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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의 꼭지점이 되는 신시도가 앞에 보인다. 주변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바다위에 펼쳐지는 곳이다.
 새만금 방조제의 꼭지점이 되는 신시도가 앞에 보인다. 주변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바다위에 펼쳐지는 곳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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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생겨 전라북도 군산에 갔다. 웬만한 볼일에도 '애마' 자전거를 대동하고 가는지라 이번엔 군산 어디에서 자전거를 타볼까 하고 인터넷 지도를 펼쳐 보았다. 첫눈에 딱 들어온 곳이 바로 새만금 방조제. 서해 군산 앞바다 비응항에서 부안까지 33km 둑을 쌓아놓은 탓에 눈에 확 들어왔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바다위에 비현실적으로 그어져 있다. 누가 처음에 이런 발상을 했는지 궁금하다. 진취적이라고 해야 할지, 파괴적이라고 해야 할지.... 전에 경기도 안산에 있는 12km의 시화호 방조제길도 달려가 보았지만, 이 길다란 직선 길은 달리다 보면 이곳이 바다를 막은 방조제인지, 그냥 도로인지 가물거리고 헷갈릴 것 같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된 뒤 기념하여 77번 국도길로 명명해주고 방조제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이벤트도 있을 정도로 길고도 긴 둑길이다.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나지만 그땐 정부의 관제행사에 동원된다는 느낌에 찜찜해 달려가 보지 않았다. 이젠 방송과 언론의 시끌벅적한 관심에서 멀어져 조용하고 한적할 방조제길을 여유로이 페달을 밟으며 달려 보았다.  
일제시대때 우리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기차길이어서인지 볼때마다 애잔한 느낌이 드는 철길마을
 일제시대때 우리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기차길이어서인지 볼때마다 애잔한 느낌이 드는 철길마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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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처럼 마을 옆을 흐르는 경암동 철길

군산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암동에 먼저 들렀다. 군산에 오거나 지날때면 늘 떠오르는 곳이다. 근대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군산 세관 건물이며 강변 산책로가 6Km 넘는다는 이름도 예쁜 은파 저수지도 있지만, 내겐 철로가 동네 사이를 개천처럼 흐르는 경암동 철길마을이 마음에 와닿는다. 군산을 소개하는 관광지에는 안나오지만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채롭고 쓸쓸하기도 한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기찻길은 보통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만드는데, 경암동엔 집들 사이에 버젓이 철로가 나 있다. 그래서 차길이나 동네의 겉에서 보면 저 집들 속에 철길이 나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길 건너엔 커다란 대형 마트가 있고 동네 주변엔 키 큰 아파트들이 보디가드처럼 서있는, 마치 도심속의 작은 섬같은 마을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철길마을에 들어서면 보통은 동네 개들이 짖으며 반기는데 이곳은 고요한 적막이 맞아준다. 발자국 소리마저 크게 들려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철길을 걸어갔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일제 시대에 이땅의 기름진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슬픈 역사가 스며있는 철길이기도 하다. 가을 추수때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갈 배가 기다리는 군산항까지 기찻길로 날랐다고 하니,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은 철로이기도 하다. 그런 아픈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자는 듯이 아직도 인터넷 지도에는 폐역과 함께 기차길 표시가 나있다.

비응항을 향해 '빤드시' 달리다

해망동 달동네의 널찍한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도 군산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해망동 달동네의 널찍한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도 군산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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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과 부둣가의 도로를 따라 새만금 방조제의 기점인 비응항을 향해 달려간다. 아직 유월인데도 날씨는 한여름처럼 무덥고 햇살은 화살처럼 등에 따갑게 꽂힌다. 중간에 들른 어느 동네 슈퍼 아저씨에게 확인차 비응항 가는 길을 물어 보았더니 이 길 따라 '빤드시' 가란다. 사투리가 재미있고 학생시절 어머니가 가져다준 맛깔스런 김치를 아낌없이 나누어주던, 광주가 고향인 정 많았던 동생 녀석이 떠올랐다.      

정말 아저씨 말대로 군산 부두와 산업단지 옆 도로는 비응항까지 '빤드시' 펼쳐져 있다. 무한 페달질을 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도로 저 끝에 달리는 차량들 밑으로 가물가물 거리며 물이 고여 있는게 아닌가. 사막에서나 보인다는 신기루를 도로에서 발견하다니. 정말 조금만 더 달려가면 시원한 물가가 있을 것 같이 신기루가 유혹적이고 생생하다.
  
길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햇볕을 피하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마주편에 찻길을 내려다보듯 하는 언덕 동네이 보인다. 국가등록문화재 해망굴이 있는 해망동이라는 동네다. 저녁에는 주민들을 따사롭게 비춰줄 것 같은 가로등이 서 있는 널찍한 돌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도 바닷가의 달동네라 그런지 저 앞의 군산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골목에 왠 미술관 안내팻말이 붙어 있다.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초라한 달동네를 환하게 밝히고자 벽화도 그리고 동네 아이들에게 미술도 가르친다니 고마운 일이다.  

도로위 표지판에서만 보이지 나타날듯 나타나지 않던 비응항에 드디어 다다랗다. 예전엔 섬이었는지 몇몇 가게의 간판에 비응도라고 써 있는 게 보인다. 비응항도 간척으로 섬에서 육지로 합쳐졌나보다. 싱싱한 물고기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수산물 시장, 작은 어선들이 들고 나는 하얀색, 빨간색의 등대가 마주하며 서있는 비응항은 새만금방조제가 연결돼 있지 않다면 다른 평범한 항구와 다를 것이 없는 오붓하면서 활기있는 곳이다.

달려도 달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방조제 둑길은 바다위의 해무로 인해 몽환적으로 보인다.
 달려도 달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방조제 둑길은 바다위의 해무로 인해 몽환적으로 보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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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리고 바람 위의 둑길, 새만금 방조제

비응항에서 가뿐하게 올라탄 방조제 길은 양 옆의 바다와 함께 시선 저너머엔 방조제 끝이 보이기는 커녕 온통 하얀 해무가 덮여있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차도보다 높게 올려 만든 널찍한 산책로는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달리기 좋다. 한쪽은 방조제 둑에 갇혀 곧 육지가 될 바다, 다른 한쪽은 그대로의 살아있는 바다다. 어느 쪽이 진짜 바다인지 알게 해주는 것은 여기에도 출현한 낚시꾼 아저씨들이다.     

옛부터 우리나라의 섬과 해안가의 주민들은 바다의 뻘에서 나오는 갯것의 소득이 작다보니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고 염전으로 바꾸는 간척을 많이 했다. 2010년 완성한 새만금 방조제에 비하면 그런 생계형 간척은 애교수준이다. 군산에서 부안까지 해안과 갯벌을 막아버린 33Km나 되는 콘크리트 방조제를 바다위에 짓는 통큰 간척사업을 할 줄이야. 무수한 찬반 논란과 수없는 설계 변경으로 19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방조제는 아무런 사연이 없었다는 듯 직선으로, 오직 직선으로만 계속 뻗어 있다.   

한쪽은 죽은 바다, 낚시꾼 아저씨들이 있는 다른 한쪽은 살아있는 바다다.
 한쪽은 죽은 바다, 낚시꾼 아저씨들이 있는 다른 한쪽은 살아있는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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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만하니 방조제 중간에 작은 휴게소가 나타나서 매점에서 간식도 사 먹고 의자에 앉아 쉬어간다. 바다 위 휴게소에는 새만금 방조제를 홍보하는 게시판과 사진들도 걸려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긴 방조제라며 받은 기네스 상장을 들고 지역 단체장이 활짝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이 크게 붙어있다.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야할 어촌마을의 주민들과 수만년 동안 이어진 갯벌과 습지 그리고 사라져버릴 생태계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과연 저렇게 희희낙낙하며 찍은 사진으로 홍보를 해야만 했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방조제 중간 정도에 있는 작은 섬 야미도가 보일 즈음,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바람이 불어온다. 저멀리 바다 위에서 불어오는 습기가 많고 차가운 느낌마저 드는 바닷바람 덕에 달리는 건지 걷는 건지 자전거는 거북이가 되고, 30도 가까운 더위속을 달리면서 송글송글 맺힌 땀과 열기를 식혀주기도 한다. 이래서 여름날의 자전거 여행에는 보기완 달리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방조제 둑안에서 육지가 되어가고 있는 전(前) 서해바다
 방조제 둑안에서 육지가 되어가고 있는 전(前) 서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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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도의 정자 전망대에도 올라보고 곧이어 나타나는 신시도의 공원위에 올라서니 가까운 곳에 있는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 같은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펼쳐져 있다. 예전엔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왔어야할 신시도에 있는 댐처럼 생긴 배수갑문은 굳게 닫혀져 있고 물이 통하지 않는 바다는 서서히 육지가 되어가고 있다. 방조제 길위에서 이런 섬들을 만나니 방조제가 마치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 같다.  

종종 관광버스들이 오고가기도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는 홍보문구처럼 서해안 관광명소는 아니다. 1991년 방조제 기공식을 한 지 무려 19년 만에 완성된 이른바 '간척의 역사'를 실제로 딛으며 자전거 타고 달려보니, 새만금 방조제는 국가발전, 지역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지역 주민들의 희생과 바다 생태계 파괴 위에 세워진 길이었다. 미안함과 반성하는 마음을 안고 방조제길을 다시 달려 돌아왔다.

군산버스터미널에 내려 애마 자전거를 타고 경암동을 거쳐 군산 부둣가를 따라 비응항, 새만금방조제길을 달려갔다.
 군산버스터미널에 내려 애마 자전거를 타고 경암동을 거쳐 군산 부둣가를 따라 비응항, 새만금방조제길을 달려갔다.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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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6/12일에 다녀 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새만금방조제, #군산, #경암동철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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