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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1174-12번지 매몰지. 침출수 유출 논란이 일어 최초 매몰지를 해체해 액비저장탱크로 옮겼다.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1174-12번지 매몰지. 침출수 유출 논란이 일어 최초 매몰지를 해체해 액비저장탱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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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유래와 전설을 가진 '생거진천, 사후용인'(生居鎭川 死後龍仁)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이다. 진천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이고, 용인에는 죽어서 누울 명당자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생거진천'은 '가뭄이나 홍수피해가 없어 살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24일 오전, 그 '생거진천'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한 주민은 "진천에는 홍수피해가 없다고 하는데 다 거짓말"이라고 귀뜸했다. 

최근 들어 진천에도 집중호우가 잦아지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가 충북 진천에서는 강약을 거듭하며 쏟아졌다.  

매몰지를 왜 옮겼을까

진천이 속해 있는 충청북도도 장마철을 두고 '비상'이 걸렸다. 도내에 조성된 229곳의 매몰지 관리 때문이다. 충청북도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도내 매몰지에 비닐을 덮고 배수로를 정비했다. 특히 침출수 유출 논란이 일었던 5곳의 매몰지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기자가 이날 방문한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590번지와 이월면 사곡리 1174-12번지 매몰지도 그렇게 매몰지 이전이 이루어진 곳이다. 특히 도하리 매몰지는 지난 1월 7일 돼지 8869마리가 묻힌 대형매몰지다.

도하리 매몰지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침출수 유출 주장이 터져나왔다. 이에 진천군은 주민들이 침출수라고 주장하는 시료를 채취해갔다. 하지만 군은 "오염되긴 했지만 침출수는 아니다"라는 '묘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던 진천군은 지난 4월 비밀리에 도하리 매몰지를 옮겼다. 당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은 "침출수 유출 문제가 제기된 도하리 매몰지를 아무런 말도 없이 옮긴 것은 침출수 유출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진천군은 매몰지를 해체해 인근 농장 액비저장소로 돼지사체를 옮겼고, 침출수 등으로 오염된 토양은 매몰지 아래쪽에 야적해두었다. 하지만 액비저장소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기자는 우회로를 통해 최초 매몰지와 돼지사체가 저장돼 있는 액비저장소에 접근했다.  

최초 매몰지에는 묘목과 고구마 등이 심어졌고, 얼마 전까지 땅 고르기 작업한 것으로 보이는 트랙터가 비를 맞고 홀로 서 있었다. 이곳에서는 악취를 맡을 수 없었지만, 돼지사체가 저장된 액비저장소에서는 진한 악취가 풍겨왔다.

특히 침출수로 오염된 토양은 최초 매몰지 아래쪽에 넓게 야적돼 있었다. 비닐로 덮어놓긴 했지만 양쪽에 도랑물이 흐르고 있고, 아래쪽에 논이 있어서 오염된 토양이 흘러내릴 경우 환경오염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액비저장소 근처에서 만난 농장의 한 관계자는 "저 아래쪽에서 이곳으로 돼지사체를 옮기는 데만 1주일이 걸렸다"며 "정화시설(액비저장소를 가리킴)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침출수가 샐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천재지변이 와도 걱정없다"고 호언장담했다.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590번지 매몰지 아래에는 침출수로 오염된 토양을 야적해놓았다.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590번지 매몰지 아래에는 침출수로 오염된 토양을 야적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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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590번지에 조성된 최초 매몰지를 해체해 인근 농장의 액비저장소로 옮겼다.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590번지에 조성된 최초 매몰지를 해체해 인근 농장의 액비저장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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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사곡리 매몰지로 이동했다. 매몰지를 옮기기 전 이곳에서도 침출수가 새어나와 농수로로 직접 흘러가는 일이 일어났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과 시민환경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곳 매몰지에서 새어나온 물에서는 가축사체유래물질 15.0120mg, 암모니아성질소 39.42mg, 염소이온 13.650mg, 질산성질소 0.05242mg 등이 검출됐다. '가축사체유래물질'의 검출량을 볼 때 침출수가 유출됐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기자가 빗속에서 사곡리에 도착했을 때 매몰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커다란 액비저장탱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침출수 유출 논란이 불거지자 진천군이 최근에서야 액비저장탱크를 세우고 그곳으로 가축사체를 옮겼다. 액비저장탱크는 이미 경북 영주시에서 매몰지 해체의 대안으로 썼던 방법이다.

동행했던 오경석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처음 조성된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농수로를 타고 흘렀다"며 "진천군에서는 침출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최근 액비저장탱크로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매몰지를 옮긴 지 얼마 안돼서인지 액비저장탱크 주변에서는 진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특히 도하리 매몰지처럼 최초 매몰지 해체 과정에서 나온 오염된 토양은 액비저장탱크 주변에 야적해놓았다. 바로 아래는 논이었고, 왼쪽에는 장맛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매몰지 선정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다. 특히 집중호우가 쏟아질 경우 야적장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물이 논과 계곡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컸다. 

침출수 유출문제로 매몰지를 이전한 도하리와 사곡리 외에도 문백면 계산리 산75-1과 산74번지에 조성된 매몰지 두 곳도 추가로 살폈다. 산75번지 매몰지는 산비탈을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집중호우시 매몰지 자체가 붕괴될 수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두 곳 모두 침출수 유출 여부를 확인하는 관측정이 부적절하게 매몰지로부터 5-1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안동에서 보았던 옹벽이나 콘크리트 배수로 등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동행했던 한 인사는 "진천에 비하면 안동 매몰지는 돈을 많이 들인 '명품 매몰지'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산 75-1에 조성된 매몰지. 침출수 유출 여부를 확인하는 관측정이 매몰지로부터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산 75-1에 조성된 매몰지. 침출수 유출 여부를 확인하는 관측정이 매몰지로부터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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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우수 매몰지로 선정됐다"고 하지만...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인지 여전히 비는 강약을 되풀이하며 쏟아졌다. 늦은 점심을 먹고 취재차량을 경기도 여주군 상백리 79번지 매몰지로 돌렸다. 기자가 지난 3월 초 방문했던 매몰지다.

하지만 당시에는 매몰지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고립된 매몰지의 위치 때문에 매몰지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 지형상태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몰지가 조성된 농장에 몰래 잠입해 매몰지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상백리 매몰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는 돼지 7414마리가 묻혔다. 여주에서 단일 매몰지로는 제일 큰 규모다. 게다가 매몰지가 남한강 지류인 복하천 바로 위에 조성됐다. 부실한 매몰지 조성으로 수도권의 식수원인 남한강이 오염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기자가 농장에 잠입해 확인한 결과, 상백리 매몰지는 양돈농장 안에 조성돼 있었다. 특히 다른 매몰지와 가장 구별되는 것은 배수로와 매몰지 측면을 모두 콘크리트로 마감했다('콘크리트 라이닝')는 사실이다. 공사안내판에는 여주군이 3월 4일부터 31일까지 관련공사를 실시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 공사에 들어간 예산만 무려 6010여만원이었다.

콘크리트가 주는 '단단한 이미지' 때문에 이곳 매몰지는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복하천 제방 측면에 차수벽까지 설치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육안의 한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매몰지를 콘크리트로 마감했다고 하더라도 매몰지 안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지하수로를 따라 복하천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았던 지난 3월에도 매몰지와 연결된 복하천 제방면이 상당부분 침식돼 있었다. 심지어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콘크리트구조물의 일부마저 붕괴돼 있었다.

당시 동행했던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과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이런 식으로 제방이 깎여 나가면 매몰지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며 "남한강까지 오염시킬 수 있는 매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매몰지 이전을 주장했다.

여주군 상백리 79번지 매몰지. 배수로와 매몰지 측면을 콘크리트로 마감했는데 이러한 공사에 6000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여주군 상백리 79번지 매몰지. 배수로와 매몰지 측면을 콘크리트로 마감했는데 이러한 공사에 6000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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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 상백리 79번지 양돈농장 안에 조성된 매몰지. 배수로는 복하천으로 통하고 있다.
 여주군 상백리 79번지 양돈농장 안에 조성된 매몰지. 배수로는 복하천으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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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농장 앞에서 만난 주인은 "공무원이 매일 '무슨 일이 생겼냐?'고 전화할 정도로 매몰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며 "매몰지를 콘크리트로 정리해 깨끗하지 않더냐?"고 '전혀 문제없다'는 투였다.

그는 "(콘크리트 라이닝 작업은) 내가 제안해서 여주군이 해준 것"이라며 "우리 매몰지가 경기도에서 우수매몰지로 뽑힐 정도로 침출수 한방울도 유출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8미터의 차수벽까지 설치해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주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복하천 근처에 대규모 축사를 세우고, 그 안에다 돼지 7400여 마리의 대형 매몰지를 조성한 것부터 부적절한 일이었다. 주인의 얘기에서 드러났듯, 관리책임자인 공무원이 '직접 확인'보다는 전화를 통한 '간접 확인'에 의존해 매몰지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문제였다.

장마철이든 평시든 매몰지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공유'다. 지금같은 폐쇄적 정보체제 속에서 공무원만 움직이는 매몰지 관리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피해와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보를 공유하는 '민관합동'으로 매몰지를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오경석 국장은 "매몰지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매몰지를 점검할 방법이 없다"며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매몰지 사후관리를 공개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관이 혼자서 몰래 매몰지를 관리해서는 안된다"며 며 "매몰지 이전, 오염된 토양 처리 등을 관련주민들과 상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주군 상백리 79번지 매몰지 바로 옆에는 남한강 지류인 복하천이 흐르고 있다.
 여주군 상백리 79번지 매몰지 바로 옆에는 남한강 지류인 복하천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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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구제역, #충북 진천, #경기 여주,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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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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