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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송정민(40)씨가 집 거실에 있는 임신한 돼지 '막내'를 살펴보고 있다.
 12일 송정민(40)씨가 집 거실에 있는 임신한 돼지 '막내'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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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철(50)·송정민(40) 부부의 집 거실에는 돼지가 산다.

12일 정씨 부부는 "집이 지저분한데…"라며 현관문을 선뜻 열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돼지 오줌 냄새라고 했다. 구토가 나올 정도였다.  거실은 돼지우리와 연결돼 있었다. 아니, 거실도 돼지우리의 일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 거실과 문을 사이에 두고 사람 사는 방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씨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시설이 필요한데, 마땅한 시설이 없어서 돼지를 집안에 들인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임신한 돼지의 경우 온도나 습도 등에 민감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집안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부부는 집에서 300m 떨어진 산 중턱에 토종돼지 1000마리를 키우는 농장을 운영했다. 한 해 수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4대강 사업 영주댐 건설현장이다. 그의 집에 남은 돼지는 11마리다.

정씨는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생계대책도 마련해주지 않아, 막막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갑작스러운 영주댐 건설 발표 이후, 정씨 부부의 삶은 파탄 났다. 정씨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아내 송씨는 천식에 걸렸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에 있는 정씨 부부의 집을 방문한 것은 오전 11시. 그의 집을 떠난 것은 오후 6시였다. 대기업 유통업체와 계약을 앞뒀던 한 양돈 농가가 거실에서 돼지와 함께 살게 되기까지 2년의 사연을 듣기에는 인터뷰 시간이 너무 짧았다.

짧은 행복과 갑작스러운 4대강 사업... "벼락을 맞았다"

정씨 부부가 농장에서 돼지를 키우게 된 것은 2007년 11월의 일이다. 부부는 대전에서 영어회화학원을 운영하는 등 사업을 하다 10억이 넘는 빚을 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터였다. 경북 영주로 와서 그가 택한 것은 양돈이었다. 안동농림대, 진주농림대학, 단국대 농과대학을 거쳐 농협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정씨는 "자신 있었다"고 했다.

2005년 1월 한 축산연구원에서 유전자를 복원한 토종돼지 다섯 마리를 어렵게 얻어왔다. 돼지 농장을 짓는 것은 주민들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 2년 지나서야 금광리에 있는 돼지 농장을 임대할 수 있었다. 2009년에는 돼지가 1000마리까지 불어났다.

토종돼지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쇄도했다. 1마리 당 최소 45만 원에 팔려나갔다. 한 대기업 유통업체와 납품 계약을 맺기로 했지만, 요구하는 물량을 댈 수 없어 포기했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 다른 농장 3군데에 토종돼지를 분양했고, 상표 등록까지 했다. 정씨는 "연간 수익만 3억~4억 원이었다"며 "조금씩 빚을 갚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정기철(50)씨가 돼지 농장이 있었던 현재의 영주댐 건설 사업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정기철(50)씨가 돼지 농장이 있었던 현재의 영주댐 건설 사업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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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9년 6월 4대강 사업 영주댐 건설 발표가 났다. 농장은 댐 건설 시설부지에 포함됐고, 그의 집까지 수몰된다고 했다. 정씨는 "마을주민들은 '로또 맞았다'고 보상을 반겼지만, 내게는 벼락이 떨어진 거였다"며 "돼지 농장 허가를 받는 게 불가능해 양돈을 포기하라는 소리와 같았다, 토종돼지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질지도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은 '속도전'이었다. 같은 해 12월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농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발파 작업이 진행됐다. 천지가 흔들렸다. 돼지농장 앞 도로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대형 덤프트럭이 '쿵쾅'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미 돼지들이 유산을 하기 시작했다.

억울한 보상 하소연에 "법대로 하라"던 수자원공사

부부는 2010년 2월 한국수자원공사 영주댐건설단 보상팀의 실태조사 후, 돼지들을 경북 예천의 농장으로 이전하거나 팔았다. 4월 수자원공사가 보낸 보상협의서를 받은 부부는 충격을 받았다. 돼지에 대한 보상금이 6181만 원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정씨의 말이다.

"45만 원에 판매되는 돼지가 950마리 있었다. 단순 계산해도 돼지 가격만 4억 원을 훌쩍 넘겼다. 사업 기회 포기나 폐업에 대한 보상은 차치하더라도, 돼지에 대한 보상금이 터무니없었다. 보상팀에 구체적인 평가가격 산출 근거를 요구했지만, 내 말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정씨가 대전 수자원공사 본사 감사실 등에 민원서를 제출한 끝에 4개월만인 같은 해 8월 감정평가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씨는 "계산 방법이 엉터리였다"며 "보상금액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미돼지 숫자와 어미돼지 1마리당 새끼돼지 숫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보상비용을 1/10로 축소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의 확인 결과, 감정평가서에서 부부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이전하거나 판매한 돼지 숫자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업시행으로 인해 이전에 앞서 가축을 팔 경우, 손실 보상에 해당된다. 수자원공사 내부문건에도 감정평가사들이 정씨 부부의 돼지를 숫자를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보상이 잘못됐다고 항의했지만, 수자원공사에서는 '법대로 하라'는 말만 했다. 4대강 사업을 위한 토지 수용에만 신경 썼지,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이 사람을 위한 것 아니었나."

정기철(50)·송정민(40) 부부의 집 거실에는 돼지가 산다.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의 모습이다.
 정기철(50)·송정민(40) 부부의 집 거실에는 돼지가 산다.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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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주인은 농장 땅에 대한 보상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농장 부지에는 댐 건설을 위한 거대한 레미콘 공장 등 시공설비가 들어섰다. 정씨는 남은 돼지를 헐값에 팔았고, 새끼돼지 4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부부는 2009년 가을 대구 동화사와 영주 부석사에서 엿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지만, 한철 장사였다.

정씨는 국토해양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보상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고, 2011년 4월 감정평가협회를 통한 재검토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내 식구 감싸기 탓에, 감정평가협회는 검토를 미루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행정심판을 통해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기약은 없다.

"공정한 사회라면서 모든 걸 빼앗아 갔다"

정씨는 3월부터 영주댐 시공사인 삼성물산의 협력업체에서 인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잡부로, 신호수부터 나무 자르는 일까지 다 했다. 일당 7만 원을 받았다. 보상이 나올 때까지 부부에게는 유일한 생계대책이었다. 하지만 4개월도 못돼 일을 그만둬야 했다. 그는 "삼성물산 괘씸죄에 걸려 쫓겨났다"고 말했다.

발단은 공사현장 침수였다. 지난 5월 내린 비에, 가물막이 내 수위가 높아져 정씨 부부의 양수기가 침수됐다. 수자원공사와 삼성물산에 양수기 비용과 인건비 등 67만 원의 배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협력업체로부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씨 부부의 상처는 비단 물질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마음의 병도 크다. 부인 송씨는 "마을에서는 보상금 타려고 돼지 농장을 운영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수자원공사와 삼성물산으로부터는 힘없는 사람이라고 온갖 멸시를 다 받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도 조용히 말을 꺼냈다.

"4대강 사업 빨리 하느라 땅 가진 사람들 보상만 해주고, 마을 주민들 생계 대책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 쫓아내면, 먹고 살 방법이 없다. 사람을 위해서 하는 4대강 사업이라는 말은 거짓말 아닌가. 공정한 사회라면서, 모든 걸 빼앗아 갔다. 내년에 마을이 모두 수몰된다. 사실상 파산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수자원공사 "감정평가기관의 책임"
한국수자원공사 영주댐건설단은 정기철씨의 보상 문제와 관련, '감정평가기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건설단은 13일 답변 자료를 통해 "공사는 (돼지의) 이전·처분의 불가피성이 인정되므로 실태조사 수량대로 재평가할 것을 평가기관에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다"며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 사업시행자 의견에서도 동일한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건설단 관계자는 "관련 절차에 따라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며 "감정평가는 감정평가기관의 몫으로, 수자원공사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정씨가 삼성물산 협력업체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과 관련,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며 "양수기 문제와 관련 없이 그 협력업체의 일이 마무리돼 정씨에게 '그만 나오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태그:#4대강 사업, #영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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