 선정에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런 후, 유네스코(UNESCO) 생물권 보전지역이며 바닷속 천연기념물 442호인 연산호 군락지로서 해군기지 예비후보군에서도 제외 된 강정마을을 돌연 해군기지 예정지로 선정했습니다.

정부와 해군은 주민과 도민의 반대에 부딪치자 화순과 위미를 순차적으로 포기해 버리고 두 지역에서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회유와 기망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극소수의 강정 주민을 포섭하여 해군기지 예정지로 순식간에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적법한 주민 동의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이에 관련된 해군, 강정주민, 제주도지사와 함께 동조했던 공무원 그리고 언론 등이 이 비열한 불법의 주모자, 방조자 또는 증인들입니다.

장관님은 정부와 해군이 강조하고 있는 우리나라 남방해역의 해상교통로 보호라는 긴급한 국가적 과제의 시간적 제약을 고려해 볼 때 해군기지 입지선정에 5년이나 허비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미국 해군이 제주 해군기지에 주둔하는 것은 물론 사용할 가능성도 현재는 없다고 하는 장관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만약 미국 해군이 제주 해군기지 주둔 또는 사용을 요청하면 이에 대한 정부와 장관님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해군은 "해군은 해양주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해군은 제주 남방해역 배타적경제수역(EEZ) 및 해양교통로 보호를 위한 기동전단 전투함들을 배치할 계획입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목적과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4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에 경찰 병력이 속속 집결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24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에 경찰 병력이 속속 집결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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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관님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연안국의 관할권 범위 밖에 존재하고 있는 심해저자원은 인류 공동유산이라는 기조 위에 UN해양법협약은 무해통항을 비롯하여 통과통항,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주도 남방 해역에 대한 해양주권의 보호는 해군의 설명과는 다르게 해양경찰청 소관이며 EEZ 해양탐사와 과학조사 등의 활동보호와 지원도 UN해양법협약 및 우리나라 해양과학조사법에 따라 해양경찰청 소관이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금년 들어 당초 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였던 화순지역에 해경전용부두 건설계획을 확정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정부와 군이 앞으로 동중국해에서의 대중국 분쟁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되는데 장관님께서는 이 견해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불법, 탈법... 공사 강행 이전에 진상조사부터 합시다

장관님, 방위사업청의 2012년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예산 요구액은 1327억 원입니다. 제주 해군기지를 당초 계획한 대로 2014년까지 완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2년 동안(2013, 2014년) 6284억 원, 즉 현재 연 예산의 3배가 넘는 3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매년 확보하든가 아니면 건설기간을 4년 이상 연장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정부는 강정지역을 포함한 서귀포지역에 대한 지원계획을 수립하기로 제주도민과 약속하였으나 이 지원예산은 2012년도 정부예산요구안에 반영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그동안 연간 정부예산 투입규모와 추세로 미루어 볼 때 장관님께서 "지금이 이 지대(제주도 내) 군항건설은 국가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달리 지난 2007년 입지선정부터 건설공사 완료 시까지 최대 11년이 소요되어 오는 2018년경 완공될 수도 있다는 판단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지금도 장관님께서는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강정주민과 제주도민이 요구하는 진상조사를 포함하여 관용과 소통을 통한 갈등해결 노력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으며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까?

국민의 군대인 해군이 아직도 "군인은 싸우면 이겨야 한다"는 막가파식으로 강정주민을 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관련 해군 책임자는 공사가 지연되면 한 달에 60억 원씩 손해를 본다고 공공연히 떠들면서 강정주민을 공갈,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 달 60억 원이면 1년 720억 원입니다. 공사지연의 경우 2011년 해군기지 공사비(1327억 원)의 52.4%를 손해 본다는 말인데 이것이 해군의 계산법입니까?

장관님, 조상 전래의 장두정신(狀頭精神)을 지니고 있는 제주도민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 언제나 스스로 앞장 서 전장으로 달려갔던 용사들입니다.

6·25 전쟁 당시 약 5만 명의 참전 학도병 가운데 전사자가 7000명이었습니다. 전국의 학교별 전사자를 보면 군산중학교가 63명으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냈고 제주 서귀농업중학교가 45명으로 전국에서 다섯 번째 많은 전사자를 낸 학교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해병대 3기와 4기 입대자는 전원 제주도 사람들이었습니다. 3000여 명 전원이 자진 입대한 중학생, 교사, 청년들이었으며 여기에는 126명의 여학생도 포함되었습니다. 진정한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시설을 반대하는 제주도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정부차원의 진상규명과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이 국가안보를 빙자한 해군의 불순한 의도로 진행된 사업일 뿐만 아니라 진행과정 상의 회유, 기망 등 탈법, 위법도 전혀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국책사업,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정 주민과 제주사회에 갈등과 분열 그리고 고통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해군기지 원점에서 재검토합시다

신구범 전 제주지사.
 신구범 전 제주지사.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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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지 건설을 강행하기 위하여 정부와 해군이 보여 준 고압적이고 무모한 대응방식과 일련의 옹졸한 조치 탓에 오히려 강정 주민과 제주도민이 제주 해군기지의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정부와 해군에 대한 불신과 반대도 계속 증폭되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부 언론까지 합세하여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치 좌파·종북세력인 것처럼 호도하며 실상을 모르는 국민을 속이고 강정 주민과 제주도민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육군사관학교 22기로 입교하여 이상득(한나라당 국회의원) 선배님처럼 4학년 때 퇴교한 육사동창회원입니다. 제가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저도 장관님과 마찬가지로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걷는다"라는 사관생도신조를 통하여 국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장관님, 정부가 강정 주민과 제주 도민에게 지난 과오를 솔직히 시인하고 이를 과감하게 시정하는 용기가 국방개혁의 진정한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해군기지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전 제주도지사 신구범 드림.


태그:#해군기지, #강정마을, #제주도, #김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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