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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제법 큰 태풍(메아리)이 온다는 소식에 이런저런 걱정이 앞섭니다. 여기저기 파헤쳐놓지 않은 곳이 없으니 작은 비에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후가 되어 하늘을 보니 쏟아지던 빗줄기가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먹구름이 흘러갑니다.

문득, 너른 들판에 커다란 나무 하나와 먹구름과 바람이 어루러진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곳에 서 있으면 참 좋겠다!'하며 말이지요.

 

 

집을 나섰습니다.

언젠가 내가 점 찍어 두었던 나무가 있던 곳으로 갔지만, 보금자리 주택인가 뭔가를 짓는다고 다 철거를 하고 막아두어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려서부터 뛰어놀던 곳이긴 하지만 걷지 못한 길들도 제법 많은 것입니다.

숲길로 들어서니 아직도 그곳에는 태풍 메아리의 기운이 감돌고 있고, 나뭇잎 사이로 산등성이와 먹구름 물러간 곳에 흰구름과 푸른 하늘이 드러납니다.

 

 

잘왔다 싶습니다.

작은 나뭇가지들과 이파리들이 서로 비벼대며 숲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냅니다.

나무의 향이 가장 깊다는 옹이, 나무의 가장 딱딱한 부분인 옹이를 가진 나뭇기둥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월의 깊이겠지요.

상처의 흔적인 옹이, 그 상처를 극복하자 단단해지고 향도 깊어 진 것입니다.

 

 

숲에는 큰 나무만 있지 않습니다.

작은 나무와 큰 나무와 작은 풀들이 어우러져 숲입니다. 살아있는 숲은 그리하여 생명을 보듬습니다.

 

서바이벌 게임에 능한 우리들은 숲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강한 자 혹은 잘난 사람만 살아남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서로 보듬어주는 세상, 그리하여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 꿈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꿈을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오래된 나무들은 쓰러져 자기가 온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쓰러지고 또 피어나는 것들이 함께 어우러진 숲, 그래서 숲은 맑음입니다. 그 숲에서 주는 공기가 상쾌한 이유입니다. 우리의 병든 몸이 숲에 들어가면 치유되는 이유입니다.

 

숲의 마음, 그 마음이 이 세상에도 넉넉하려면 그들의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자연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빠져버리면 그들은 언젠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들끼리 모여 살기도 하고, 어느 시점이 되면 또 다른 나무들에게 자기의 자리를 물려줍니다. 걸어다니는 것도 아닌 나무들이 뚜벅뚜벅 제 때가 되면 가고 옵니다.

 

 

태풍이름이 하필이면 메아리였을까 싶습니다.

산에 산다는 메아리, 그 메아리가 아직도 숲 속에는 가득합니다. 숲의 아우성,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들은 묵묵히 잔가지들의 흔들림을 붙잡아주고 있습니다.

 

너무 연약한 가지들은 그만 나뭇가지의 줄기를 놓치고 끈어져 숲길 여기저기 떨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아프기도 한 숲, 그러나 내색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나무는 자기 몸에 기대어 쉬겠다는 것을 막지 않고 받아줍니다.

설령 그것들이 자신에게 기생을 하고, 자신을 죽인다고 해도 그를 받아들입니다.

 

그 마음은 마치 바다가 깨끗한것만 받아들이지 않고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태풍이 오면 그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만들어 생명의 기운 불어주듯, 나무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죽고 썩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지요.

 

태풍 메아리가 울려퍼진 숲 속에서 바람과 나무를 보았습니다.


태그:#숲, #나무, #태풍,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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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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