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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청 전 강북경찰서장
 채수청 전 강북경찰서장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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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1년 만에 다시 만난 곳은 미아삼거리역 근처였다. 그는 파면된 뒤 '먹고 살기 위해' 부인과 함께 이 부근에 옷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높은 월세' 때문에 가게를 연 지 한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 1년은 경찰관이었던 그가 '녹록지 않은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을 겪어서였을까? 그의 목소리는 지난해 6월 '조현오식 실적주의'를 비판할 때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특히 지난 16일 조현오 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뒤로는 더욱 '입조심'하고 있다. 조 청장의 항소절차가 남아 있기도 하지만 "경찰에 다시 복귀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아주 간절하기 때문이다.   

22일 만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조현오 청장이 수사권문제에 적극 나서는 걸 보고 경찰 수장으로서 제대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수사)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 전 서장은 "그동안 수사권이 검찰에 과잉 집중돼 있어서 경찰은 검찰의 하부조직으로 명령-복종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며 "검찰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국회 등으로부터 시작된 수사권 조정 논의는 시기적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합의안은 그동안 경찰이 90% 이상 수사를 개시해온 현실을 (법조항으로) 명문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사개시권이 명문화되지 않은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채 전 서장의 긍정적인 평가와 관련, 경찰 일각에서는 경찰대출신 간부들이 대체로 이번 합의안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한 경찰관은 "박종준 경찰청 차장도 경찰대 출신이고,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에도 경찰대 출신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채 전 서장도 경찰대 1기다.

"경찰, 국민 인권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 기울여야"

2010년 8월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표창장과 함께 파면 인사발령통지서를 보여주고 있다. 채수창 전 서장은 조현오 서울청장의 실적주의를 공개비판하며 동반사퇴를 요구한 뒤 파면당했다.
 2010년 8월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표창장과 함께 파면 인사발령통지서를 보여주고 있다. 채수창 전 서장은 조현오 서울청장의 실적주의를 공개비판하며 동반사퇴를 요구한 뒤 파면당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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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전 서장은 "국가 행정체제 안에서 경찰이 원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체로 합의안에 수긍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음에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채 전 서장의 바람대로 '부족한 부분'을 다음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형사소송법 개정 자체도 힘들지만, 검찰 쪽에서 이번 합의안을 근거로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채 전 서장도 "청와대 조정을 통한 이번 합의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는 끝났다"며 "새로운 상황이 터지지 않는 한 향후 몇 년 동안은 수사권 조정 얘기를 꺼낼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 전 서장은 "사실 조현오 청장을 비롯해 경찰조직 전체가 수사권 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했지만 청와대에서 조정하자 (적극적인 자세를) 수정한 것 같다"며 "조 청장이 (청와대 협상장에서) 뛰쳐나왔다면 그는 영웅이 되고 경찰도 뭔가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가닥 아쉬움을 나타냈다. 채 전 서장은 "조현오 청장이 '총경 이상은 직을 걸고 수사권 조정에 나서라'고 지시했는데 과연 총경 이상 간부 중에 자신의 직을 걸고 나선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채 전 서장은 "경찰의 수사개시권과 인권수사는 별개의 문제"라며 "수사개시권 명문화와는 별도로 경찰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제도적 보완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경찰은 기본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이어서 공권력 대상인 국민에게 신뢰받기 힘든 조직"이라며 "그런 점에서 경찰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 전 서장은 "경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는 경찰이 추진하는 정책에 쓴소리를 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도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열린 행정', '겸손한 행정'이 필요하다"며 "일사처리, 속전속결의 방식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거듭 '과도한 실적주의'를 비판했다. 

채 전 서장은 "다시 경찰로 돌아서 1년간 다양하게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경찰조직을 발전시키고 경찰이 신뢰받는 조직이 되도록 일하고 싶다"고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태그:#채수창, #검경 수사권 논의, #조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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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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