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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조중동방송이 직접 광고영업 금지를 포함하는 미디어렙 제정과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철회를 촉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조중동방송이 직접 광고영업 금지를 포함하는 미디어렙 제정과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철회를 촉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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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왜 이러고 계신 거죠?"

지난달 30일 낮 한창 인터뷰 중인 이강택(50)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에게 한 외국인 여성 관광객이 말을 걸었다.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대로변에 대형 현수막과 간이 천막을 쳐놓고 단식 농성을 벌이는 광경이 꽤 낯설었던 모양이다. 이 위원장이 농성 취지를 설명했지만 그보다는 8일째 단식중이란 사실에 더 놀라는 표정이었다.

단식 농성 8일... "수신료 인상 막고 싸울 수 있다는 확신 생겨"

이 위원장은 KBS 수신료 인상 저지와 '조중동매' 종편(종합편성채널)의 직접 광고 영업을 막을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제도)법안 처리를 위해 지난달 23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단식은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한 끼도 굶어본 적이 없거든요. 1시간만 늦게 먹어도 안 되는 사람인데 단식 한다니까 집사람이 코웃음부터 치더라고요. 5~6일째가 가장 힘들었는데 이제 고비는 넘겼어요. 해보니 무난하네요."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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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담은 미소를 보이긴 했지만 연일 장대비가 퍼붓는 가운데 죽염과 물에만 의존해 언론노조 투쟁 현장을 누비느라 늘 긴장한 탓인지 지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농성장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악수를 청하는 언론계 선후배나 지인들의 '길거리 응원'은 큰 힘이 됐다. 덕분에 이 위원장은 생애 첫 단식을 무사히 마쳤다. 이날 6월 국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무산되자 언론노조 비상대표자회의에서 단식 중단을 요청한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어 최후 수단으로 하는 단식은 아니었어요. 투쟁 강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 것이죠. 아쉬운 점은 많지만 소기의 목적은 거뒀다고 봐요. 단식 전에는 상황이 많이 안 좋았거든요."

4.27재보선 승리 이후 야당과 진보진영이 느슨해진 반면 정부는 6월 3일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계기로 진영을 갖췄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조선> 출신 김효재 정무수석, <중앙> 출신 김두우 홍보수석, <동아> 출신 이동관 언론특보 등 '조중동' 출신 3인방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언론과 핫라인 체계를 갖췄다. 급기야 지난 20일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수신료 날치기 처리도 '조중동'을 위해 미디어렙법안을 가라앉히는 시나리오를 짠 거예요. 상황은 긴급하고 우리 쪽은 싸울 준비가 안 돼 있어 긴박성을 알리는 데 내 몸부터 바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단식을 시작했어요."

이 위원장 단식을 시작으로 언론노조는 지난달 27일 '끝장투쟁' 결의대회, 28일 한나라당 지역당사 및 지역구 규탄대회, 한나라당 원내대표 항의방문 등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덕분에 싸움이 힘들 거 같으니까 협상하자는 안이한 판단이 확실히 없어졌어요. 싸워야 하고 싸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전까지 집회 거의 못 하고 모여야 200명 정도 모였는데 요즘엔 최소 700~800명씩 모여 다들 놀라요. 한나라당 문방위 의원 지구당사 앞 집회도 위력을 발휘했고 대중 이해시키는 방법도 개발했어요. 6월 싸움 준비 안 된 채 시작했지만 마지막에 제대로 싸웠어요. 이제는 승산 있다고 생각해요."

"KBS 공영방송 본분 망각... 수신료 인상 요구 염치없어"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공정성 전제없는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공정성 전제없는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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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을 앞세운 언론노조의 투쟁은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문방위 의장석 점거로 이어졌고 마침내 6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KBS는 큰 생채기를 남겼다. KBS와 일부 국회 출입 기자들이 보여준 무리한 행태는 급기야 민주당 비공개 회의 '도청 의혹'으로 이어져 야당과 시민단체의 비판에 직면했다. KBS 프로듀서이면서 수신료 저지 선봉에 선 이 위원장의 심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죄송하고 참담합니다. 저도 20년 이상 몸담았고 지금도 몸담고 있는데 이 지경까지 이르렀네요. 사실이라는 전제로 지금 도청 사안은 그동안 의원 겁박 행태나 갖가지 기자 로비 행태 연장선에 있는 극단적 행태예요. 그동안 공영방송의 본분을 망각하고 백선엽 특집 등 특정 집단의 선전 도구화되는 데 무감각해지고 정권의 방송 장악 행위들과 온갖 징계에 제대로 저항하지 않은 게 배경에 깔려 있어요.

결국 자사 이기주의와 맞물려 극단으로 간 거죠. 이대로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면서 수신료 인상을 요구한다는 건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거예요. (수신료 관련) 심야토론을 급조한 것도 눈 앞의 경제 이해 때문에 공적 책무를 도외시한 거죠. 이 모든 게 KBS가 근본적인 수술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방증이에요."

KBS 안에서 수신료 인상에 동조하는 KBS노동조합(옛 노조)과 인상에 앞서 공영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KBS지부(새 노조) 사이에 갈등이 첨예하다.

"김인규 사장이 수신료 인상을 내세우며 국회 취재 라인을 자기 인맥으로 바꿨어요. 새노조가 저항하고 있지만 다수가 묵인하거나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어요. 소극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는 공영방송 모습에서 이탈했다는 걸 잘 보여줘요. KBS가 갈 길이 멀다는 걸 제대로 웅변해줬어요."

지난 1990년 KBS에 입사한 뒤 1992년 KBS 노조 홍보국장으로 노동 운동과 인연을 맺은 이 위원장은 <시사투나잇> CP에 이어 'KBS 스페셜'에서 한미FTA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언론노조 파견 문제로 옛 노조와 갈등을 빚었고 KBS 사원행동과 새 노조 출범에 앞장서며 사측과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적인 부담은 있지만 KBS는 국민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수신료로 운영되니 제 고용주는 국민이죠. 당연히 국민 명령에 충실해야 하고 대의에 어긋나는 건 용납 못해요. KBS 내부에 저에 관한 오해가 많은데 한 사람씩 붙들고 설득하고 싶어요. KBS가 정도를 안 걸으면 공영방송은 파멸의 길로 간다는 걸 조만간 깨달을 거예요."

"조중동 직접 영업 허용하면 방송광고시장 난장판 될 것"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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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KBS 수신료 인상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조중동' 종편의 직접 광고 영업을 막는 '미디어렙법안'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이 위원장은 "전체적으로 무승부"라고 평가하면서도 승산 있는 싸움임을 강조했다.  

'미디어렙'이란 방송광고판매를 대행하는 기관으로 그동안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지상파 방송광고를 독점해 오다 헌재 위헌 판결로 복수 체제를 허용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올해 연말 개국을 앞둔 종편도 미디어렙 체제에 포함시킬지 여부다. 현행 방송법대로라면 종편도 다른 케이블 채널과 마찬가지로 직접 광고 영업을 할 수 있다.

"직접 광고 영업으로 광고주 기업과 방송사가 직접 연결되면 다양한 유착과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조중동이 부동산 광고 내고도 부동산 하락 실상 제대로 전달하나요. 또 사소한 혐의를 부풀려 기업 옥죄는 기사 써 광고를 유치하기도 하죠. 광고주 때문에 진실된 보도 할 수 있나요. 노동자 시위하면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종편 직접 광고 영업의 더 큰 폐해는 취약 매체를 고사시키고 미디어 공공성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케이블 전문채널들과 달리 시사, 교양, 오락, 보도를 아우르는 데다 '의무재전송' 덕에 전국 80% 시청자를 확보한 종편의 파괴력은 지상파 방송 못지않다는 것이다. 

"우리 방송광고시장은 2조 원이 채 안되는데 종편 1사당 1200억 원씩 5000억 원을 기존 매체에서 빼앗아 가야 해요. 결국 종교 방송, 라디오 방송 등 취약 매체들이 생존 위기에 몰려 여론 다양성을 해칠 수밖에 없어요. 종편이 더 커지면 지상파조차도 자유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방송광고시장은 약육강식 난장판으로 변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상업주의, 선정성 문제도 발생해 결국 방송 공공성이 토대부터 허물어지는 거죠."

하지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신생매체인 종편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방송법에 포함된 의무재전송과 광고 직접 영업 허용은 물론, '황금채널' 배정 역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법의 맹점을 악용하고 있는 거예요. 2000년 방송법 규정 목적은 독립제작사 진흥과 지역 콘텐츠 육성 차원이란 공적 책임 때문인데 조중동은 사익집단이자 여론 독과점 집단에 불과해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만든다며 독립적 소수 매체 키우려 만든 혜택을 몰아주고 있는 거죠. 마치 8톤 덤프트럭을 티코에 비유해 전용 차로를 내주고 터널 통행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건데 그런 교통 정책이 과연 제 정신인가요.

결국 조중동을 키워 정권 연장시키겠다는 거예요. 수신료 인상과 함께 방송판을 관영 블록과 조중동 등 상업 블록으로 재편하려는 거죠. 전두환이 노골적으로 언론 통폐합했다 시민 저항으로 무너졌지만 현 정부는 의회 다수 의석과 자본의 힘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재편하려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다시 민주 정부를 세울 가능성은 희박해지는 거죠."

"갈라진 언론시민단체, 종편 특혜 저지에 힘 합칠 것"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이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조중동방송의 직접 광고영업 금지를 포함하는 미디어렙 제정과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철회를 촉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이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조중동방송의 직접 광고영업 금지를 포함하는 미디어렙 제정과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철회를 촉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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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은 지난 2월 종편 직접 광고 영업 금지 등 종편 특혜 저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6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당선했다. 이 위원장 취임 이후 언론운동진영에서도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사실 그동안 언론시민운동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진영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진영으로 갈라져 종편 특혜 저지와 수신료 인상 저지 투쟁을 각각 따로 진행해 왔다. 하지만 MBC 'PD수첩' 탄압에 맞서 지난 3월 출범한 'PD수첩 사수와 언론자유 수호 공동대책위원회'(PD수첩 공대위)에 양쪽 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등 화해의 실마리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전날까지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이 이 위원장 단식에 동참했고 이날은 정연우 민언련 대표가 농성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제 임기 이후 통합 기운이 생겨나고 있어요. 'PD수첩 공대위'에 두 단체가 함께 하고 이번 싸움도 공동으로 하는 등 실천적 차원에서 함께하는 게 늘고 있어요. 이전처럼 차이가 벌어지는 추세는 역전됐고 단결 기운이 만들어져 하반기엔 적극적 행보를 띨 거예요. 8월초 종편 특혜 저지 범국민 행동 결성을 생각하는데 두 단체가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진보정당도 통합하고 야권연대 하는데 언론 운동도 당연히 합쳐져야죠. 분열의 싹이 될 만한, 서로 공감 안 되는 인사 추천도 하지 않을 거예요."

"9월이 마지노선... 입법 안되면 극단적 수단도 강구"

단식은 6월 30일로 끝났지만 이 위원장과 언론노조의 본격적인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날 오후 언론노조에서 열린 비상대표자회의에선 총파업 등 향후 투쟁 일정을 논의하는 한편 미디어렙법안 통과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촉구했다.   

"총파업은 지도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 결의가 중요해요. 다행히 조합원 호응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요. 생존과 직접 관계되기도 하고 진정한 언론인으로 남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지난 2008년 총파업 연장선에서 2차 미디어악법 투쟁의 서막입니다.

종편이 광고를 본격화할 9월이 마지노선이에요. 7-8월 국회 문방위 위원 지역구 집회와 함께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렙법안 통과를 요구할 계획이에요. 총파업 결행 시점도 9월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입법이 안 된다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거예요. 생산직 노조만 하는 극단적 방법을 우리라고 못할 것 없죠."


태그:#수신료, #이강택, #종편,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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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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