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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1일 오후 6시 30분]

계약 기간이 없어 계약 해지도 아니고, 문자로 보내온 해고 통보서조차 받지도 못하고 해고되는 그런 일터도 있다. 장례식장 빈소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노동자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그 일을 하고 있던 김희진씨는 지난 5월 17일부터 일을 주지 않아 해고됐다. 7월 14일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날,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희진씨를 만났다.

"저희는 특수고용노동자라 계약 기간이 없어요. 그날그날 순번표가 있어요. 순번표에 명단이 없으면, 불러 주지 않으면 해고예요."

김희진씨는 도우미 일을 하고 시간당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는 7천 원, 이후부터 아침 7시까지는 1만 원 정도 상주한테 수고비를 받는다. 4대보험이 없고, 그야말로 시간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다.

장례식장 도우미, 하청의 하청 노동자

지난 7월 14일 비 오는 날 연세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하는 김희진 씨.
 지난 7월 14일 비 오는 날 연세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하는 김희진 씨.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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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힘들어요. 단순히 식당 일 이상으로, 상주 마음도 읽어야 하니까. 식당은 그냥 달라는 대로 주면 되지만, 우리는 정해져 있어요. 상은 자주 당하는 게 아니라서 상주들이 허둥지둥해요. 그러면 우리가 끝날 때까지 그분들한테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역할인데 아주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서운하지 않게."

장례식장 도우미들은 하청의 하청 노동자이다. 김희진씨는 TOP라는 회사하고 계약을 맺었지만 관리는 그 위에 있는 (주)아워홈(이하 아워홈)이라는 회사가 한다.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은 이 아워홈하고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경쟁이 치열하다.

"아워홈에서 관리자가 한 명 장례식장에 나와 있어요. 그래서 식당을 관리합니다. 화환, 사진, 양복, 수의, 매점, 청소 등 전부 용역을 준 거예요. 모든 명령은 아워홈 점장이 하죠."

보수는 상주들한테 받는다. 하지만 못 받을 때가 있다. 무료 서비스라는 황당한 제도 때문이다.

"무료 서비스 때문에 제가 해고당한 거예요."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 김희진씨가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는다.

"장례식장에 빈소가 가장 큰 특1, 2, 3호가 있어요. 아워홈이 장례식장과 계약을 맺을 때 여기를 하루에 8시간씩 2명의 무료 서비스로 도우미를 넣어 주기로 한 거예요. 그럼 우리는 돈을 못 받는 거죠."

하루에 7, 8명 도우미가 돈을 받지 못하고 일해 준단다. 그래도 전에는 6시간씩 한 달에 한 번꼴, 두 달에 한 번꼴로 무료로 일을 해 주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9년 3월부터 시급 6천 원에서 7천 원으로 오르고 난 뒤 8시간씩 무료로 일을 해야 했다. 김희진씨는 또 이 얘기는 꼭 써 달라고 하면서 말했다.

"2009년 3월부터 장례식장에 새로운 사무장이 오셨대요. 그분이 왜 이 무료 서비스를 안 지키냐고 해서 갑자기 8시간씩 1, 2, 3호에 무료 서비스를 8시간씩 하게 된 거죠."

그것뿐만이 아니다. 무급으로 한 사람당 8시간씩 두 번까지는 무료로 일하고, 세 번째부터는 최저 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회사는 마음대로 정했다. 도우미들은 일이 없을 때는 일주일까지 쉰다. 그런데 무료 서비스 차례는 꼬박꼬박 돌아왔다.

"상주 분들은 우리가 공짜로 일해 주러 온 줄 모르고 병원에서 돈을 다 주는 줄 알아요. 상주들이 '병원에서 왔죠? 병원에서 지급해 주죠?' 하고 물으면 우리는 '아닙니다. 못 받고 있습니다. 저분들은 받고 우리는 무료입니다' 하고 얘기하면 상주들이 '병원 도둑놈들이네. 요즘 돈을 못 받고 다니는 데가 어딨어요?' 하고 물어보기도 해요."

김희진씨는 그게 얼마나 억울한지 계속 그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사무장이 시켰대요. 차라리 우리가 용역 회사에 수수료를 내겠다고 했어요. 다른 병원은 한 달 수수료로 2, 3만 원 씩 낸다는데 우리도 수수료 정해서 달라고 하면 내겠다고 했어요."

오죽했으면 무료 서비스를 하기보다 차라리 수수료를 낸다고 했을까. 그런데 그 이야기가 너무 길다. "노조는 언제 만들었어요?" 하고 물었는데 김진희씨는 억울한 말을 계속 토해 내고 있었다.

"다들 폭발 직전이었죠. 점장이 나보고 '니가 점장해라', '나가세요', '여기 이력서 많으니까 집에 가서 푹 쉬어라', '옷 벗고 나가라', '걱정 말고 집에서 쉬라'고 했어요."
"노조는 언제 만들었어요?"

또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다같이 말하자. 다 똘똘 뭉쳐서 이 무료 서비스 없애자.  그래서 우리가 '인권위'를 찾아가자 해서 찾아갔어요. 3, 4일 뒤에 인권위에서 민주노총을 가라고 알려 줬어요."

도우미 노동자 20여 명이 모두 민주노총에 조합원 가입서를 냈다. 그리고 4월 1일부터 점장에게 절대 무료 서비스는 못 한다고 선언했다. 점장이 한 사람씩 불러서 이야기했지만 모두들 무료 서비스는 안 한다고 대답했다.

"더이상 무료서비스는 못 하겠다" 주장, 그런데 돌아온 건...

결국 4월부터 무료 서비스가 없어졌다. 그리고 4월에 아워홈에서 5만 6천 원씩 세 번 받았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소라도 한 마리 잡자고 했다. 그런데 앙심을 품은 점장이 보복을 하기 시작했다.

"몰려다닌다, 데모 다닌다 하면서 여기 호출 받은 사람 외에 장례식장에 발 딛지도 말래요. 도우미 지킴 사항을 만들어서 이래도 저래도 짜를 거고. 권고 사항, 규칙에 의해서 짜르고. 세 시에 입실을 한다면 우리는 두 시 오십 분까지 들어가는데, 늦어도 사십 분까지 들어오라는 거예요. 오 분 늦었다고 한 조합원은 잘렸어요. 또 ○○ 언니는 다른 빈소 가서 커피 한 잔 먹었다고 잘렸어요."

상주가 상을 치르고 난 뒤 '불쾌한 점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도우미가 음식 늦게 시켰다'라고 적는 순간 해고된다. 심지어는 문상객들이 먹는 떡에 돌이 나와 보고했는데, 문상객이 떡에 돌 나왔다고 '만족', '불만족' 난에 '불만족'이라고 적었다고 일을 주지 않았다.

"떡에 돌 나온 건 식당 잘못인데 내가 뭔 잘못이냐고 그랬더니 태도 불순이라고 일을 안 줬어요."

화려한 장례식장? 그 뒤엔 피눈물나는 장례식 도우미 노동자들이 있다.
 화려한 장례식장? 그 뒤엔 피눈물나는 장례식 도우미 노동자들이 있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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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분회 창립총회 하루 전인, 5월 17일부터 김희진씨는 도우미 명단에서 없어졌다. 하지만 5월 24일 예정대로 창립총회를 치렀다. 그 뒤 어찌 된 일인지 조합원들이 조합을 탈퇴한다는 내용이 담긴 A4용지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로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공공운수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 민영기씨에 따르면 서식에도 맞지 않는 그 내용증명은 효력이 없다고 한다. 김희진씨는, 회사에서 조합원을 한 사람씩 불러 회유를 했다고 믿고 있다.

"생전 안 그러더니 지배인들이 갑자기 조합원들한테 굽실굽실하고 복날이니까 닭 먹으라고 살갑게 굴더래요. 사람들이 갑자기 연락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받고, 영웅에서 왕따 됐어요."

언니 너무 미안하네요 아무런 힘도 못드리고 힘내란말밖에 .. 같이 일할수 있는 날까지 화이팅하세요.
 언니 너무 미안하네요 아무런 힘도 못드리고 힘내란말밖에 .. 같이 일할수 있는 날까지 화이팅하세요.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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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1인 시위, 하지만 혼자는 아니다

김희진씨가 1인 시위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직 병원 측에서는 반응이 없다. 하지만 연대해 주는 이들이 많아 실망하지 않는다. 노조 전임자들과 연세대 학생들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연대해 주고 있다. 오늘도 비를 맞고 대여섯 명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현재 세브란스 장례식장 도우미들은 29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연령대는 40대 중반과 50대 아주머니들이다. 올해 쉰둘인 김희진 씨는 2004년에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생활정보지를 보고 2005년부터 중앙협회에서 장례식장 도우미 뽑는다고 해서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김희진씨는 오로지 자식 걱정이다.

엄마가 시위한다 하니까 딸이 "엄마, 그렇게 해서 얼굴 팔려 버리면 나는 시집을 어떻게 가" 하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막내인 24살 먹은 아들은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 오늘도 비 맞고 시위해? 엄마 파이팅!" 하는 문자를 보내고, 가끔 연대 앞까지 오기도 한단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무서워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지만 응원 문자를 보낸다.

"언니, 너무 미안하네요, 아무런 힘도 못 드리고 힘 내란 말밖에. 같이 일할 수 있는 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김희진씨는 1인 시위를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는 물음에 '기약 없다. 내일 일은 모른다'고 했다. 자신은 우선 가장 큰 문제인 무료 서비스를 없앤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그럼 끝까지 버티려는 이유는?

"저는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난 인간이니까.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오마이뉴스> 기사가 보도된 이후 아워홈 측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의 식당만 용역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급으로 한 사람당 8시간씩 두 번까지 무료로 일하고, 세 번째부터는 최저 임금으로 지급했다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무료로 일하는 날도 8시간이 초과될 때는 시수 계산을 해서 일당을 지급했다. 세 번째 부터는 시급 7천원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회사에서 조합원을 불러 회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노조의 탈퇴를 회유한 적이 없으며 회유가 될 사안이 아니"라며 "회유나 종용 등의 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작은책 8월호에 비슷한 글이 실렸습니다.



태그:#작은책 , #생활글의 본좌, #안건모, #일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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