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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에 다녀왔습니다. '죽녹원(竹錄苑)'에서 목도한 죽순은 가던 걸음을 멈춰 서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의 큰 죽순들이 서로 키 재기라도 하듯 앞 다투어,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 그대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대나무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시사철 푸른 자태와 청량감, 꼿꼿하게 자라는 올곧음, 튼실한 외면과 비어있는 내면의 조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강인함, 혼자 서 있기보다 함께 어울려 숲을 이룰 줄 아는 넉넉함...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대나무를 사군자의 하나로 보고 흠모했으며, 대쪽 같은 성품의 선비가 되고자 노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듯 엄밀하게 말하면 대나무는 나무가 아닙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외떡잎식물인 풀이라고 합니다. 나무 같지만 사실 나무라고 하기에는 나이테도 없고, 1년 동안 줄기가 다 자라는 등 풀에 가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그럼에도 굳이 나무라고 하는 것은 그 크기와 단단함 때문입니다. 풀은 일반적으로 잎이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줄기가 시들어 바로 죽습니다. 물론 여러해살이풀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줄기는 시들어 죽고, 뿌리만 남아서 겨울을 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여러 해가 지나도 이파리와 줄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풀과 나무의 속성을 다 갖추고 있어,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물론 대나무를 '풀과 나무의 중간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풀이 나무로 거듭난 기적의 식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 애벌레인데 얼마 후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분명 풀인데 풀에 안주하지 않고 누가 봐도 멋진 나무로 살고 있는 대나무에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대나무를 보면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못난 자를 들어 잘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늘의 크고 비밀한 섭리"을 읽습니다.

 

대나무는 또 다른 신비를 간직한 식물입니다. 듣자 하니, 대나무는 종자를 심고 몇 년이 지나도 싹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해, 또 한 해를 죽순이 돋기만을 기다리며 공들여도 좀처럼 움이 트지 않았을 때, 대나무씨앗을 심은 사람의 마음은 애가 타다 못해 "에이, 틀렸구나" 싶어 포기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에! 심은 지 5년째가 되는 해에 비로소 죽순이 돋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죽순이 나온 날로부터 석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크기가 무려 16미터에서 25미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경이적인 성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장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하루에 1m 이상 자라기도 한다니,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처럼, 대나무는 4년 동안 놀고 있거나 잠자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섬유질의 뿌리 구조를 형성하여 땅속으로 깊고 넓게 퍼져 나간 것이지요. 다시 말해 땅속에서 쉬지 않고 눈부신 성장을 위한 준비와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5년째를 맞이한 대나무는 땅속줄기인 지하경의 마디에 있는 곁눈을 부풀려 지상으로 화살을 쏘듯 전봇대처럼 높이 솟아 오른 것입니다. 마치 매매유충이 오랜 땅속생활을 끝내고 매미로 우화하여 맴맴맴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 현대인들은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무엇이든지 금방 승부를 보려합니다. 조급합니다. 속성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다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세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대나무 숲을 천천히 거닐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조바심내고 쉽사리 포기했던 우리들의 성급함을 보게 됩니다.

 

대나무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 그리고 힘찬 용솟음... 뜻을 세웠으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장애와 시련이 와도, 질진 사람이 이긴다는 속설처럼,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한 우물을 파는 자세로 내실을 기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1도만 부족해도 물을 끓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나무가 성장하는 이치나 사람이 성장하는 이치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기적과 신화의 식물 대나무'가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장기적 관점에서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마침내 소망하는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오늘을 열심히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도 3년의 공생애를 위해, 30년을 참고 기다리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준비하였습니다.

 


태그:#대나무,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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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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