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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판자촌이 밀집해 있는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화재로 인해 판자촌 건물 96가구 중 70가구가 불에 타 수십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13일 오후 한 이재민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12일 판자촌이 밀집해 있는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화재로 인해 판자촌 건물 96가구 중 70가구가 불에 타 수십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13일 오후 한 이재민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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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판자촌 화재현장 뒤편으로 '부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13일 오전 판자촌 화재현장 뒤편으로 '부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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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재민이 화재현장을 둘러본 뒤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 앉아 있다.
 한 이재민이 화재현장을 둘러본 뒤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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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마을 대부분이 불에 탄 서울 강남구 포이동 판자촌. 화재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화재의 열기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열기에 한여름 땡볕까지 더해져, 마을 곳곳이 후끈후끈했다. 잔불이 남아 있는지 소방대원이 가끔 호스로 물을 뿌리기도 했다.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매캐한 냄새도 아직 빠지지 않았다. 골목에서 서성이는 주민들이 가끔 보였는데, 이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검게 변한 집을 바라봤다. 20년 이상 살아온 터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주민 몇몇은 재만 남은 집 안으로 들어가 남아 있는 살림살이를 하나라도 챙기려 했지만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골목에서 만난 김아무개(62)씨는 "집에 남은 게 하나도 없다, 아이들이랑 집사람 사진이라도 남았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앨범이 통째로 시커멓게 타버렸다"라고 말했다. 그의 손에는 시커먼 재가 잔뜩 묻어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 강제이주... 30년 만에 주민등록

포이동 재건마을 화재현장에서 한 이재민이 화마로 인해 전소된 잔해더미 속에서 손녀의 신분증과 통장, 안경 등 찾아 물로 씻고 있다.
 포이동 재건마을 화재현장에서 한 이재민이 화마로 인해 전소된 잔해더미 속에서 손녀의 신분증과 통장, 안경 등 찾아 물로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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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재민이 화마로 인해 전소된 잔해더미 속에서 쓸 수 있는 가재도구와 옷가지를 찾아 정리하고 있다.
 한 이재민이 화마로 인해 전소된 잔해더미 속에서 쓸 수 있는 가재도구와 옷가지를 찾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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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기안전공사 사고조사 관계자들이 화재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고조사 관계자들이 화재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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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화재현장에서는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경찰 과학수사대의 정밀 감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컨테이너박스 세 개를 쌓아 지은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임시대피 시설이자 상황실로 사용됐다. 주민들은 임시로 철골계단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을에는 아직 물과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

이곳의 정확한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개포4동 1226번지. 예전에는 포이동 226번지였던 곳이다. 마을 바로 옆으로 잘 정비된 양재천이 흐르고, 경부고속도로, 강남대로, 양재대로 등 주요 도로가 가까이 있는 소위 '금싸라기' 같은 땅이었다. 고층 주상복합빌딩이 들어선 강남 한복판에 이런 판자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곳의 역사는 박정희 정권시절 거리미화에 동원됐던 폐품수집인과 도시빈민을 서초동 정보사 뒷산 수용시설에 강제이주 시키면서 시작됐다. '자활근로대'라고 불리던 이들은 그 후 1981년 현재 위치로 일부 인원이 분산 배치됐다. 이후 다른 지역 철거민과 빈민들이 마을로 유입됐고 100여 가구가 뿌리를 내렸다.

마을 주민 서미자(54)씨는 "1989년 이사와 22년을 이 자리에서만 살았다"라며 "눈이 많이 오면 지붕이 무너지기도 하고, 모든 집들이 바퀴벌레 때문에 힘들어 할 정도로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한때는 투기업자들이 이곳에 집을 얻어 개발이익을 노리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나서 그런 집들을 다 허물기도 했다"며 "우리는 돈을 벌고 아파트에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이곳에서 사는 게 보장되길 바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리 잡게 되었지만, 이들은 그곳을 자신의 집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다 처음 불법 토지점유 변상금이 나온 것은 지난 1990년. 30만 원으로 시작한 변상금은 매년 부과됐고, 지난해 7월 기준 주민에게 부과된 변상금의 총액은 23억 6100만 원, 거기에 연채에 따른 가삼금액이 14억 4000만 원으로 총 38억 100만 원에 달한다.

처음에는 얼마 안 되는 액수라, 마을 사람들이 모아서 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더 많은 금액이 부가됐고 이들은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국가에서 강제로 이주시켜놓고 '불법점거'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변상금 납부를 거부했다. 올해는 아마 더 많은 변상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다른 빈민지역이 시달리는 철거에 대한 위협은 적지만 감당할 수 없는 변상금은 또 다른 고통이다.

이곳을 주소지로 한 주민들의 주민등록도 최근에서야 가능해졌다. 지난 1981년 행정구역이 개포동으로 개편되면서 이미 살고 있는 주민들은 불법점유자가 됐고, 마을은 공유지로 분류돼 주민들의 주민등록이 말소됐던 것. 2009년 대법원은 주민들이 낸 법정소송에 "3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살았다면 주민등록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어렵게 얻어낸 주민등록과 다른 곳으로 이주해도 끝까지 쫓아다니는 변상금. 이 두가지가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못하는 이유다.

주민대책위 "재난구역으로 선포해라"

판자촌 화재현장 잔해더미 속에서 문패만 덩그러니 남겨져 슬픔과 안타까움이 전해지고 있다.
 판자촌 화재현장 잔해더미 속에서 문패만 덩그러니 남겨져 슬픔과 안타까움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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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재민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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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잔불정리를 벌이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잔불정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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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재는 지난 12일 오후 4시 40분 경 마을 한복판에 있는 야적장에서 시작됐다. '포이동 266번지 사수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전체 96가구 가운데 70가구 이상이 전소됐고, 나머지 20여 가구도 소방작업으로 인해 일부가 파괴됐다.

주민들은 이번 화재가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철순 대책위 위원장은 "야적장이 있는 목공소는 얼마 전부터 문을 닫은 상태라 불이 날 원인이 없다"며 "골목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고, 겨울에는 화재예방을 위해 순찰을 돌 정도로 대비하고 있어 일부러 사람이 불을 놓지 않으면 화재가 일어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현재 마을회관에 설치한 CCTV을 검토해 방화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 또한 방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13일 오후 1시경 발화 유력지점에 과학수사대를 투입했다. 강남구는 주민들에게 인근 구룡초등학교로 숙소를 옮길 것을 제안했지만, 주민들은 강제철거를 우려해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날 오전 11시 화재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을 대부분이 전소하는 큰 피해가 발생한 것에 "소극적인 초동진화가 큰 피해를 불렀다"며 "이에 책임소재가 있다면 이를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화재사고의 원인이 "그동안 주거환경 개선 요구를 묵살해온 강남구청과 서울시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남구청과 서울시는 포이동 266번지를 재난지역설정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라"며 "주민들의 생활 대책마련을 위해 구청장은 즉각적인 면담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 같은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우선은 가장 급한 생계 문제부터 지원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요구하는 주택재건자금 등 재정지원은 앞으로 더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로 1억여 원의 재산피해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정확한 피해가구수와 이재민 숫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태그:#포이동, #개포동, #화재, #방화,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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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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