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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와 관람객들
▲ 빅토리아 폭포 무지개와 관람객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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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야 하는 줄 알았더라면 안 따라 왔을 거야!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모여든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일명 '스위밍풀(swimming pool)의 존재를 아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말을 걸었던 로니라는 청년이 제안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장소였다. 그러나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천연 수영장 앞에서, 놀라움 뒤에 곧바로 허탈해졌던 것은 여러 이유였다.

로니의 손님들 여러 명 모두 손을 잡고서 긴 행렬을 이뤄, 물살을 헤치고 힘들게 따라왔던 그곳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과 그렇게 도착한 곳에 난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 더구나 혼자 돌아갈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기념품 가게들
▲ 기념품 가게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기념품 가게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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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땡볕에서 이대로 저기서 다이빙을 즐기는 저들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로니, 나 하나도 기쁘지 않아. 이런 스위밍 풀이라고 왜 말 안해 줬어? 알았다면 안 따라왔을 거야. 수영복도 안 입었는데! 혼자 돌아갈수도 없잖아."

침울해진 내 표정이 걸렸는지 멋진 자세로 다이빙 한 판을 마친 그는 '따라오라'며 앞장 섰다. 한 이십 분을 첨벙거리며 따라갔을까.

"이런…..!"

고요하고 평화로운 폭포 위.
▲ 빅토리아 폭포 위. 고요하고 평화로운 폭포 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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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폭포의 꼭대기 모습은 들어가면 갈수록, 태곳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가늠되지 않는 돌들, 군데군데 자연적으로 퇴적되어 만들어진 웅덩이들, 웅덩이들이 조금 더 큰 곳은 그래서 다이빙까지도 가능한 풀을 만들고 있었다. 바로 아래는 폭포가 흐르는 굉음과 엄청난 에너지를 뿜는데 반해 이 곳은 전혀 또 다른 평화롭고, 고요한 세계였다. 누구라도 들어온 이상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순수함이 그곳에 있었다.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사람들이랑 이 곳에 자주 와?"
"가끔. 여기 50달러짜리라구~."

이 곳까지 사람들을 안내하는 데 받는 팁 얘기였다. 그렇게 로니는 "해피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나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망고 먹는 바분(baboon).원숭이의 한 종류.
▲ 빅토리아 폭포 근처의 바분 망고 먹는 바분(baboon).원숭이의 한 종류.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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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학생이니까 20달러에 해주면 안 되요? "

모델 뺨치게 이쁘장한 금발머리 소녀가 당차지만 매너있게 얘기했다. 금세 할인은 성사되었고 마지막 지불이 끝났다. 그리곤 내 차례였다. 20달러는 너무 큰 돈이다. 빅토리아 폭포 입장료가 10달러인데. 아마도 난 알았다면 안 쫓아왔을 것이다.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지불해야 하는지 몰랐네. 얼마 내면 될까? "

이미 손을 잡고 같이 건넌 금발머리 소녀에게 물어봐서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 난 물었다.

폭포와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있지만, 폭포물의 영향을 비켜갈 순 없다.
▲ 폭포물 머금은, 풀잎들 폭포와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있지만, 폭포물의 영향을 비켜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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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like you..." (난 그냥 네가 좋아.)
"...... (으응..? 어쩌라고.) "

얼마를 내야 하냐는 물음에 되돌아 온 대답은 '그냥 니가 좋아'였다. 음, 그러면 안 내도 되나? 어쩌지? 그래 뭐어… 특별히 날 부담스럽게만 안한다면야. 흔하게 들이대듯 사랑한다고 한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난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고 얘기했지 않은가(아프리카를 다니는 내내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였거나 혹은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도 난 로니한테 음료수까지 얻어마셨다. 뻔뻔함이 가끔은 필요할 때도 있다고 위안하면서.

나무로 깍은 조각상 및 동물상, 악기.
▲ 기념품 나무로 깍은 조각상 및 동물상,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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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내가 리빙스톤에 머무는 동안 로니와 나는 친구가 됐고 로니도 호의까지만이었고 추근대거나 과도한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감사하게도.

잠비아에서 푹 퍼져 오래 머물던 어느 날, 한국 사람이 한국말이 그리워지던 날이었다.

"아~ 한국말 하고 싶어! 아무래도 향수병인가 봐."
"나한테 말하면 되쟎아. 한국말로 해."
"장난해~? 넌 알아듣지 못하잖아.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을 걸? 하하."

내가 묵는 숙소 근처의 로컬 식당에서 로니와 만나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니 정신까지 나약해지는 듯 한없이 한국말, 한국사람, 한국음식이 그리웠다. 한국말로 조잘조잘 실타래 풀 듯 얘기만 해도 좀 시원할 것 같았다.

이 곳에서도 마트에서 음식을 사는 편리함이 어디에나 있다.
▲ 마트 이 곳에서도 마트에서 음식을 사는 편리함이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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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저녁, 숙소 '백베커'안의 바에서 노트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 때,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어서 뒤를 돌아보니 로니였다. 그런데 로니 뒤에 있는 누군가.

"사라. 내가 한국 사람 데려왔어. 오늘 빅토리아 폭포에서 그녀를 찾아냈지!"

로니는 한국 사람이 그립다는 내 말에, 빅토리아 폭포를 방문했던 한국 사람을 찾아낸 것이었다.

유럽에 알려진 계기가 된 데이비드 리빙스톤의 발견(?)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석.
▲ 데이비드 리빙스톤 기념석 유럽에 알려진 계기가 된 데이비드 리빙스톤의 발견(?)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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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찍은 빅토리아 폭포
▲ 빅토리아 폭포 옆에서 찍은 빅토리아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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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 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잠비아 , #리빙스톤, #빅토리아 폭포, #아프리카 배낭여행,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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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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