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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학습부진아를 도와주기 위해 일제고사를 본다고 했지만, 이제 학교에서 일제고사는 시험 점수에 따라 교사와 학생에게 돈과 상품권을 나눠주는 경품행사처럼 변해버렸다. 문제풀이를 시키려고 초등학교조차 0교시, 7, 8교시에 야간자율학습, '놀토' 등교에 심지어 일요일까지 등교시키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습결손으로 누더기가 된 6학년 내용을 4월말-5월초에 속도전으로 가르치고 문제풀이에 들어갔다. 충북 영동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13교시까지 등장해 밤 9시 10분까지 문제풀이를 한다는 지역 교사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교과부가 만든 일제고사 홍보 자료를 보면 학교알리미(정보고시사이트)에 올해부터 일제고사 향상도를 추가발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현장에서는 점수를 올리기 위한 각종 파행이 발생하고 있다.
 교과부가 만든 일제고사 홍보 자료를 보면 학교알리미(정보고시사이트)에 올해부터 일제고사 향상도를 추가발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현장에서는 점수를 올리기 위한 각종 파행이 발생하고 있다.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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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이제는 잦아들 것 같은 일제고사 파행이 이렇게 심각해진 것은 올해부터 교과부가 중학교부터 학교성과급에 일제고사 점수를 포함시키고, 시도교육청 평가 때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일제고사로 학교관리자와 장학사들 점수를 매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학교들이 일제고사 향상도를 공시하게 되어있어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제고사 향상도? 제대로 된 연구는커녕 작년 결과 분석도 못해

일제고사 향상도란 무엇일까? 교과부는 2010년에 최초로 학교정보공시 사이트에 교과별 점수비율을 3단계(보통이상, 기초, 기초미달)로 공시하도록 하였다. 이 사이트에 가면 전국 모든 학교의 일제고사 결과를 아래와 같이 성취수준 등급별 비율로 볼 수 있다.

학교알리미(정보공시 사이트)에 가면 주요공시항목중에 작년도 일제고사 결과가 있습니다. 교과마다 성취수준비율을 올리게 되어있습니다. 올해는 이보다 결과가 잘 나와야만 하므로 학교의 부담이 매우 큽니다.
 학교알리미(정보공시 사이트)에 가면 주요공시항목중에 작년도 일제고사 결과가 있습니다. 교과마다 성취수준비율을 올리게 되어있습니다. 올해는 이보다 결과가 잘 나와야만 하므로 학교의 부담이 매우 큽니다.
ⓒ 학교알리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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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학교별로 향상도 공시를 통해 학교교육의 책무성을 평가하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일제고사 향상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나 교과부에 연구를 얼마나 했고 정책토론회라도 열었나 찾아보았더니 제대로 없고, 연구자 아이디어 수준의 연구물만 파일도 없이 올려져있다.

이번에는 작년도 일제고사 결과 분석 연구를 찾아보았지만 2009년도 것만 찾을 수 있었다. 시험본 지 1년이 지났는데 결과 분석이 없다는 건 일단 교과부와 평가원의 직무유기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교과부는 2010년도 결과 분석도 안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 향상도 평가를 할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나 연구물도 없는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향상도를 공시하겠다고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일제고사 향상도를 잰다는 것이 현실로도 무리가 있지만 학문상으로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공개를 못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일제고사 점수로 학교 책무성을 재고 교장, 교감, 교사 인사에 반영하는 학교가 많은데 합의도 안된 그들만의 기준으로 재려고 할까? 시험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이렇게 연구가 부실한 걸 보면 앞으로 교과부에서 나올 발표를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과정은 엉망, 시험 결과 공개로 책임회피

현장에서는 아마 기초학력미달자 숫자나 교과별 3단계 분포도를 가지고 하지 않겠는가 이야기가 오가지만, 실은 제대로 된 기준이 나올 수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마치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할 때 여러 기준을 이야기하지만 교육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기업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먼저 평가는 교육 과정의 일부다. 평가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려면 평가 대상인 교육과정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어떤가? 초등학생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수준이 높고 양이 많아서 사교육 받지 않고는 따라가기 어렵다.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나온 <교과서를 믿지 마라>는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도 전국의 교실에서 어려운 내용 때문에 학생들이 힘들어하고 교사들은 이를 알면서도 아이들을 재촉해야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교과부는 이렇게 국가교육과정은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그걸로 힘들게 배운 아이들을 시험으로 골라내서 부진아 낙인을 찍고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부실 책임을 지우고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특히 올해 6학년 교육과정은 단군이래 최악의 교육과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중 영어교육과정은 부실 그 자체다. 6학년이 배워야 할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은 3-6학년 영어시간이 주당 1시간씩 늘어나고(주당 2->3시간, 연 34주 기준), 7차 교육과정에서 못배운 파닉스(음철법)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5학년까지 7차로 배우고 올해부터 2008개정영어를 적용받는 상황에서, 이들이 받은 교과서는 2008개정으로 5학년까지 쭉 배웠던 아이들에게 맞는 수준이니 격차가 크다. 시간 수로 보면 102시간(3, 4, 5학년 각 34시간씩)이 부족하고 2008개정영어의 특징인 파닉스도 안 배운 상태다. (관련기사:읽는 법도 안 가르치고 520단어 읽고 써라?)

그런데 5학년 내용(34시간 분량)만 겨우 6시간 보충하고 바로 2008개정교육과정 내용으로 들어가니 사교육 안 받은 학생들은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현재 아이들이 영어교육과정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7차와 2008개정영어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잘 극복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장 조사나 모니터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영어에서 학업성취도를 평가한다니, 대체 무엇을 잰다는 것일까? 과연 그것이 6학년이 도달해야 할 영어 목표라고 누가 인정할 것인가?

둘째, 2010년에 시험을 본 아이들과 2011년에 시험을 본 아이들이 다르다. 어떻게 서로 다른 아이들이 본 시험점수로 비교를 할 수 있을까? 대다수 연구에서 성적비교를 할 때에는 같은 학생이 학년이 올라갔거나 상급학교로 진학한 결과를 비교하는 종단연구이다. 우리 나라는 이런 식으로 점수비교를 해서 향상도를 측정한 사례 자체가 없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다. 국토가 넓어 동시다발적인 표준화검사가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미국 같은 곳에서도 이런 연구에 대해 비판이 많은데 말이다.

점수 거품과 부실 연구로 신뢰할 수 없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09년 일제고사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09년 일제고사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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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분석자료를 보면 2003년부터 시작된 학업성취도 평가(표집)나 2008년부터 강행된 일제고사(전집) 성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영향이다.

2009년 일제고사 점수 분석 결과를 보면 변수는 부모들의 경제 능력과 학력, 문화적 배경 등이다. 점수가 잘 나온 지역은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 순서다. 가정환경은 양부모가정>한부모가정>조손가정 순이다. 결국 지역환경이 좋지 않고 어려서부터 가정과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일제고사 부진아로 낙인받는 비정한 상황이다. 이건 시험 보기 전에도 알고 있었고 현장에서도 늘 절감하는 문제다.

결국 일제고사는 수백 억의 예산을 들여 부모가 잘사느냐, 문제풀이를 얼마나 시켰느냐를 재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뻔한 결과에 최신 평가 이론을 요리조리 적용해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일제고사 결과가 미국에서 배워온 통계이론을 시험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마치 평가 전공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장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네 번째는 2010년의 시험체제와 2011년 시험체제도 다르고 문항수도 다르다. 일제고사는 원래 국가교육과정의 질을 점검하기 위해 표집평가로 만든 것이라 개인의 성취도를 재서는 안되는 시험지였다. 2010년에는 국가교육과정 연구와 학업성취도를 재는 목적으로 절충한다고 하자, 연구진들은 관련 토론회에서 이도 저도 안된다며 반발하였다(2010년 학업성취도평가 개선방안 토론회)

2011년에는 학생 부담을 줄인다며 교과를 국영수로 줄이는 대신 개인학업성취도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본다며 시험 시간과 문항수를 늘렸다. 문항수로만 보면 2009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평가 연구자들은 그래도 문항수가 부족하다고 하였다(2011년 학업성취도평가 개선방안 토론회). 평가문항 숫자나 질로도 갑론을박인데 향상도 측정이 제대로 될까? 현장에서는 일제고사가 학생의 학업성취도나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관계가 없다고 외면하지만 말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 문항수와 시험 성격에 대한 표입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 문항수와 시험 성격에 대한 표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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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교과부는 문항동등도 검사(연도간 문항 난이도 조절 등)를 하고 과학적으로 준비했다고 하겠지만,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작년과 올해 교육과정이 다르다는 것이 다섯 번째 이유다. 2010년까지는 7차교육과정으로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2011년에는 6학년이 2007개정교육과정으로 배우고 있다. 교과부는 교육과정이 바뀌면 전의 내용은 다 나쁘고 새 것이 좋다고 연수하고 그렇게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연수를 한다. 또 교육과정이 바뀌면 교과별로 내용이나 성취기준,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져서 수업에서 얻어내고자 하는 성과도 달라진다. 길러야 할 소양이나 도달할 목표가 달라졌는데 2010년과 2011년 결과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7차 국어교육과정과 2007 개정국어교육과정의 차이점
7차 국어교육과정과 2007개정 국어교육과정에서 내용 구성의 차이는 아래와 같다.

◦ '실제'와 '내용'의 관계(7차): 내용 중심→실제(텍스트 생산․수용 활동) 중심(2007개정)

국어교육과정은 7차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7차에는 내용을 중요하게 보았지만 2007개정교육과정은 실제를 중요하게 본다. 예를 들어 현재 6학년이 배우는  "드라마"를 7차에서 강조하는 내용 중심으로 공부한다면 드라마의 구성요소와 형식,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의 다양한 삶을 비교하고 작품에 반영된 가치나 문화를 찾아 이해하거나 다른 갈래(희곡, 동화 등)로 바꾸는 것을 공부하게 된다.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실제로 한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 전개과정을 감상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된다. 서로 추구하는 목표 자체가 다르므로 수업내용 자체가 다르고 평가내용도 달라진다. 어떻게 이 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더 결정적인 것은 7차에는 "드라마"로 공부하는 것 자체가 없었다. 2007개정교육과정이 시대성을 반영해 매체교육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매채(인형극, 만화영화, 드라마 등)가 국어수업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국어 중에서 한 영역의 내용만 비교하더라도 이렇게 공부하는 방식이나 목표가 달라지는데, 단순하게 일제고사 점수로 학교별 향상도를 측정한다는 것은 무모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2010년 일제고사 점수가 문제풀이수업 등 교육과정 파행에 심지어는 부정행위와 조작결과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2011년 점수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이는 2009년부터 예견된 문제였다. 2010년 학업성취도방안 토론회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전수평가 결과 공개로 일부 지역에서 문제풀이를 연습하고 부정행위가 우려되어 결과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관련기사: 부정행위 우려와 연습시험에 연구자도 걱정)

시험지를 등사해 놓은 것이다. 많은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갱지에 문제지를 복사해 풀게하고 있다. 일제고사 결과는 결국 이런 시험지를 얼마나 풀리고 복습시켰느냐를 재고 있는 셈이다.
 시험지를 등사해 놓은 것이다. 많은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갱지에 문제지를 복사해 풀게하고 있다. 일제고사 결과는 결국 이런 시험지를 얼마나 풀리고 복습시켰느냐를 재고 있는 셈이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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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은 2009년부터 일제고사 점수를 높이기 위해 교육청 차원에서 모든 방안이 동원되고, 심지어 교육청에서 관리자나 업무담당자에게 부정행위를 조장하는 연수를 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충북 제천에서 교사의 부정행위가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둘 중 하나 고르는 데, 힌트만 줬다구요? )인천에서도 부정행위 논란이 일었다.(인천교육청, 일제고사 부정행위 감사 착수) 교과부나 교육청은 일부 사례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공개만 안 되어 있을 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답안지를 고치는 학교도 많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이런 결과 시험 점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는데 올해는 더 올랐는지를 본다니 일선 학교가 어떻게 되겠는가?(공부 못 하는 학생 필요없어요. 전학가시죠? ) 인성교육, 정상수업은 나몰라라 하고 작년보다 더 열심히 문제풀이를 시키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이런 걸 뻔히 알면서도 일제고사 점수로 학교의 책무성을 묻는다는 것은 학문적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교육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아야 할 문제다.

이런 상태에서 교과부가 무리하게 일제고사 향상도를 공시한다면 이는 학교교육과정파행과 문제풀이에 휴일 등교 등 초등학생 잔혹사와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일제고사는 하루빨리 표집으로 전환하고, 무리한 일제고사 향상도 발표 시도는 중단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태그:#일제고사, #일제고사 향상도, #정보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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