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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무마다 흠뻑 내린 비에 싱싱한 빛을 발하고 있다.
▲ 퇴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무마다 흠뻑 내린 비에 싱싱한 빛을 발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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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기 개국공신이며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한산군 조영무(趙英茂)가 은퇴하면서 경기도 광주 동쪽에 있는 광동리로 와서 거주를 했다. 말년에 그의 호를 퇴촌(退村)이라 붙여주었는데, 그것이 지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퇴촌', 말 그대로 '물러나서 사는 마을'이다. 어디에서, 세속에서. 지금이야 서울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조영무가 거주를 할 때에는 제법 먼 거리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다리도 없었을 터이니 배를 타고 건너서 남한산성이나 은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터다.

1972년 팔당댐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었으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 50여년이 되었다.
▲ 버드나무 1972년 팔당댐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었으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 50여년이 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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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퇴촌은 1972년 팔당댐이 생기면서 일부 마을이 수몰되었고, 지금까지 상수원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 반향에서 퇴촌시내로 들어가기 전 습지공원 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우측으로 버드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그 전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수몰지구가 되면서 섬이 되어버렸고, 50여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로 보존이 되었던 것이다.

버드나무의 모양새가 제법 멋드러진다.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온 흔적이 보인다.
▲ 버드나무 버드나무의 모양새가 제법 멋드러진다.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온 흔적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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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팔당댐이 생긴 뒤에도 한동안은 지금처럼 아예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억에는 고등학교 1학년(1979년) 때, 친구와 그 근처로 낚시를 왔던 추억이 있으니까 아마도 그 이후에 상수원보호지구로 지정을 하고 철조망을 쳤을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경안천의 물은 1980년대 초반까지 그냥 그 물로 밥을 지어 먹어도 될만큼 깨끗했었다.

그곳은 작지만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 것이다. 온갖 새소리가 지즐거리며 들려온다.
▲ 버드나무 군락지 그곳은 작지만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 것이다. 온갖 새소리가 지즐거리며 들려온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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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날 그곳을 찾았다. 정오가 넘었는데도 물안개가 아스라히 피어오르고, 버드나무의 이파리는 지난 겨울 앙상했던 속내를 온전히 감춰버렸다.

겨울이 오면 이전과는 다른 속내를 보여줄 것이다. 새들이 지즐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그곳은 그들만의 낙원인듯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을수록 자연은 풍성해 지지만, 인간은 자연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대한다.

물안개와 버드나무가 잘 어우러진 날이다.
▲ 퇴촌 물안개와 버드나무가 잘 어우러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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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은 이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을 터이다. 식수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자연은 모두가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유기체적인 연결이 끊어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인간이다. 자연은 오히려 인간이라는 종이 없으면 더 풍성해진다.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인간의 편리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마구 파헤치고, 개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꼭 그렇게 해야만 할 때에도 자연에 미안한 마음으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해야할 것이다.

요즘 우리는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들의 아우성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고, 그들이 난도질 당해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다.

퇴촌 상수원보호지구의 작은 버드나무 군락지, 나는 거기서 작은 희망을 꿈꾼다. 더 풍성해져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품는지를 귀머거리가 된, 장님이 된 우리들의 눈과 귀를 뜨게 해줄 기적이 일어나길 꿈꾼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아 꿀 수 있는 꿈이다.


태그:#퇴촌, #버드나무, #팔당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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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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