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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포구
 용기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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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는 용기포항에서 북서쪽 해안길을 지나 약간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가면서 보니 용기포 등대와 용기원산 사이에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온 모래사장이 보인다. 이곳에 현재 대형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항구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백령도까지 300t 단위의 배가 다니지만, 3000t급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해서 수송 여객수도 늘리고 운행시간도 단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사 진척도로 보아 새로운 항구는 2012년쯤에나 완공될 수 있을 것 같다.

백령도는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북한과의 교전지역,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져 지난 1년 동안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육지와의 왕래가 줄어들고, 섬사람들도 고립무원의 섬이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백령도는 현재 어업의 섬이기보다는 농업의 섬, 국방의 섬이다.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농토가 많다고 한다. 현재 백령도에는 1만 명 정도의 거주자가 있는데, 이중 주민이 5000명, 군인이 5000명 정도라고 한다.

까나리를 손질하는 어부
 까나리를 손질하는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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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백령도는 섬 치고 꽤나 혜택을 받은 곳이다. 소위 자급자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 그만큼 경제가 좋아지는 건 당연지사. 또 내륙과의 교류가 많아지면 국방상으로도 더욱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북측에서 민간인들을 향해 마음대로 공격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백령도에서는 생가 했던 것 보다 그리 큰 긴장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백령도를 방문했을 땐 군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문화모텔 사장은 "백령도가 강화도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지만, 강화도에 비해 통제구역도 적고, 철조망도 덜 보이고, 군인들의 자세도 유연해 보인다. 백령도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잠시 긴장지역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위험하거나 고립된 지역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대중가요에 나오는 것처럼 "물 맑은 밤바다에 배를 띄우고 줄지어 낚시하던"(백령도 연가) 그런 땅은 아니지만,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으면서 살아가는 그런 평온한 땅이다.    

심청각에서 듣는 박동진의 판소리

심청각
 심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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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관광은 어떤 곳에 숙소를 정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패턴이 달라진다. 우리처럼 모텔에 숙소를 정하면 그 집에서 식사를 하고 그 집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관광을 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문화모텔에서 점심을 먹고 문화모텔의 버스를 타고 오후 관광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간 곳이 인당수가 바라보이는 진촌리 북쪽 산 위에 세워놓은 심청각이다.

1999년 건립한 2층 건물로, 효사상 고취와 관광 인프라 구축이라는 두 가지 목적에서 세워졌다. 이곳에는 심청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판소리 심청가를 들을 수 있고, 영화 포스터와 대본을 볼 수 있으며, <심청전> 관련 서적을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판소리 심청가인데, 박동진, 성창순, 김소희 명창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현장에는 누가 틀었는지 박동진 명창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심청가 소리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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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을 당도하니, 이는 곧 인당수(印塘水)라. 대천(大川)바다 한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千里萬里)나 남고. 사면(四面)이 검어. 어둑 정그러져, 천지적막(天地寂莫)한데, 까치뉘 떠 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물결은 위르르, 출렁 출렁. […] 도사공(都沙工) 거동봐라. 의관(衣冠)을 정제(正祭)하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 둥.

오늘날 인당수(印塘水)에, 인제수(人祭需)를 드리오니, 동해신(東海神) 아명(阿明)이며, 서해신(西海神) 거승(巨勝)이며, 남해신(南海神) 축융(祝融)이며, 북해신(北海神) 우강(禹彊)이며, 강한지장(江漢之將)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하감(下鑑)하야 주옵소서. 그저 북을 두리둥둥 둥 둥둥. 비렴(飛廉)으로 바람주고, 해역(海域)으로 인도하여, 환난(患難)없이 도우시고, 백천만금(百千萬金) 퇴를 내어, 돛대 위의 봉기(鳳旗) 꽂고, 봉기 위의 연화(蓮花) 받게, 점지하여 주옵소서.

고사를 다 지낸 후, 심낭자 물에 들라. 성화같이 재촉하니, 심청이 죽으란, 말을 듣더니마는 여보시오 선인(船人)님네. 도화동(桃花洞)쪽이 어디쯤이나 있소. 도사공이 나서더니, 손을 들어서 가르치는데, 도화동(桃花洞)이 저기 운애(雲靄)만 자욱한 데가 도화동(桃花洞)이요.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정화수(井華水) 떠 받쳐 놓고, 분향사배(焚香四拜) 우는 말이, 아이고 아버지, 이제는 하릴없이 죽사오니, 아버지는 어서 눈을 떠, 대명천지(大明天地) 다시 보고, 칠십생남(七十生男) 하옵소서. 여보시오 선인(船人)님네, 억십만금(億十萬金) 퇴를 내어, 본국(本國)으로 가시거든, 우리 부친(父親)을 위로(慰勞)하여 주옵소서. 글랑은 염려(念慮)말고, 어서 급(急)히 물에 들라.

1972년 독일 뮌헨에서 공연된 오페라 '심청'을 소개하는 기사
 1972년 독일 뮌헨에서 공연된 오페라 '심청'을 소개하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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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같은 눈을 감고, 치마자락 무릅쓰고, 이리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 만경창파(萬頃蒼波) 갈매기 격(格)으로 떴다 물에가 풍, 빠져노니, 향화(香火)는 풍랑(風浪)을 쫓고, 명월(明月)은 해문(海門)에 잠겼도다. 영좌(領坐)도 울고, 사공(沙工)도 울고, 접근 화장이 모두 운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年年)이, 사람을 사다, 이 물에다 넣고 가니. 우리 후사(後事)가 잘 되겠느냐. 영좌(領坐)도 울고, 집좌도 울음을 울며, 명년부텀은 이 장사를 그만두자. 닻 감어라. 어기야 어야. 어야. 어기야 어야야." 

심청각 밖에는 효녀 심청상이 서 있다. 가천 길병원 이길녀 원장이 기증했다고 한다. 동상은 심청이 물에 빠지기 전 홀로 남은 아버지를 그리며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동상의 뒷면에는 조병화 시인이 지은 심청송이 새겨져 있다. "심청은 드높은 효심의 상징으로 영원하리"라는 문구가 보인다. 1999년 9월에 세워졌다.

용틀임바위와 갈매기 그리고 가마우지

용틀임바위
 용틀임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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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각 주변에는 해안포와 장갑차가 배치되어 있어 이곳이 남북의 경계지역임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심청각을 내려와 찾아갈 곳은 장촌포구 옆 절벽 아래 있는 용틀임 바위다. 이 바위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 외롭게 솟아있는데, 이 절벽은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해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우리는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절벽 위에 설치된 데크로 올라간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 아래로 용틀임 바위가 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몸을 비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회오리바람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바위가 크고 높지를 않아 깊은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다 가운데 좀 더 멀리 떠 있는 연봉바위가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안개에 싸인 대청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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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
 가마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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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려 깎아지른 절벽을 보니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둥지를 틀고 있다. 숫자상으로 갈매기가 월등히 많아 가마우지가 곁방살이를 하는 것 같다. 지금이 번식기인지라 갈매기들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 보금자리 주변에 새끼가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씩 나와 있다. 아직 날 정도는 안 되었지만 꽤나 컸다. 사람 접근이 어려운 절벽에 있어 이들 생태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는 어렵다. 또 조금이라도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면 어미들이 경고음을 낸다.

가마우지는 먹이를 구하려는지 절벽보다는 용틀임 바위 옆 평평한 바위 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모양이다. 이곳의 가마우지가 가끔 수면을 낮게 날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절벽에도 가마우지가 보이는데, 아직 새끼를 낳은 것 같지는 않다. 가마우지는 요즘 정말 귀한 새가 되어 백령도 같은 외딴 섬에서나 볼 수 있다.

정확히 품계를 매긴다면 정오품 정도...

정오품송
 정오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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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틀임바위를 보고 우리는 중화동 절벽 위에 있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문화모텔 사장은 2010년에 있었던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중화동에 사는 어부가 어뢰의 프로펠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위령탑에 가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더니 화제를 잠깐 돌린다. 이곳 백령도에도 기가 막히게 잘 생긴 소나무가 하나 있다고. 속리산의 소나무가 정이품이니까, 이곳의 소나무는 정일품쯤 될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멋있다면 소문이 벌써 났을 텐데 궁금하다. 조금을 더 가자 길 오른쪽 산자락에 소나무가 하나 보인다. 모텔 사장이 얘기하던 그 소나무다. 그런데 크기라든지 수형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철조망 해안
 철조망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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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기로 보아서는 200년쯤 되어 보이고, 나무의 키도 아직 작은 편이다. 그리고 수형도 타원형이어서 기개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다. 정확히 품계를 매긴다면 정5품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사장을 실망시킬 수 없어 정삼품쯤 줄 수 있겠다고 말한다. 여하튼 이 소나무가 백령도에서는 가장 잘 생긴 소나무라고 한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으로 가는 길은 해안을 따라 나 있다. 해안으로는 콘크리트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로 철조망이 쳐져 있다. 백령도에 와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낮에는 해안으로 나가는 문을 개방해 민간인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잠깐 해안으로 나가보니 해조류를 줍는 주민들이 보인다. 대부분 할머니들로 이들의 표정에서는 긴장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외지인들을 보자 할머니들의 표정이 오히려 밝아진다. 그러고 보니 민간인들에게 백령도는 삶의 터전이고 삶의 현장인 것이다.  


태그:#심청각, #심청가, #용틀임바위, #갈매기, #가마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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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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