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방부
 국방부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이대로는 안 돼. 중대장 저 자식 고발하고 말 거야."

휴가를 앞둔 김 상병은 그렇게 말했다. 1993년의 군 생활은 암울했다. 일병을 거쳐 상병을 달았지만 일상에서 구타의 검은 그림자는 가시지 않았다. 집합은 식사 후·취침 전후·일과시간을 가리지 않았고, "군 생활이 편하냐?"라는 일장연설 후에는 늘 군홧발과 몽둥이가 춤을 추었다.

평소 1대 1이면 순하기 짝이 없던 고참병들도 단체의 가면 아래선 또 다른 면을 드러냈다. 악다구니를 질러댔고, 얼차려로 끝날 일에 주먹을 휘둘렀다. 중요한 건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 업무를 태만히 한 것도 고참병들에게 딱히 책잡힐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 모든 배후에는 중대장이 있었다. 중대장이던 박 대위는 욕심이 많은 군인이었다. 고과평가에 지나치게 집착을 했고, 상부에 잘 보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괴로운 건 사병들이었다. 부대 일을 통째로 도맡아 오는 통에 온 중대원의 정신과 체력은 바닥이었다.

간부가 주도하는 부대 내 구타

국방부
 국방부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가장 나쁜 것은 은밀하거나 직접적인 구타 지시였다. 물론 '구타'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병장들과 분과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늘 부대가 개판이라며 악을 써댔다.

"씹어죽일 ××새끼들. 그딴 식이면 말년이고 뭐고 제대하는 그 순간까지 괴로울 줄 알아!"

그는 한 번 화가 나면 주체를 못했다. 분을 못 참아 길길이 고함을 질렀고, 손에 잡히는 것은 모조리 집어던졌다. 일반 부대라면 사병들끼리 알아서 할 군기를 자신의 손으로 조정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평소 자애로운 척 하다가도, 일이등병들의 어릿한 눈길만 봐도 돌아서선 '아득'하고 이를 가는 사람이었다.

시달림을 당한 병장들은 상병들을 들볶았다. 다시 고참급 상병들은 그 아래 상병들을 잔혹하게 다뤘다. 당연히 일이등병들은 몇 배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나와 한 달 고참인 김상병은 당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주어야 할 위치였다. 물론 두 사람 다 '당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버텨냈다. 당연히 중대장에겐 눈엣가시였다.

김상병은 개혁적인 기독 군종병이었다. 아니 그전에 집안 내력으로 유명했다. 별명이 '스타워즈'였다. 전현직 군 장성이 포진한 집안이었고, 그 별들을 다 합치면 스무 개가 다 되어간다고 했다. 물론 그는 누릴 수 있던 혜택을 멀리한 사람이었다. 배경을 쓰려했다면 애초 이런 말단 전투부대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휴가를 앞두고 '고발'이란 단어를 꺼낸 것이다.

초유의 간부고발 사태, 부대가 발칵 뒤집어져

국방부
 국방부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그게… 무슨?"
"너도 알잖아. 지금 부대가 하루하루 미쳐 돌아가는 거. 이건 군대가 아냐. 여기가 삼청교육대야? 나라 지키러 왔지. 개처럼 맞으려고 왔냐고. 소원수리 같은 거로 해결이 안 돼. 말려야 할 중대장이 지시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안 힘을 빌리려고. 이번에 나가서 저 새끼 고발할 거야. 아니 아예 군복을 벗겨버릴 거라고. 미친 자식. 저런 놈은 군인이 되선 안 돼."

늘 후임병을 감싸주던 그의 눈빛이 쨍하고 빛을 발했다. 하지만 설마 했다. 아무리 장성이 즐비한 집안이라 해도 사병이 사관학교 출신 간부를 고발하다니. 하지만 그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었다. 비밀을 지킬 것을, 그리고 뒤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휴가를 나갔다.

불안, 혹은 기대가 엇갈리는 며칠이 흘렀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부대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소문과 풍문이 과장되어 웅웅대더니 기어이 발칵 뒤집어졌다. 정말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중대자의 악행이 담긴 고발장의 두께가 백여 장을 넘긴다 했다. 그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참들이 줄줄이 대대장에게 불려갔다. 물론 '절대 그런 일은 없다'는 원하는 대답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상병 중에 내가 불려갔다. 유달리 깍듯한 대대장. 그는 정말 부대 내에 구타가 있는지 물었다. 뻔뻔한 표정에 착잡했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일부 사병들 사이에 그런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답하자, 대대장의 눈길이 드러나게 실쭉해졌다. 그러나 다시 실망의 표정을 감추고 물었다. 중대장이 구타를 지시한 일이 있냐고, 아니 그런 증거가 있냐고. 이건 정말 난감했다. 증거, 증거라…. 대대장은 다시 채근했다.

"박 대위가 구타를 직접 지시한 명확한 증거가 있냔 말이지?"
"그런…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런 증거는 없는 거지? 그러엄, 그럴 리가 있나."

대대장은 크게 웃으며 어깨를 두들겨줬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결말은 결국, 군인(?)다웠다

국방부
 국방부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그런 일이 없다'는 대대장의 보고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김상병 쪽에서도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결국 중대장은 여단 사령부에 소환되었다. 무언가를 예상했던지, 지프차에 오르기 전 부대를 한번 휘돌아보던 박 대위. 그는 "까짓것, 정 안 되면 군복 벗고, 취직하지"라며 허세를 부렸다.

여단장실로 불려간 박대위 앞에는 김상병의 부모와 여러 '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여단에 파견근무를 종종 갈 때라 그날 벌어진 일에 대해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여단장이 택한 방법은 정공법이었다. 지금은 '의원님'이신 당시 여단장은 온화했고 비교적 사병들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중대장이 들어서는 순간 피에 굶주린 맹수로 돌변했다고 한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중대장을 난타하는 여단장. 저주 섞인 욕설이 함께였고 두꺼운 유리 재떨이가 박살나 문밖까지 튀어나왔다. 김상병 측에서도 그야말로 아연실색. 그러나마나 여단장은 웅크린 중대장을 군홧발로 짓이겨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읍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녀석,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그때는 제가 직접 이 자식 옷을 벗기겠습니다."

끝났다. 더 이상 무어라 할 것인가. 그 어떤 대응보다 여단장이 택한 방식은 확실했다. 김상병이 전출을 가는 것으로 모든 일은 마무리됐다. 돌아온 중대장은 "지금까지 여러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하기 힘든 병사들의 태도, 구타는 그들이 만들었다

국방부
 국방부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짧고 굵은 폭풍이었지만 아무런 피해를 남기지 못했다. 잠시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시간. 하지만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해 모든 것은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건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보인 병사들의 일관된 태도. 고참병들이야 그렇다 쳐도 구타를 당하는 후임병들 사이에서도 김상병은 이해 못할 '또라이'였다.

"미친 자식, 남자새끼가 그런 걸 밖에 나가 떠벌여? 별 거지같은 새끼를 다 보겠네. 부대 안의 일은 안에서 해결해야지. 왜 밖에다 대고 ××이야."
"그 자식 처음부터 목표가 전출가는 거였을지도 몰라. 지 혼자 편하자고 그 난리 핀 거야. 똥 제대로 밟았네.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모두가 입을 모아 손가락질 했고, 부대 내 그 어떤 병사도 김상병을 편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불의를 위해 일어선 사람이지만 칭찬은커녕 정신병자 취급을 해대는 현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평소 전쟁이 터지면 중대장부터 쏘겠다던, 이를 박박 갈던 이들이라곤 믿기 힘들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찬찬히 그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깨달았다. 구타를 당하는 후임병들 역시 잠재적 가해자들임을. 구타와 얼차려로 대변되는 폭압이 그들에겐 부조리가 아님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후 제대하는 순간까지 여전히 구타나 폭언을 해보진 않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분명 달라졌다. '맞을 정신 상태를 가진 이들'이라 생각하니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해병 2사단 병사들 중 25%가 여전히 구타는 필요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경향> 7.19). 씁쓸하고 착잡하다. 구타와 폭압은 그저 세월이 흐른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졌을 때 바로잡을 수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곁에 있던 동료들이 목을 매고 피를 토하고 거꾸러져도 구타가 필요하다는 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인간이, 부디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병영 구타의 추억' 응모글



태그:#총기난사사건, #해병대, #군대, #구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