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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합의로 정치권과 검찰이 충돌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김준규 검찰총장이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마친 김준규 검찰총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김준규 총장 "저축은행 수사 끝까지 수행" 국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합의로 정치권과 검찰이 충돌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김준규 검찰총장이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마친 김준규 검찰총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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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 '꿈꾸는 나라'가 있다. 정치에 밝은 사람들은 '정의로운 복지국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식으로 일목요연하게 그것을 표현한다. 생업에 바빠 정치에 관심을 쏟기 어려운 많은 사람은 마음속의 열망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마음속에 무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대체로 일치한다면 좀 더 쉽게 그 나라에 도달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자가 꿈꾸는 나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세계에서 부와 권력과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꿈꾸는 나라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고, 어쩌면 이 땅은 이미 '그들이 꿈꾸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꿈꾸는 나라가 다르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그중에서 누구의 꿈이 좀 더 옳은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대국가에서 여러 꿈의 상대성을 존중하면서도 더 나은 꿈을 선택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선거라는 것에 사람들이 이미 합의하였다. 비록 그 행진이 너무나 느려 고통스러워도 선거를 통해 천천히 평화적으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해가는 과정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대한민국은 부와 권력 가진 사람이 꿈 꿨던 나라

그런데 2011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미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지기 어려운 기본적인 가치들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나라든지 법이 필요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다수결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때 아무리 어떤 법에 문제가 있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국회를 통과했다면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법에 대항하는 방법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헌법재판을 통하여 효력을 상실시키거나, 선거를 통하여 국회의 구성을 바꾸어 그 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자신의 양심을 걸고 저항권을 행사할 때도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그것은 국가라는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처럼 국민에게 법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면, 국가 또는 국가의 일을 수행하는 공무원에게는 더더욱 그러한 의무가 있다.

안타깝게도 2011년의 대한민국에서 법의 집행이 공정하다고 믿는 순진한 국민은 많지 않다. 국민이 지나치게 국가를 불신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전후사정을 보면 국가가 국민에게 그런 빌미를 주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공정하지 못한 법집행은 그 자체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으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정부 당국자가 공허하게 외치는 '나라의 기강'이 아니라 진짜 '나라의 기강'을 뒤흔든다. 이처럼 법집행의 불신을 자초하는 중심에 검찰이 있다.

국민은 언론, 검찰과 같은 조직이 마치 공동체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 공동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공정하게 그 직무를 수행해 공동체를 정화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배반당하며, 그들이야말로 공동체를 진흙탕으로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한다.   

그림로비를 통한 인사청탁 의혹과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검찰 출석하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로비를 통한 인사청탁 의혹과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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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종종 벌어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어느 날 갑자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심각한 의혹을 받는 사람들이 겁 없이 외국에서 들어온다. 그 혐의에 비추어보면 누구나 강도 높은 수사를 기대하지만 어쩐 일인지 검찰의 칼은 다른 때와 달리 예리하지도 집요하지도 않다. 검찰의 반응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 것처럼 손쉽게 면죄부를 얻는다.

'그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검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포스터에 쥐 한 마리를 그렸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신문기사만 보아도 무죄가 뻔한 사건을 기소하는 서슬 퍼런 검찰이다. 그런 검찰이 이처럼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건을 쉽사리 종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은 거의 없다. 결론을 믿으라고 하니 믿는 시늉을 하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참고 있지만, 국민의 검찰에 대한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한 불신을 자초하면서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검찰의 속사정이 무엇인지, 검찰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기에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국민은 궁금할 따름이다.

법률적 사건은 증거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그렇게 확인된 사실에 대하여 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문제는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증거를 보면 죄를 지은 것 같고, 다른 증거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며, 그 증거가 사람의 말이면 늘 신빙성이 문제가 된다. 또한 증거는 어디나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노력을 통하여 찾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무고한지 밝히는 일은 수사하는 사람의 능력과 노력과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수사하는 사람이 면죄부를 주자면 못 줄 사람이 없고, 털고자 하면 버틸 사람이 없다. 결국 수사기관의 '수사하려는 의지'가 범죄 또는 무고함을 밝히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물론 수사의 본질상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를 수사하는 사람의 품성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형사소송제도는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발명해냈다. 고문의 금지, 증거법칙, 변호인제도, 영장제도, 각종 감찰제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제도도 결국은 사람이 하기 나름인 측면을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제도에 더하여 검찰의 중립성 보장과 민주적 통제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룰 때 그 공정함은 비로소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불의한 정치권력이 인사권과 상명하복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검찰을 흔들고, 검사들의 승진하려는 욕망, 공명심, 정치적 성향, 봉건적인 조직문화 그리고 조직이기주의가 그러한 시도에 화답하면 두려운 결과를 낳는다. 그 일그러진 모습을 오늘날 우리는 매일같이 신문에서 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혐의가 있는데, 어떻게 수사를 안 하는가. 다른 어떤 사람은 혐의가 있지만 해명이 되는데 어떻게 계속 수사를 하는가." 그러나, "혐의가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어떤 시기에, 어떤 강도로 수사하고 기소하느냐"가 공정함의 핵심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도대체 누가 그 핵심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누가 보아도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은 버젓이 돌아다니고, 여러 면에서 인간적이었던 사람은 바위에서 뛰어내렸어야 하는가.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넣은 혐의로 벌금을 물게 된 박정수(41)씨의 '작품'.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넣은 혐의로 벌금을 물게 된 박정수(41)씨의 '작품'.

지금 국민의 눈에 비친 검찰은 사소한 행위라도 정부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면 가혹하게 수사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협하는 정적들에 대해서도 놀라울 만큼 집요하게 수사를 한다. 그에 반해, 권력자들, 시장의 강자들 그리고 그들과 한배를 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칼날이 너무 무뎌서 오이 하나도 베지 못한다.

물론 검찰이 처리하는 수많은 사건 중에서 공정성을 의심받는 사건들은 비율로만 본다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정성을 의심받는 사건들은 정치권력의 향배를 결정하거나 사회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정치권력과 검찰은 그러한 사건 처리를 두고 서로 통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면서 그들만의 게임을 계속한다. 그러한 비정상적인 게임은 국민의 이름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공정한 검찰권 행사, 현 정부에서 꿈도 꾸지 말자

예를 들어, 지금 부산저축은행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수사가 현재 정치권력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는 그 결과를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수사가 현재의 정치권력을 실제로 궁지에 빠뜨리더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검찰의 선의를 확인하기보다는 레임덕에 처한 정권 아래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정치적 게임을 읽어야 한다. 안 그래도 먹고 사느라 피곤한 국민이 왜 이렇게 끔찍하게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가.  

어떻게 보면 역사는 "경찰, 군대, 정부, 국회, 법원, 정보기관, 언론 등 국민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명분을 가진 핵심적 사회조직들이 실제로는 자주 국민의 적이 되는 현실을 타파하고, 그들을 민주적 통제 아래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저항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러한 저항을 극복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되는 나라'는 내가 꿈꾸는 나라보다는 '내가 꿈꾸는 나라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나는 정의감과 선의와 역량을 가진 많은 검사를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수사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개개 검사의 그러한 자질과 노력은 무너진 시스템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검찰권의 행사가 이토록 혼란스러운데도 적어도 눈에 드러난 조직 내부의 저항이 없다는 것은 검찰의 자정능력에 대하여 회의를 하기에 충분하다.

그 결과 국민은 이 나라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나라에서 '복지국가'나, '약자를 배려하는 나라'를 꿈꾸는 것은 덧셈과 뺄셈이 안 되는데 미분과 적분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되는 나라,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나라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 꿈이어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아침마다 신문보기가 무서울 지경이 되고 보니, 이제는 그것조차 얼마나 귀한 줄 알겠다. 더 거창한 꿈도 잊지 말아야겠지만, 지금은 이 소박한 꿈이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바보가 아닌 다음에 이 정부 아래에서 그것을 기대할 사람은 없다.

덧붙이는 글 | 내가꿈꾸는나라 응모 기사입니다. 조광희 기자는 변호사이자 영화사 봄 대표이사입니다.



태그:#내가?꿈꾸는?나라,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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