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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ne #85, Bongrae-dong 5ga #29, Youngdo-gu, Busan"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70여 일 동안 농성중인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씨는 지난 1일 미국으로부터 온 소포 하나를 받았다. 소포 안에는 미국판 '쥐벽서 티셔츠', 자외선차단 립스틱, 그리고 다크초콜릿 등 간식이 정성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미국 텍사스 주에 살고 있는 주부 김상륜(36)씨가 보낸 소포다. 김씨는 우연히 85호 크레인에 우편물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트윗을 통해 김진숙씨에게 확인도 했다. 그는 "희망비행기는 못 띄우지만 자그마한 희망소포 비행기에 태워 보낼게요!"라는 글을 트윗에 올린 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실행에 옮겼다.

 

한 트위터리안(@Multicyde)은 "날라리외국세력 김상륜님 활동의 끝은 어디십니까?"라며 응원했다. 김진숙씨도 "멀리서 따뜻이 지켜봐주시고 이렇게 큰 힘 주셔서 뭐라 감사드려야할지... 잘 먹고 건강하게 지키는 걸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김씨가 소포를 보낸다는 소식을 접한 뉴욕, 뉴저지, 워싱턴, 시애틀 등 미주 지역과 뉴질랜드 등에서 김진숙씨에 대한 한국 교민들의 응원메시지가 쇄도했다. 김씨는 이들의 응원 메시가 담긴 편지와 배지, 치실, 견과류 등을 담아 지난 1일 85호 크레인 앞으로 두 번째 '희망 소포'를 띄웠다. 하지만 2차 소포는 85호 크레인까지 올라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제지는 물론 강제 진압 소식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날라리외국세력'이 85호 크레인에 '쥐벽서 티셔츠' 보낸 까닭은?

 

김상륜씨는 26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토론모임 '조국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미주한인들'의 운영자다. 그가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2년 전부터 미국에서 국내 악덕기업 등에 대한 소비자 불매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특히 삼성불매 스티커 2000장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 중이다.

 

김씨는 2일(현지 시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백혈병으로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 가는데도 자기들만의 이득을 취하려는 삼성 등 대기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물론 저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힘들게 싸우고 계시는 김진숙씨를 보면서 '저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저기에 올라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돕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불매 운동 외에도 홍익대 청소노동자 후원금 모금, 쌍용차 노조 후원금 모금, 4대강 반대 서명 운동 등을 벌여왔다. 김씨는 또 지난 5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혐의로 벌금을 물게 된 박정수씨 등을 돕기 위해 미국판 '쥐벽서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배우 김여진씨의 지지모임인 '날라리 외부세력'이 먼저 '쥐벽서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했고, 이 때문에 김씨는 '날라리 외국세력'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김씨는 "대기업의 횡포나 집회·결사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 등을 보면 한국이 옛날보다 그렇게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며 "멀리서나마 인권이 유린당하는 한국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던 차에 김진숙씨를 보면서 정작 죄를 지은 사람은 떵떵거리고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만 고통을 받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가 김진숙씨와 함께 크레인에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라도 '우리 역시 당신과 똑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소포의 내용물과 관련 "가장 걱정되는 것이 김진숙씨의 건강이지만 다른 음식은 상할 수 있어서 열량이 높은 다크초콜릿과 견과류 등을 담았다"며 "같은 여자로서 피부를 보호해 드리고 싶은데 화장품을 보낼 수가 없어서 자외선차단 립스틱만 넣었다"고 설명했다. '쥐벽서 티셔츠'를 소포에 담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구하기 힘은 티셔츠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연대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특히 힘든 시간이지만 잠시나마 웃음을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응원 메시지를 보내온 안드레아씨는 "한국에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희망버스에 오르고 싶다"는 심정을 2차 소포 안에 담긴 편지에 적었다. 뉴저지 주에 살고 있는 이수(Su Lee)씨는 "제 아이들이 달라진 세상에서 더 밝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 대신 그 위에 올라선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얼마 전 어떤 건물이 공사를 하는지 큰 크레인 트럭 하나가 와서 서 있었어요. 지나다 그 아래에 멈추어 한참 동안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한 20m나 될까요? 그 아래에 서서 한참을 오려다 보았습니다.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 때문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어떤 마음으로 쇠줄을 끊고 그 위에 올라가셨을까요?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으로 그 아래 세상을 바라보고 계실까요?… 소금꽃 당신,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김상륜씨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두 번째 소포는 전해질지 불확실하여 편지사진 올립니다"라며 "지구 반대편에서도 많은 이들이 간절히, 진숙님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음만 꼭 봐주셔요. 우리가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국제노동기구 등에 한진중공업 사태 서한 발송... "UN 방문 시위 할까?"

 

한편 '조국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미주한인들'은 지난달 중순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 세계산업노동자조합(IWW),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등 국제 노조기구와 사회단체는 물론 뉴욕타임즈와 CNN 등 미국 언론 등에 연대요청 서한을 발송하고 있다. 이들은 UN을 직접 방문해 한진중공업 사태를 알리는 영문서한을 전달하는 계획도 세웠다.

 

김씨는 "쌍용차 노조 파업 지원 모금 당시와 달리 지금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진행돼 그저 지켜보면서 응원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일부 회원들은 릴레이 피켓 시위나 유엔 방문 시위를 하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태그:#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김진숙, #미국 소포,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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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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