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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9일) 윤재윤 춘천지방법원장님과 40여 명의 직원들이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로 여행을 떠나는데, 동행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헐~,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저녁에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퍼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어차피 집에 있어야 어제 과음으로 인해 낮잠을 자거나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릴 게 뻔했다. 화천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법성골에서 출발, 비수구미를 경유해 해산령까지 가는 여행은 후일 관광객들에게 답사권유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찍히는 사람보다 찍는 사람의 자세가 멋지다
▲ 카페리 선상에서 사진촬영 찍히는 사람보다 찍는 사람의 자세가 멋지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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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에 얽힌 이야기들

화천군청 청사 앞에서 일행과 합류해 일정을 협의했다. 먼저 구만리 뱃터에서 하차해 빈 버스는 해산령으로 보낸 후, 1시간여 동안 카페리를 타고 법성포에서 내려 비수구미까지 걸어가서 중식을 먹고, 다시 비수구미에서 해산령까지 산행한 뒤 그곳에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안동포를 돌아나오는 일정이다.

카페리 선상에서 바라보는 파로호는 볼 때마다 새로운 정취를 연출한다. 지금과 같은 초여름에는 어느 동남아 국가에서 열대림을 끼고 도는 호수를 연상케 하고, 가을 물속에 비친 단풍은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낸다.

"좌측에 보이는 섬이 다람쥐섬인데요. 왜 다람쥐섬이라고 이름을 붙였냐 하면, 1970년대 애완용으로 다람쥐를 일본에 수출을 했답니다. 그래서 화천군에서도 외화를 벌어보자는 생각에 많은 다람쥐를 생포했는데, 보관할 곳이 없어 이곳 섬에 임시를 보관했대요. 그런데 그해에 심한 가뭄이 들어 섬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다람쥐가 모두 탈출했다 하여 그 이후로 이 섬이 다람쥐섬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용백 선장의 착한 설명 또한 파로호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가끔씩 강변 옆에 듬성듬성 보이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육로가 없기 때문에 오직 배만을 이용해 읍내에 나가 장도 보고 사람도 만난다. 다시 말해서 이곳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자가용 배가 한 척 있고, 뱃터에서 읍내에 나가기 위한 차량도 한 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간혹 어가(魚家)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몇 년 전 화천군에서 토속어종 증식 차원에서 많은 어가들로부터 어업권을 모두 사들였다. 따라서 지금 파로호에서 낚시는 허용이 되지만 정치망이나 그물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금지되고 있다.

다람쥐섬
 다람쥐섬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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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지금에 와서야 토속어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2000년대 초 북한에서 임남댐(금강산댐)을 막기 전까지만 해도 파로호는 민물새우, 잉어, 쏘가리, 메기, 뱀장어, 빠가사리 등 그야말로 토속어종의 보고(寶庫)였다. 그런데 북한에서 금강산댐 건설과 동시에 북한강 줄기를 동해안으로 돌려버렸다.

파로호로 유입되는 수량이 적어져 물고임 현상이 장기화됨에 따라 수생환경의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수생환경 적응력이 강한 배스 등 외래어종의 증가의 원인이 되고, 상대적으로 토속어종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에 군은 매년 배스퇴치를 위한 수매(kg당 5천원 보상)사업 추진과 동시에 매년 수십만 마리의 토속어종 방류를 하고 있다.

법성포~비수구미~해산령 길의 운치

우측으로는 파로호 풍경이 그윽하다
▲ 법성포~비수구미 길 우측으로는 파로호 풍경이 그윽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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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캔맥주를 앞에 놓고, 동행한 춘천지방법원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시간여 걸려 도착한 곳은 법성포(법성골). 왜 이곳을 법성포라 불리는지 정확한 유래는 없다. 단지 1944년 일제에 의해 화천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곳에 간동면사무소(현재는 유촌리에 위치)가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상당한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었고, 상류에 법성포라는 자연부락이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법성포에 내린 우리는 법성포와 비수구미를 잇는 임도를 따라 트래킹을 시작했다. 파로호를 끼고 길이 만들어진 여건 때문에 제주의 올레길을 걷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망초, 고사리 밭, 드릅나무 밭을 지나 조그만 개울을 건너길 수차례 길옆에 빨갛게 익기 시작하는 산딸기의 유혹도 떨쳐 버리자. 다람쥐의 식량이고 산새들의 식량일 산딸기를 우리가 따먹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법성포에서 비수구미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농가
▲ 법성포 법성포에서 비수구미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농가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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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의 강행군 끝에 도착한 곳은 비수구미. 9개의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하여 또는 물이 날아 다니는 곳이 9군데가 존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컨대, 수몰 전 이곳에 아홉 개에 이르는 아름다운 폭포가 있었던 듯싶다. 또 이곳 비수구미에서 얼마 전 황장금표 표식의 돌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임금의 관을 만들 소나무를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이 깊은 산속에서 한양까지 소나무를 운반했을까! 화천댐과 춘천댐 그리고 의암댐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 이곳은 강보다는 큰 개울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물줄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뗏목을 만들어 황장목을 운반하고, 땟목 또는 쪽배에 땔감을 한가득 싣고 한양(마포나루)으로 올라가 옷가지 등 생활용품을 바꾸어 왔다.

그래서 오는 7월 31일 화천쪽배축제 개막식에서 공연되는 '냉경지 소금배 오는 날'이란 작품이 만들어졌다. 옛날 산속마을에는 소금이 귀하던 터라 냉경지(화천읍)에 소금배가 오는 날은 그야말로 대단한 환영잔치가 열렸음직하다.

계곡속에는 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산다
▲ 비수구미 계곡속에는 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산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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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게 했던, 배가 아니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이곳 비수구미에는 장만동씨를 비롯해 4가구가 모여 산다. 이곳 사람들은 봄에 산나물을 채취해 상품화해 인터넷 또는 전화주문에 의해 판매를 하거나 오지트래킹 관광객을 대상으로 식사나 민박을 제공하며 산다.

우리가 미리 예약한 음식은 산채비빔밥. 산채비빔밥은 산골마을답게 종류도 다양한 많은 산채가 반찬으로 나온다는 데 놀랐다. 여기에 미리 준비한 막걸리의 감칠맛이 더하다고 느껴지는 건 법성포에서 이곳까지 4km의 산길 트래킹에 따른 시장기 때문은 아닐런지. 식사 중 도란도란 이야기라도 나올 만도 한데 산채비빔밥의 맛에 매료된 우리 일행 40명은 산채비빔밥의 독특한 맛에 할말을 잊었는지 오직 먹는 데만 열중한다.

인터넷을 통해 날개 달린듯 팔려 나간다.
▲ 비수구미 된장 인터넷을 통해 날개 달린듯 팔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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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해산령을 향해 출발하는 우리에게 식당주인인 장만동씨는 해산령까지 6km 정도의 거리이나 계속되는 오르막길로 천천히 걸으면 2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까짓 2시간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라는 생각과 함께 일행들 사진 촬영을 위해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면서 초반엔 꽤나 분주하게 걸었다.

발을 담그고 5분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차가움에 물고기라고는 열목어만 서식한다는 계곡물은 비가 온 후여서 그런지 깨끗함과 신선함을 넘어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의 찬 공기를 만들어 우리를 반긴다.

1시간 정도 행군 중 윤재윤 법원장이 "무거운데 가방에 있는 것 비우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하며 음식을 펼쳤는데, 막걸리, 소주, 양주 등의 주류와 오이, 과일들로 수북했다. "역시 산에서 마시는 술은 취하질 않는다니까"라는 윤 법원장의 말이 그럴듯해 주는 대로 사양하지 않고 들이켰다.

비수구미 맑은 물, 그 시원함에 세상 시름을 잊었다.
 비수구미 맑은 물, 그 시원함에 세상 시름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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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후의 출발, 한동안 앞장서 걷다가 보니 법원장 일행 그룹이 나를 추월한다. 지쳐 보이는 게 싫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척하며 먼저 앞질러 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우리 일행인 아가씨 그룹이 자연스럽게 나를 앞질러 간다. '어쭈~' 그리고 이어 아줌마 부대에게도 추월당하고, 뒤에 이젠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져버렸다. 다리는 쥐가 나고 머리가 몽롱해지자 길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아 대자로 누워버렸다.

'어제 그렇게 떡이 되도록 퍼마셨으면 아까 막걸리와 양주, 소주를 섞어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라는 후회를 할 틈도 없이 잠시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주머니 속의 전화기가 진동을 한다.

이놈의 저질체력, 모든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 갔다.
 이놈의 저질체력, 모든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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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장님! 어디세요? 다들 도착했는데. 제가 모시러 내려갈까요?"

안내를 위해 동행한 직원인 김근용씨의 걱정스런 목소리. "말이지, 나 죽어도 못 걷겠는데, 좀 쉬었다가 어떻게든 갈 테니까 내 걱정 말고 손님들 모시고 예정 일정은 니가 알아서 추진해라"라고 말하고 다시 눕자마자 또 전화가 왔다.

"법원장님이 계장님 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신대요. 빨리 오셔야겠어요."
'아! 이 시키가 아군이야 적군이야! 잘 좀 말해주지.'

기다 걷다를 반복하며 올라가고 있는데, 걱정이 되었는지 근용씨가 내려온다.

"아직 멀었냐?"
"이제 100미터 남았어요.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평소 운동 좀 하시라니까"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수영장에 다닌다는 이 시키가 핀잔을 준다. 어렵게 기어 올라온 1190m 높이에 있는 해산령 표지석이 이토록 반가울 수 있다니!

해산령, 남들은 비수구미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달하는 거리를 2시간 10분에야 도착했다.
 해산령, 남들은 비수구미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달하는 거리를 2시간 10분에야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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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에 취한 저질해설... 그 대가로 받은 선물

"여러분께서는 오늘 말도 안 되는 현상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무슨 안내 가이드가 퍼져서 개개질 않나. 대단히 죄송합니다."

버스에 올라 정중히 사과를 했는데 박수는 왜 치는 건지. "쪽팔리니까 박수는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나서 '15분 정도 가면 평화의댐에 도착하고, 이어 20여 분 가면 안동포가 나오고'라는 안내 맨트를 해야 하는데, 관광안내고 뭐고 버스좌석에 퍼질러 않아 어제 마신 술기운과 트래킹 중에 마신 혼합주의 위력을 빌어 그야말로 저질해설을 했다. 어렵게 묻는 말에만 답하며 도착한 안동철교. 이곳은 참 할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안동철교에서 바라본 양화대, 이곳에 서식하는 황쏘가리만이 천연기념물이다.
 안동철교에서 바라본 양화대, 이곳에 서식하는 황쏘가리만이 천연기념물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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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지금 민통선 안에 들어와 계시고, 이곳이 안동철교라는 곳인데, '화천에 웬 안동?'이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을 드린다면, 옛날 파로호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서 한양 마포로 가는 포구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구요. 여러분들이 평화의댐에서 이곳까지 오시는 구간이 동서녹색자전거 도로가 건설되는 장소입니다.

또 아래쪽에 보이는 강이 얼마 전에 천연기념물로 황쏘가리가 지정된 곳인데, 다시 말해서 아무 곳에나 서식하는 황쏘가리가 천연기념물은 아니고 오직 이곳에 사는 녀석들만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북쪽으로 보이는 넓은 지역은 화천군에서 사파리 공원을 조성할 장소입니다."

"사파리라면 사자나 호랑이 그런 동물들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구요. 산양이나 고라니, 멧돼지, 사향노루, 노루 등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계획 중인데 해마다 저곳에 뚱딴지(돼지감자)를 심어서 동물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야생동물들이 많이 찾도록 유도해나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백암산프로젝트(안동철교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백암산에 올라 금강산댐과 평화의댐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안보관광 사업)가 완성되는 3년쯤 뒤에는 여러분들이 사파리 공원을 관람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안동철교, 한국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안동철교, 한국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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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늘의 투어는 화천군청사 앞에서 종료되고 인사를 나누는데, 윤재윤 법원장이 부른다.

"오늘 관광안내 너무 훌륭했고, 멋졌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선물인데, 받으세요."

40여 명의 직원들이 박수를 받으면서도 왠지 미안한 기분이 든 오늘이다. 사무실에 올라와 선물을 펼쳐보니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라는 제목의 윤재윤 법원장이 직접 쓴 책이다. 아마도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철학을 담은 도서인 듯하다. 비록 저질체력과 저질 해설이었지만, 나름 진실했다는 의미로 준 것 같다는 생각에 감사의 인사로 대신한다.


태그:#화천, #파로호, #법성포, #비수구미, #해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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