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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과 꿀벌...
▲ 감꽃...꿀벌... 감꽃과 꿀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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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골에서 이틀을 머물고 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날 엄마랑 함께 밭에 올라갔다. 엄마가 양파며 마늘이며 챙기고 있는 동안 나는 밭 맨 위쪽 가장자리에 있는 마늘 있는 쪽으로 향했다. 수확하고도 남은 마늘을 조금 뽑아오라고 해서다. 주위엔 감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빙 둘러 서 있다.

감나무 이파리 사이사이에는 감꽃이 노랗게 피어 흐드러졌다. 노랗게 핀 감꽃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감꽃으로 목걸이, 팔찌 등을 만들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마늘을 뽑다 말고 감나무 앞에 서성거렸다. 옆에 선 감나무들마다 노란 감꽃이 피어 흐드러졌다.

감나무 바로 앞에 있는 마늘을 몇 개 뽑다가 '윙윙' 거리는 꿀벌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감꽃 사이로 꿀벌이 윙윙 거리며 꽃과 꽃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꿀을 모으는 것이었다. 평소엔 벌 한 마리라도 내 옆에 날아다녀도 기겁을 하던 나였다. 특히 등산길에 말벌한테 한번 된통 당하고 난 뒤에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벌을 기피하던 나다. 그런데 이날은 웬일인지 감꽃과 감꽃 사이로 부지런히 왕래하는 꿀벌에 얼굴을 들이밀고 들여다보았다.

...그 위에 앉은 꿀벌...
▲ 감꽃... ...그 위에 앉은 꿀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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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윙윙 거리며 날다가는 감꽃 하나에 올라앉고, 깊숙이 머리를 꽃 속에 처박고 꿀을 빨고선 금방 다른 꽃에서 꽃으로 이동했다. 꿀벌은 감꽃 하나에 오래 머물지 않고 꽃에서 꽃으로 연신 윙윙거리며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아무리 지켜보고 또 지켜봐도 마찬가지. 몇 초 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라 다른 꽃으로 이동하는 꿀벌을 지켜보는 것이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참 동안 노란 감꽃 사이를 오가는 꿀벌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었다. 감꽃 사이사이를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는 꿀벌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버스가 없어서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재 너머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초등학교 몇 학년쯤이었을까. 홀쭉한 배를 안고 학교 갔다 오는 길.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꽃들 사이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을 보는 것은 아주 흔하디 흔했다. 아이들은 먹고 또 먹어도 허기가 졌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산과 들에 핀 산딸기, 피비, 싱아, 보리수, 찔레 순 등은 우리들의 간식거리였다. 학교 갔다 고갯길 걸어오다 보면 허기진 배를 그런 것들로 군것질거리를 삼았었다.

고갯길 너머 마을로 접어드는 동구 밖쯤에는 가을이면 길가에 피어 흐드러진 코스모스가 환했다. 갈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그 위로 날아다니는 꿀벌에서 꿀을 뽑아 먹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이들은 길을 지나다 말고 한쪽 신발을 벗어들었다. 꽃 위에 내려앉은 꿀벌이 신발 안에 들어오도록 유도했고 꿀벌이 신발 안으로 들어왔다 싶을 때, 재빨리 신발을 든 팔을 번쩍 들고 돌려댔다. 한참을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리면 꿀벌은 놀라 기절을 했는지 꼼짝없이 신발 안에 있었고 우린 고놈을 잡아 뒤꽁무니에서 꿀을 빨았었다.

꽤 오랫동안 감나무 앞에 서 있었나보다. 생각에 잠긴 채로 부지런히 꽃과 꿀벌을 따라 움직이다보니 밭 아래쪽에서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하고 있노!"
"응, 엄마!"

대답 뿐. 다시 감나무에 몸을 깊이 들이밀고 꽃 사이로 왕래하는 벌을 지켜보느라 시간이 흘렀다. 내 눈도 어질어질, 고개도 아파왔다. 꿀벌이 잠시도 쉬지 않고 꿀을 모으는 것을 보면서 몰입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고 거기 몰입해 있었다. 고개를 꺾어서 보고, 비틀어서 보고 하느라 목이 아팠고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꿀벌의 그 몰입에 반해서, 아기자기하고 앙증스런 감꽃에 반해서 그렇게 붙어 서있다시피 하다보니 서성거리던 해도 꼴깍 넘어가고 산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위에 살짝 올라 앉은 꿀벌...
▲ 감꽃... ..그 위에 살짝 올라 앉은 꿀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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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시간에 나는 오늘 밭에서 보았던 꿀벌이야기를 했다. 엄만 양봉하는 사람한테 들었다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꿀벌 세계에도 체계와 질서가 있단다. 열심히 날아다니면서 꽃에서 꿀을 모아오는 꿀벌이 있는가 하면 일벌이 있는데, 일벌은 꿀벌이 모아 온 꿀을 지키는데, 꿀이 묽어져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한단다.

꿀을 지키며 말리는 일만 밤낮없이 하다보니 일벌은 수명이 짧아 일찍 죽는다고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한 까닭에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고 마는 것이다. 길어봤자 3개월 정도가 일벌의 수명. 그러면서 엄마는 '사람도 너무 몸을 혹사시키면 빨리 늙고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아버지가 병이 나신 것도 젊었을 때부터 너무 많이 일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이젠 정말 일을 좀 줄여야겠다고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아버진 근래에 들어 꿀벌이 없어진다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작년부터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이상기온에다가 작년부터 퍼진 낭충봉아부패병이란 전염병 때문에 토종벌 95% 이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2006년 꿀벌들이 원인모를 이유로 이듬해까지 22개주에서 25~40%나 갑자기 사라졌고 유럽과 남미에서도 꿀벌이 떼로 사라지는 봉군붕괴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단다. 우리나라는 봉군붕괴현상은 없지만 환경변화로 꿀벌의 밀도가 줄어드나 싶더니 급기야 작년엔 토종벌이 대규모로 폐사한 사태가 발생하였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한다.(농민신문참고)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예언한 적이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 중 3분의 1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인데 충매화의 80%는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기온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단다. 자연생태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꿀벌은 밭에서 만나고 저녁 식사자리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감꽃이 노랗게 흐드러지게 핀 감나무 사이사이로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고 있던 꿀벌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그래, 부지런히 꽃가루를 묻혀서 번식시키고, 부지런히 알을 낳아 개체수를 늘려다오.

"네가 나는 곳까지
나는 날지 못한다
너는 집을 떠나서 돌아오지만
나는 집을 떠나면 돌아오지 못한다

네 가슴의 피는 시냇물처럼 흐르고
너의 뼈는 나의 뼈보다 튼튼하다
향기를 먹은 너의 혀는 부드러우나
나의 혀는 모래알만 쏘다닐 뿐이다

너는 우는 아이에게 꿀을 먹이고
가난한 자에게 단꿀을 준다
나는 아직도 아직도
너의 꿀을 만들지 못한다

너는 너의 단하나 목숨과 바꾸는
무서운 바늘침을 가졌으나

나는 단 한번 내 목숨과 맞바꿀
쓰디쓴 사랑도 가지지 못한다

하늘도 별도 잃지 않는
너는 지난겨울 꽁꽁 언

별 속에 피는 장미를 키우지만
나는 이 땅에
한그루 꽃나무도 키워보지 못한다

복사꽃 살구꽃 찔레꽃이 지면 우는
너의 눈물은 이제 달디단 꿀이다
나의 눈물도 이제 너의 달디단 꿀이다

저녁이 오면
너의 들녘에서 돌아와
모든 슬픔을 꿀로 만든다     - 정호승 시, <꿀벌>


태그:#꿀벌, #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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