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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은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된 초롱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학명에는 나라 잃은 설움이 담겨 있습니다(책속 설명)
 금강초롱은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된 초롱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학명에는 나라 잃은 설움이 담겨 있습니다(책속 설명)
ⓒ 송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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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름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재미나게 불렀던 우리말 이름도 있지만 전 세계가 함께 쓰는 이름도 있어요. '학명(學名)이라고 하지요. 학명은 세계인들이 함께 쓰는 이름이므로 전 세계 식물 분류 학자들은 '국제식물명명규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5년 마다 토론하고 수정하며 법처럼 엄격하게 지키고 있답니다.…식물 이름 하나에도 나라 잃은 아픔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지금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금강초롱'은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된 초롱꽃과 유사한 식물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인데 전 세계가 함께 쓰는 학명은 애석하게도 하나부사야 아시아타카 나까이(Hanabusaya asiatica Nakai)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나까이'라는 일본인 학자가 이 식물을 발견하고 '하나부사'라는 후견자의 이름을 우리나라 특산식물의 고유 집안 이름에 붙여 공포한 것이지요. 정말 안타까워도 전 세계의 약속에 따라 붙인 것이니 이제와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 이유미의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책 몇 권쯤, 신간 소식이 기다려지고 반가운 저자 한두 명 쯤은 있을 것 같다. 국립수목원 이유미 박사가 내게는 그런 저자 중 한 사람이고, 그가 쓴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가 내게 그런 존재다.

시골태생인지라 풀이며 나무, 꽃들을 흔하게 보고 자랐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고향과 멀어져 사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예사로 보고 자란 나무와 풀들이 때때로 그립고, 그들의 생태가 궁금해지곤 했다.

식물도감을 찾아보기도 했다. '김태정의 한국야생화'나 수목원 등의 홈페이지를 수없이 드나들며 꽃과 나무이름들을 알아가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가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낯익은 몇몇 식물들만 기억될 뿐, 내가 너를 언제 알았더냐?는 듯 이미 만난 꽃들도 잊기 일쑤요, 그 꽃이 그 꽃 같아 혼동되기 일쑤였다.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생태적 특징은 무엇이며 주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고만고만 비슷한 식물들과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등, 어떤 식물의 기본 정보는 물론 눈에 띄는 특징조차 거의 모르고, 실물을 보지 못한 채 꽃이나 나무 이름을 외우려고만 했기 때문이리라.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겉그림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겉그림
ⓒ 진선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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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에 읽게 된 것이 이유미 박사의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이다. 개나리며 목련, 달맞이꽃, 소나무 등 우리 주변에 흔한 식물들의 특징이나 그에 얽힌 사연 등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는지라, 단지 한 식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관련된 식물 이야기를 함께 녹여 들려줌으로써 또 다른 식물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는지라 푹 빠져 읽었다.

늘 봤던 나무와 꽃들이 책을 읽기전과 달리 다가왔다. 그냥 '예쁘다' '신기하다'고 감탄하며 봤던 꽃들의 다른 면들이 궁금해졌다.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어느 정도 알고 관심을 두자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였고 자연 알아지는 것들이 늘었다. 보이는 것이 많고 알아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또 다른 식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커졌음은 물론이다.

책 덕분에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책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식물 이야기들이 많았다. 식물에 대한 기본 생각부터 바뀌었다. 이전에는 식물들이, 나무 한 그루가 나와 동떨어진 미비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 사람에게 인격이나 성격, 개성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그런 것들이 있는 듯 한 그런 존재로 여기게 했다.

노랑앉은부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옵니다. 이 귀하고 특별한 꽃을 잘 지켜내지 못한 것 같아서요. 광릉 숲에 한두 포기 남아 있던 노랑앉은부채가 경기도의 한 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꽤 여러 포기가요. 노란색 꽃이 단순한 변이인지 고정된 특징인지 알고 싶었지요. 그러러면 씨앗을 뿌려 다시 꽃을 피워 내고 그 꽃이 여전히 노란색인지 봐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 않는 거예요.

다시 한해를 기다려 살펴보니 이른 봄 무엇인가가 와서 꽃을 똑똑 따 먹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해를 기다려 철망을 사서 올라오는 몇몇 꽃에게 둥글게 망을 씌워 놨어요. 그러나 결국 열매를 보지 못하고 그 일을 포기했습니다. 귀한 꽃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나쁜 사람들이 철망을 치우고 깊은 뿌리를 가진 노랑앉은부채를 마구 캐어 가 버렸으니까요. 아직도 제가 씌운 철망 때문에 꽃들이 더 눈에 잘 뜨이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무척 불편합니다. -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에서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진선출판사 펴냄)은 우리 땅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줌으로써 내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식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게 한 이유미 박사가 오랜만에 내놓은 책이다.

국립수목원에서 우리 식물들을 분류하거나 연구하고 보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가 그동안 만났던 야생화들 그에 얽힌 사연들을 조근조근 들려준다. 노랑앉은부채에 대한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은 올 봄 '북한산에서 노루귀를 만났노라'의 기사를 쓴 이후 나 때문에 노루귀가 뽑혀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마음부담을 한동안 가져야만 했던지라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습지에 사는 해오라비난초.새 한마리가 날고 있는 듯합니다(책속 설명)
 습지에 사는 해오라비난초.새 한마리가 날고 있는 듯합니다(책속 설명)
ⓒ 송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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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핀 털복주머니란 꽃이 작년에 수고한 열매를 바라보며 격려합니다(책속 설명)
 새로 핀 털복주머니란 꽃이 작년에 수고한 열매를 바라보며 격려합니다(책속 설명)
ⓒ 송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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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머니란과 흰복주머니란.얼마전까지 '개불알꽃'으로 불렸는데 부르기 거북하다는 주장과 귀한 자식이 무탈하게 자라라는 마음에 '개똥이'라 부른 것과 같은 선조들의 꽃에 담긴 정다운 마음을 살려 개불알꽃이라 부르자는 주장을 두고 토론 끝에 복주머니란으로 부르자 정해졌다고 한다.
 복주머니란과 흰복주머니란.얼마전까지 '개불알꽃'으로 불렸는데 부르기 거북하다는 주장과 귀한 자식이 무탈하게 자라라는 마음에 '개똥이'라 부른 것과 같은 선조들의 꽃에 담긴 정다운 마음을 살려 개불알꽃이라 부르자는 주장을 두고 토론 끝에 복주머니란으로 부르자 정해졌다고 한다.
ⓒ 송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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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식물은 달콤한 꿀과 꽃가루를 만들어 곤충을 부르는데 난초는 절반 정도만 이 방식을 채택한답니다. 어떤 난초는 특별한 향기로 곤충을 유인하고, 심지어 다른 난초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는 순진한 곤충들이 찾아와 꽃을 찾아 헤맬 때 꽃가루받이를 이루어 내기도 합니다. 더욱 지능적인 속임수도 있습니다. 꽃잎 모양을 암벌의 모습과 아주 비슷하게 만들어서 어리숙한 수벌이 찾아오게 만드는 난초가 있습니다.

더욱 교활한 것은 꽃잎의 생김새는 물론 촉감, 심지어 향기까지도 암벌의 채취를 모방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 정도로 심하게 영리한 난초는 우리 땅의 수수한 난초 중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요. 난초과 식물들이 가진 다른 전략 중에는 꽃가루를 미세한 가루 대신 끈끈한 덩어리로 만들어 곤충에 들러붙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6월편에서

간혹 눈도 내리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른 봄에만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가하면 가을걷이도 끝나가는 즈음에 피는 꽃들도 있다. 저자는 그동안 만났던 꽃들을 무작위로 들려주지 않고, 그 계절에 주로 만날 수 있는 꽃들을, 비슷한 특징을 가진 꽃들을 월별로 구분하여 들려준다. 그래서 야생화와 훨씬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이끈다.

4월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제비꽃들이다. 제비꽃이라 하지 않고 제비꽃들이라고 하는 까닭은 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 종류가 대략 50여 가지가 넘기 때문. 70여종이 넘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종류가 다른 제비꽃들끼리 자연 교배되어 생겨난 종류까지 합치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제비꽃만 연구하는 모임까지 있을 정도다.

봄에 피는 수많은 풀꽃 중 민들레와 더불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제비꽃 아닐까. 꽃을 찾아 일부러 먼 길 떠나지 않고도 말이다. 어린 시절 워낙 흔하게 보고 자랐던 꽃인지라 유독 아련하고 애틋한 정과 그리움으로 해마다 봄이면 마음이 설렌다. 이런지라 꽃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가장 먼저 들여다보게 된 것이 이 제비꽃이다.

여러가지 야생난초들
 여러가지 야생난초들
ⓒ 송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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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식물을 알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한계가 처음엔 하나하나 식물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좀 더 알고 나면 비슷한 식물이 많아 그게 그거 같고 결국은 알던 것도 잘 모르겠다 싶습니다. 맞죠? 그것은 집안, 즉 그 식물이 가지는 배경과 특징을 그저 각각의 단면과 보았기 때문입니다. …집안을 먼저 인지하고 나서 노란색 꽃이 피었으면 '노랑제비꽃'. 새로 나온 잎이 고깔 모양으로 말려 나오면 '고깔제비꽃', 꽃도 잎도 제일 작은 것은 콩알처럼 작다하여 '콩제비꽃', 잎에 알록알록한 무늬가 있으면 '알록제비꽃' 하는 방식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지요. -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중에서

그런데 제비꽃에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한 한편 혼돈스러웠다. 이제까지 그 제비꽃이 그 제비꽃이려니, 보라색의 그냥 제비꽃과 흰제비꽃 정도로만 알고 있던 제비꽃이 꽃과 잎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나의 꽃에 대한, 식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아마 식고 말았을까?

자주닭개비. 흔히 달개비로 많이 불린다
 자주닭개비. 흔히 달개비로 많이 불린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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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흔히 '달개비'라고 부르는 자주닭개비는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를 대비하는 지표 식물로서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꽃도 오래가고 예쁘기 때문에 우리 정원에도 많이 심는다. 보통 남보라색의 꽃이 피지만 드믈게 연보라색의 꽃이 피기도 한다. 이런 설명을 아이들에게 해주면 훨씬 기억하기 좋을 것 같다. - 책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저자는 식물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한계를 느끼는, 혼동하기 쉬운 꽃들을 쉽게 구분하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자칫 모르고 스치기 십상인 작은 봄꽃들을 놓치지 않고 만나는 방법부터, 이름에 나라 잃은 아픔을 간직한 금강초롱 이야기나 강화 초지진의 매화마름을 지키고자 시민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서 지킨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사례 등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우리 식물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 무척 고맙고 소중하다. 지난날 내가 야생화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이 앞서는 사랑만으로 혼돈스러울 때 만난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덕분에 우리 식물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며 좀 더 전문적인 사랑이 싹튼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 책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야생화나 우리 식물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을 눈 뜨게 하리라 싶기에.

덧붙여,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이 여타의 식물관련 책들보다 돋보이는 점 하나는 사진만으로도 혼동하기 쉬운 꽃들을 비교하며 구분해 볼 수 있도록 비슷한 종류의 꽃들을 한꺼번에 모아 실었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꽃 사진은 예술성을 살린 것보다 그 꽃만의 특징을 잘 살린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 꽃을 알아야 특징을 잘 잡아 찍을 수 있으리. 우리나라 생태 사진 전문가 1세대인 송기엽 선생님이 찍었다. 사진만 봐도 가슴 설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글:이유미|사진:송기엽|진선BOOKS 펴냄 | 2011.05.17|정가:13800원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진선북스(진선출판사)(2011)


태그:#야생화, #이유미, #국립수목원, #송기엽, #진선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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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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